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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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헌법상 의무일까요, 위헌일까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전례 없이 대통령 몫으로 이완규·함상훈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위헌'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 대행은 지난 8일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오는 18일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습니다.
국민의힘 "헌정 공백 막기 위한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당연"
한 대행은 담화문에서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한 경찰청장 탄핵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후임 재판관까지 지명한 데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직무 정지' 상태가 아닌 '궐위'가 됐다는 것입니다.
헌법 제71조를 보면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명을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헌법상 의무'라는 입장입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9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 대행은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 그 어디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임명 불가 규정이 없다"며 "오히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헌재)의 9인 체제를 요구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지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도 전날 언론에 배포한 논평에서 "헌정 질서를 지키고자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지금은 대통령 궐위 상태로, 헌정 공백을 막기 위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당연한 권한 행사"라고 밝혔습니다.
이완규 법제처장. 황진환 기자박근혜 파면 당시 황교안 대행은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하지 않아
이번 논란과 관련해 몇 가지 학설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승호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발표한 '대통령 권한대행에 관한 몇 가지 쟁점'에 따르면 권한대행의 권한범위(직무범위)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현상 유지적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학설도 존재합니다. '궐위'의 측면에서 본다면 "궐위된 경우는 그 기간이 60일 이내라 할지라도 대통령직이 공석이 된 경우이므로, 그 대행은 반드시 현상유지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장기간에 걸쳐 현상 유지에 머문다는 것은 국가의 안전에 관계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헌법과 법률 그 어디에도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임명 불가 규정이 없다"는 '전권 행사설'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권한대행자는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권한대행자는 대통령직이 필요로 하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대통령직의 잠정적인 관리자일 뿐"이고 "그 스스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기에 권한대행자의 직무 범위는 대통령의 직무 범위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권한대행은 일시적 대행에 불과하며 하루속히 정식 대통령에게 직무를 넘겨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이 정식 대통령과 전적으로 동일한 권한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2017년 1월 3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했을 때 박근혜 쪽 대리인단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후임자 임명을 촉구했지만, 황 권한대행은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박근혜 파면 선고 직후인 2017년 3월 13일 임기가 끝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후임은 바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대법원장 추천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완규 법제처장·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 윤창원 기자·연합뉴스 법학자들 "권한대행의 지명, 어떤 민주적 정당성도 없다"
헌법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번 지명이 '위헌'이라고 비판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지명 무효를 위한 법적 조치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민이 뽑지 않은 '권한대행'이 헌법재관판을 임명하려는 것은 차기 대통령의 임명권을 빼앗는 것이자 '알 박기'를 하려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한국법학교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한 대행의 후보자 지명을 두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를 넘어선 것이며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위헌적 행위"라며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반대 이유로 "권한대행에 불과한 국무총리는 헌법기관 중 가장 큰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대통령과는 달리 국민으로부터 그에 비할 어떤 민주적 정당성도 부여받지 않았고, 권한대행은 본질적으로 잠정적이고 과도기적인 지위에 불과하다"며 "권한대행의 직무는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돼야 하며,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헌법재판관의 후보자 지명은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재판관 퇴임 뒤 헌재가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마은혁 재판관의 임명으로 7인 체제가 된 헌법재판소는 그 운영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100여 명의 헌법학자가 참여한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 역시 "곧 선출될 대통령 몫의 후보자 지명을 한 권한대행이 단행한 것은 권한대행으로서의 원칙적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이라며 "새 대통령의 권한을 선제적으로 잠탈하는 월권적·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지위를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에 불과하며 △권한대행은 현상유지적 권한 행사에 집중해야 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설하는 권한은 원칙적으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내란 동조자', 시민 뜻에 부합하는 재판관도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위헌 논란만이 아닙니다. 지명된 두 후보자가 결격 사유를 지녔다는 지적까지 나오며 파문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검찰 출신인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측근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처장은 계엄 해제 당일인 지난해 12월 4일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등과 만났고, 이후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전날 성명을 내고 "내란 동조자가 내란 동조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내란 상태를 지속하려는 모습"이라며 "광장의 힘으로 윤석열을 탄핵한 이 시점에서 이 처장은 시민의 뜻에 부합하는 헌법재판관도 아니고, 헌정질서를 수호할 수 있는 헌법재판관은 더더욱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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