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독서도 '죄'였지만…총 대신 책 들고 일어선 항일 10대들 ② 시외버스에 항일벽보…'어린이'들의 기발했던 독립운동 ③ 10대의 마지막 봄, '독립 만세' 외치다 팔과 눈을 잃었지만… ④ 손가락 신경 뽑히고 매질…'악질 왜놈 만행' 치를 떤 학생들 ⑤ '독립 만세' 함께 외친 두 소녀, 항일과 친일로 엇갈린 운명 ⑥ 일제에 맞선 '100년前 어린 영웅',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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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가 부산지역 3·1운동의 첫 선두 주자로서 역사를 이끌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학생으로서 자부심이 컸어요." 부산 동래여고에서 만난 학생회장 이은우양은 일신여학교의 후신인 이 학교에 다니는 게 자랑이다.
학교의 역사를 읊는 이 양 뒤로, 일신여학교 학생들 주도로 일어난 부산지역 최초의 만세운동과 졸업생 박차정 의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보였다.
부산·경남 만세운동 주도한 舊일신여학교 사제들
동래여고의 전신인 일신여학교는 호주 선교사들에 의해 1895년 부산 동구 좌천동 한 초가집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1919년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질 당시, 부산·경남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건 이 학교 10대 학생들과 교사였다.
이들은 3월 11일 오후 8시 기숙사에서 몰래 그린 태극기를 쥐고 거리로 나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집에서 몰래 빼돌린 혼수용 보자기와 기숙사 앞 대나무를 꺾어 만든 태극기 백여 장을 시민들과 나눴다.
이날 부산에서 일본 군경에 체포된 30여 명 가운데 일신여학교 학생이 11명, 교사가 2명이었다. 이들은 서로 자신이 주동자라고 주장하다가 모두 부산형무소에 수감됐다. 적게는 6개월, 많게는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후에도 학생들은 4차 만세운동까지 모의하는 등 부산지역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부산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해 옥고를 치른 일신여학교 학생과 교사들. 김혜민 기자항일운동 수업, 만세운동 재현 등으로 민족의식 고취
그때를 기념하기 위해 동래여고는, 과거 일신여학교 건물을 본떠 본관 건물 '일신관'을 지었다. 일신관 내부에는 당시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에게 보낸 편지부터 직접 작성한 회고록, 태극 문양 자수를 새겨 만든 밥상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선배들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학교 차원의 노력은 다채롭다. 동래여고 신입생들은 항일운동 수업을 듣는다. 100여 년 전 본교 선배들이 부산·경남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졸업생인 박차정 의사가 독립운동가로 성장한 생애를 배운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독립선언문을 직접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보며 조국 독립에 목숨을 내놓겠다던 그 시절 선배들의 결의를 체득한다.
부산 동래여자고등학교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교생이 참여하는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 모습. 동래여고 제공
학교는 또 매년 3월 11일이면 만세운동 기념행사를, 5월 27일에는 박차정 의사 추모식을 진행한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에는 전교생이 백 년 전처럼 치마저고리를 입고 만세운동을 재현했다. 당시 행사를 기획한 동래여고 박성일 교사는 "학생들이 민족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끼고 체화할 수 있었으면 했다"면서 "행사 후 학생들이 '뜻깊은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전할 때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동래여고 오용남 교장은 "학교는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될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학교를 인수한 동네 유지들의 노력 등으로 오늘날까지 역사가 이어져 왔다"며 "학교의 건학 이념인 애국·애족·애향 정신에 따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노력은 교육활동을 통해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 안팎에서 병행되는 '역사 이어가기' 노력들
일신여학교가 처음 문을 연 동구 좌천동에는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옛 일신여학교 건물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기념관 안에는 당시 교실 모습과 태극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 재봉틀, 학생들이 입었던 저고리 등이 놓여졌다.
만세운동에 참가한 졸업생들이 쓴 편지 내용도 전시돼 있어 당시 상황과 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7회 졸업생 김반수는 편지에 "부르다 부르다 지쳐 쓰러지면 또 용기를 내어 불렀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정말 대견스럽고 가슴 뿌듯합니다"라고 적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에 3·1운동 당시 사용한 태극기가 전시된 모습. 김혜민 기자이곳을 관리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부산노회와 부산진교회는 자체적으로 역사 해설팀을 꾸려 방문객들에게 일신여학교가 지닌 의미를 소개한다. 부산진교회 문두호 장로는 "후손들에게 어떻게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역사 해설팀을 꾸렸다"며 "방문객들에게 학교 설립에 관한 역사와 만세운동의 전개 상황 등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 학생들의 항일 투쟁 역사와 그 안에 스민 민족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학교 안팎에서 병행돼온 것이다.
10대 독립운동가 조명 더욱 어려워…'장거리' 마음가짐으로 꾸준한 관심 필요
이러한 노력들에도 온전한 역사 계승의 숙제는 여전히 가볍지 않다.
취재진이 일신여학교 기념관을 찾았을 때 만난 관람객 정수민(40·여)씨는 "선교사가 세운 건물이고, 근대 건축물이란 점만 알고 방문했다"며 "독립운동가라면 유관순처럼 유명한 분들 말고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광복80주년 기념 CBS 특별기획을 통해 소개된 △춘천고보 학생들의 비밀결사 '상록회' △초등학생 위주의 최연소 항일단체 '독수리소년단' △모진 고문에 시달린 대구사범학교 '다혁당'과 대구상업학교 '태극단' 등도 마찬가지 상황.
이들을 조명하고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직계 후손이나 동문회 등 민간 차원에서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고, 수많은 10대 독립운동가 활약상은 아직도 역사 속에 묻혀 있는 현실이다.
부산 동래여고 일신관에 전시된 태극무늬 밥상보. 김혜민 기자 독립유공자 이광우의 아들로, 숨겨진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온 부산 동구문화원 이상국 전문위원은 "2019년에 부산항일학생의거 관련 독립운동가 4명을 추가 발굴했을 때도 일본 고어를 일일이 공부하고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던 학적부 가운데 퇴학생 명부를 발견해 어렵게 찾았다"며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연구 활동을 해왔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특히 10대들의 경우 모진 고문을 겪었어도 기소유예로 풀려나 재판 기록조차 없는 사례가 많고, 이 때문에 이름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게 이상국 전문위원의 말이다.
전문가들은 각 지역별 기념관과 연구기관을 갖춰 항일 운동 활동상을 적극적으로 재조명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한국해양대 김승 교수는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한다'는 말처럼 과거는 결코 현재와 분리돼 있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단거리보다는 장거리를 뛴다는 마음가짐으로, 지속적이고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