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육 초유의 단체장 선거 후보 박탈 사태를 주도한 제32대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선거운영위원회 위원장이 결국 불명예스럽게 위원회에서 물러나게 됐다.
협회는 14일 "선거위 오재길 위원장에게 해촉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지난달 선거위 출범 당시 모 정당의 당원으로 위원 자격이 없었음에도 위원장까지 맡았다. 협회장 선거 관리 규정 제4조 2항은 정당의 당원은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직 변호사인 오 위원장은 협회 확인 결과 2011년 12월부터 올해 1월 9일까지 무려 15년 가까이 모 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했다. 애초부터 선거위원 자격이 없었던 셈이다.
당초 오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1차 선거위 이후부터 정당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협회는 오 위원장에게 해당 정당이 발행한 확인서 제출을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10일에야 본인이 작성해 자필 서명한 문서를 냈다. 9일까지 정당의 당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탈당한 다음날에야 문서를 제출한 모양새다. 본인이 정당인임을 인지하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미 CBS노컷뉴스는 협회 선거위의 문제적 상황을 재차 지적한 바 있다. 지난 13일
'[단독]韓 배드민턴회장 선거위원장, 무자격자였다…변호사가 14년 당원 활동 속였나' 기사와 11일
'[단독]초유의 후보 박탈 사태는 적반하장? 韓 배드민턴 회장 선거위원장부터 심각한 결격 의혹' 기사다.
협회는 오 위원장과 같은 정당의 당원으로 확인된 A 위원도 해촉됐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가 해당 정당에 직접 확인한 사실을 근거로 두 위원에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면서 "충분한 시간을 줬지만 응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선거위원에서 해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 위원장은 지난 8일 회장 선거에 나선 후보에 대한 등록 불허 결정을 밀어붙인 인물이다. 당시 선거위는 오 위원장 명의로 "선거 관련 규정 제15조(후보자 등록) 규정에 따라 김택규 후보의 후보자 결격 사유를 심사한 바 회장 후보 결격자임을 공고한다"고 밝혔다. "공금 횡령 및 배임 등으로 입건되었고, 보조금법 위반으로 협회에 환수금 처분을 받게 하고, 문체부로부터 해임 권고를 받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 회장인 김 후보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협회에 대한 사무 검사 뒤 해임을 건의했다. 또 문체부는 보조금법 위반 등 비리와 횡령 혐의로 김 회장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다만 협회는 규정에 맞는 진행이었다며 문체부에 이의 신청을 제기해 의견 다툼의 여지가 있고, 수사 또한 진행 중으로 사법적인 처벌 등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상위 단체인 체육회도 선거위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고, 다수의 선거위원들도 무리한 결정이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오 위원장은 "변호사인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김 후보에 대한 결격을 공고했다. 체육회 실무자는 "이번처럼 단체장 선거에서 후보가 등록조차 하지 못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역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음에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해 기회를 보장받은 이기흥 후보와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정작 오 위원장 본인이 결격자였던 셈이다. 여기에 중립적인 위치에서 선거를 관리해야 할 선거위원이 무리하게 선거에 개입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선거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까닭에 자진 사퇴도 모자랄 판에 버티다 불명예스럽게 퇴출된 모양새다.
협회 선거위는 이미 앞서 2명의 위원이 사퇴했다. 이들 중 1명은 지난해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김 후보에 대해 체육회 스포츠공정위의 심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물러났다. 종목 단체장은 1회 연임할 경우 공정위 심사 없이도 도전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 논란이 컸다. 또 다른 위원은 다른 종목 단체 스포츠 공정위원회 위원으로 자격이 없었다.
여기에 추가로 위촉된 B 위원도 정당인임이 확인됐다. 다만 오 위원장, A 위원과 달리 스스로 사퇴서를 제출했다. 7명의 선거위원 중 무려 5명이나 사퇴하거나 퇴출된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8일 선거위의 결정도 효력을 잃게 됐다. 애초에 무리한 개입인 데다 무자격자인 선거위원장이 밀어붙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선거에 나선 김택규 후보. 윤창원 기자김 후보는 지난 9일 법원에 회장 선거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후보자등록무효결정 효력정지등 가처분 신청서'인데 "1. 제32대 회장 선거 관련 후보자 등록 무효 결정의 효력을 정지한다. 2. 제32대 회장 선거에서 회장 후보자의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 3. 2025년 1월 16일 개최 예정인 회장 선거에서 김택규 회장을 후보자에서 제외하고 선거 절차를 진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다.
14일 법원에 출석한 김 후보 측은 선거 규정과 선거위원들의 결격 사유, CBS노컷뉴스 기사 등을 자료로 제출했다고 전했다. 협회 선거위 측 변호인은 미처 오 위원장 등의 정당 활동을 인지하지 못해 부랴부랴 추가로 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무자격자인 선거위원장의 무리한 결정으로 적잖은 소송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법원의 배드민턴협회장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 여부는 15일 결정될 전망이다. 협회는 인용 여부와 관계 없이 일단 선거위원들을 추가로 위촉해 회장 선거에 대비할 계획이다. 협회장 선거는 오는 16일 대전 선샤인호텔에서 열리는데 법원 판결에 따라 연기될 수 있다.
특히 다수의 선거위원들이 결격이었던 만큼 선거위원과 선거인단 선정 등 원점에서부터 선거 일정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회장 선거에는 김 후보가 빠진 가운데 대구배드민턴협회 최승탁 전 회장과 한국실업배드민턴연맹 전경훈 전 회장,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원광대 김동문 교수(이상 기호 순)가 후보로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