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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기념일'도 없는 '정전국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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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정전협정 체결 7월 27일, 정부 기념일 190일에도 포함 안 돼
'유엔군 참전의날'로 지정돼 의미 반감…유엔 파병 결의는 다른 날짜
오히려 미국에서 재평가…2009년 기념일 선포 후 매년 추념 메시지 발표
한반도 긴장 고조로 정전협정 더 중요…이 만큼의 평화‧번영도 정전체제 덕

AI 이미지 생성 '플레이그라운드' 제공AI 이미지 생성 '플레이그라운드' 제공
11월 11일, 5월 9일, 8월 15일…세계 각국의 종전 기념일이다.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고 5월 9일은 2차 대전에서 소련이 독일의 항복을 받은 날이다. 익숙한 날짜인 8월 15일은 일본의 종전일(패전일)이다. 인류사상 유례없는 대참극에 종언을 고한 날이기에 각국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종전 기념일이 없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만 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불완전한 정전협정이나마 그간 유지됐기에 '한강의 기적'과 선진국 도약이 가능했다. 외국의 종전 기념일 못지않게 우리로선 더 없이 소중한 날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이유에선지 이날은 정전의 의미를 담은 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았다. 정부 공식 기념일이 1년 365일 중 절반이 넘는 190일이나 되지만 여기서 제외됐다. 4.19혁명기념일이나 국군의날 등은 고사하고 자전거의날(4월 22일)이나 푸른하늘의날(9월 7일) 같은 대우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당연히 올해도 정부 기념식은 열리지 않는다. 지난해 정전 70주년을 맞아 반짝 관심을 받았을 뿐 다시 잊혀진 날짜가 됐다. 정부는 대신 2013년부터 이날을 '유엔군 참전의날'로 지정했다. 하지만 유엔군 참전과 정전협정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유엔의 파병 결의는 개전 이틀 뒤인 6월 27일 이뤄졌고, 정전협정은 그 3년여 뒤인 1953년 7월 27일 체결됐다.
 
물론 유엔 참전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날짜상 관련이 없는데도 정전협정일에 덮어씌우면서 둘 다 의미가 반감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기념사에서 유엔 참전국과 유엔사에 초점을 맞췄을 뿐 '정전협정'은 겨우 두 차례 언급했다.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우리 군 초소와 북한 초소가 마주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우리 군 초소와 북한 초소가 마주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
우리 정부가 외면한 정전협정은 오히려 미국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7월 27일을 '한국전 참전군인 정전 기념일'(National Korean War Veterans Armistice Day)로 선포했다. 이후 미국 대통령은 매년 이날 추념 메시지를 발표하고 연방정부 기관 등은 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도 매년 이날 판문점에서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브렌던 트렘바스 유엔사 대변인은 올해도 기념식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면서 "유엔사는 정전협정을 유지하고, 대화를 장려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데 전적으로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홈페이지 캡처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홈페이지 캡처 
정전협정일이 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부는 뚜렷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주무 부처의 요청이 없었다고 했고,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워낙 역사가 오래된 일이라 파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설에는 1953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반대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기념일로까지 지정하고 기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 발발보다 전쟁 종식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미국, 유럽과 대비된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종전선언이 끝내 불발된 것도 정전협정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전협정의 가치는 최근 한반도 긴장 고조와 맞물려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남북은 대북전단, 쓰레기 풍선, 대북확성기방송을 주고받으며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남북 모두 정전협정 취지를 무시하고 있다. 이 만큼의 번영과 평화도 정전협정에 힘입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정전협정이 귀한 줄 알아야 하고 정전협정 준수를 다짐하는 날로 삼아야 한다"면서 "주한미군사령관도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상시전투태세)만 외칠 게 아니라 'Don't fight tonight'라는 유엔군사령관의 임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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