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윤창원 기자"공공기관 지정이 상당한 문제가 있고요. 정부를 설득드리는 입장입니다. (중략) 옥상옥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납득을 못하겠고요. 워딩이 좀 세게 나가네요. 금융감독 독립성 중립성 관련해서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요구되고 글로벌 스탠다드 워낙 좋아하는데 그 기준으로도 맞지 않고 공공기관 지정은 이번에 안 될 걸로 기대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죽어버리냐면 11주가 날아가요. 수사를 지금 즉시 해야 할 이슈들도 많은데 이걸 3개월을 허송세월 하다보면 증거도 다 인멸되고 다 흩어져 버려서 이래선 안되겠다, 문제 의식을 갖고 있고 대통령도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고요. 범주 관련 모든 걸 하겠다는 게 아니고 금감원이 기획해서 조사하는 것에 국한해서 하겠다는 겁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1월 5일 신년 기자간담회)
금융감독원의 문제적 현안들이 다소 해소되고 있다. 1월 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찬진 금감원장이 구상했던 안과 유사하다. 금융당국 안팎에선 '실세' 원장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금감원이 짊어진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감원, 공공기관 '조건부 지정 유보'
금감원 지난달 29일 다시 한 번 공공기관 지정 유보 판단을 받았다. 다만 공공기관 지정이 아니더라도 공공성·투명성 제고 방안 이행이라는 조건이 달렸다.
정원·조직, 공시, 예산·복리후생 등 경영관리 부문에서 '공공기관 수준 이상(공시항목 및 복리후생 규율대상항목 확대, 기관장 업추비 세부내역 공개 등)'으로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고 검사, 인허가, 제재 등 금융감독 업무의 투명성·공정성 강화를 담은 쇄신 방안을 마련토록 했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재지정 역사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2007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지만 2009년 금융 감독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위해 지정에서 해제됐다. 그러나 채용비리가 터지며 2018년 조건부 지정 유보를 받았다.
당시 공운위는 금감원에 △채용비리 근절대책 마련 △공공기관 수준의 경영공시 △엄격한 경영평가 △비효율적 조직 운영 등에 대한 감사원 지적사항 개선 등을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2024년 이를 모두 충족한 금감원은 지정 유보를 모두 충족해 지난해엔 공공기관 지정 안건이 공운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조직 개편 논의와 함께 지난해 다시 공공기관 지정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에 맞서 이찬진 금감원장은 여러 차례 반대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은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예산과 조직 관련 결정도 금융위가 다 하는 등 한국은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면서 공공기관 지정은 '옥상옥'이라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정부를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직 해체 위기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한 금감원이지만 내부는 2018년때보다는 긴장감이 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8년 전에는 국회 정무위 의원들까지 찾아가 재지정 반대에 대한 동의를 구해야 했고 대통령실에도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는 등 안간힘을 쓴 바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는 이 원장이 대통령과 38년 지기 친구로 알려지면서 이 원장의 행보 만으로도 대통령실 측에 설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李 대통령 지시→ 특사경 인지수사권 부여 속도
최근 금감원의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 확대를 둘러싼 신경전에서도 '실세 원장'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감원은 신속한 수사를 위해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곧바로 수사 착수를 해야하는데 금감원은 조사 중이거나 조사를 끝낸 사건을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 보내고 증선위 판단에 따라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금융위는 공적인 수사 업무의 특수성과 금감원 직원이 민간인 신분이라는 점 때문에 국회 논의를 거쳐 인지수사권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지난 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지수사권 확대를 지시하면서 특사경의 인지수사권 부여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금감원은 외부 인사가 포함된 수사심의위원회를 두고 무리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내부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안을 금융위에 제시했다. 두 기관은 조만간 만나 이에 대한 결론을 낼 예정이다. 인지수사권이 부여되면 주가조작사범 등에 대한 금감원의 신속한 수사가 가능해진다.
금융위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국한해 인지수사권 부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금감원이 요청한 불법사금융 분야에 한정해 특사경 도입하는 부분도 동의한 상태다. 다만 제한선을 뒀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금감원 본연의 역할이라든지 권한과 책임 구조 등을 비추어 볼 때 이것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영역에 대한 특사경을 두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세 원장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금감원의 현안이 순조롭게 풀리는 한편 부담도 쌓여가고 있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특사경 인지수사권 확대는) 대통령이 말해서 금융위의 입장을 선회한 것은 아니고 금감원과의 협의와 원칙에 따라 수용했다"면서도 "금감원이 대외적으로 먼저 말하기보다 금융위와 협의를 먼저 해야 하는데 원팀으로 일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아쉽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원하는 게 다 이뤄졌다기보다는 대통령실과 공유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면서 "권한이 주어지면서 실적 부담도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