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호랑이의 땅'이라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서도 호랑이를 볼 수 없다.
1924년 강원 횡성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된 백두산 호랑이 이후, 한국의 숲과 산에서 호랑이는 자취를 감췄다.
국내 유일의 호랑이 보전 연구자인 임정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은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고군분투해왔다. 그의 첫 에세이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는 이 치열한 여정과 '보전생물학자'라는 길을 개척한 한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다.
책 속에서 저자는 생물다양성 위기와 기후위기의 현장을 기록하며 "호랑이를 지키는 일은 곧 숲과 들을 지키는 일이고, 결국 인간 자신을 지키는 일"임을 강조한다. 호랑이와 표범을 비롯한 멸종위기종은 단순히 보존해야 할 희귀 동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는 것이다.
다산초당 제공 임 연구원은 제인 구달을 동경하며 생태학자의 길을 꿈꾸던 대학 시절, '호랑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마주하며 방향을 틀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보전생물학의 길에 뛰어든 그는 영국 유학 시절부터 인도네시아, 라오스, 중국, 벨리즈 등 전 세계 현장에서 야생동물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목격하고 조율해왔다.
때로는 현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때로는 과학적 성과가 좌절되기도 했지만, 그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함께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나아갔다.
저자는 말한다. "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아무르 호랑이와 표범이 더 이상 멸종위기 동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다."
지구물리학자에서 지구생물학자로 나아간 호프 자런의 '랩걸' 이후 한국 과학자의 경험을 담은 보기 드문 자전적 생태 에세이인 이 책은, 과학자의 집념과 실패, 그리고 희망을 기록했다. 단순한 동물 기록이 아니라, 생태계의 연결망 속에서 인간이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목소리다.
임정은 지음 | 다산초당 |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