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NEW 제공※ 스포일러 주의 국내에서 보기 드문 영화가 나타났다. 스플래터(잔혹한 묘사와 유머가 공존하는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와 오컬트, 코미디와 호러, 대중성과 B급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영화 '핸섬가이즈'는 휘몰아치는 상황에 넋 놓고 있는 사이, 무방비해진 관객들을 제대로 웃긴다.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는 잊지 못할 첫인상으로 이사 첫날부터 동네 경찰 최 소장(박지환)과 남 순경(이규형)의 특별 감시 대상이 되지만, 꿈꾸던 유럽풍 드림하우스에서 새출발한다는 것에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물에 빠질 뻔한 미나(공승연)를 구해주려다 오히려 납치범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이어진다. 한편 미나를 찾으러 온 불청객들을 시작으로 지하실에 봉인되어 있던 악령이 깨어나며 어두운 기운이 집안을 둘러싸기 시작한다.
'머니백' '티끌모아 로맨스' '베스트셀러' 등의 조감독 생활을 통해 실력을 다져온 남동협 감독이 연출 데뷔작으로 선택한 건 다름 아닌 '호러 코미디'다. '조용한 가족' '시실리 2㎞' 등 이후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호러 코미디 장르라는 점에서 '핸섬가이즈'는 존재 자체만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또한 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장르이기에 감독의 연출력을 시험할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NEW 제공2011년 '터커 & 데일 vs 이블'(감독 일라이 크레이그)를 원작으로 하는 '핸섬가이즈'는 두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의 반전, 오해와 사건의 중첩, 사건 방식 등 원작의 핵심 설정을 가져와 한국식으로 변형했다.
'터커 & 데일 vs 이블'이 클리셰를 전복해 신선한 재미를 선보였다면, '핸섬가이즈'는 '오컬트'라는 장르를 더해 새로움을 꾀했다. '터커 & 데일 vs 이블'의 '이블'을 실제 '악마'로 변환한 것이다. 원작은 '이블'이 가진 의미를 악한 내면을 가진 인간으로 규정했으나 '핸섬가이즈'는 '이블'이 가진 사전적 정의를 확장, 인간 내면의 악(惡)과 오컬트 장르이 대표 빌런인 악마를 동시에 소환했다.
'핸섬가이즈'는 초반에는 선입견과 오해로 빚어지는 상황들로 밑바닥을 다진 후, 본격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플래터 특유의 피와 살이 터지는 가운데 공포와 웃음을 자아내고자 한다.
원작에서 고스란히 가져온 사건, 원작을 변형하거나 새롭게 만들어낸 다양한 사건에서 영화의 중심에 놓인 장르가 스플래터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드문 데다가 마니악한 장르인 만큼, 대중성을 위해 잔혹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 소름을 유발하는 방식을 취한다.
재필과 상구의 차량 번호판에서 암시했듯이 영화는 후반부로 가서는 오컬트로 중심축을 이동, 악마 구마에 나선다. 마치 '케빈 인 더 우즈'(감독 드류 고다드)를 떠올리게 하는 숲속 외딴 산장, 지하에서 발견된 악마 소환진은 오해의 중첩으로 갈등이 정점에 달한 상황에서 주인공들을 또 다른 고난으로 이끈다.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NEW 제공호러 장르가 가진 숨은 재미 중 하나는 현실이나 인간에 대한 풍자다. 영화는 선입견과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오해, 그리고 인간이 가진 악마성에 관해 들여다보게 한다.
영화 속에서 그리는 인간 내면의 악한 마음은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해 그 사람의 행동을 왜곡하는 것 그리고 부도덕한 일들을 벌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준다.
염소 로드킬 후 엇갈린 반응은 희생 제물이 되느냐, 살아남느냐로 나뉜다. 때때로 악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악마 같은 인간이다. 내면의 악마성이 만들어 낸 상황은 결국 악마의 현실 소환으로 이어진다.
오컬트 장르의 단골 소재인 '악마'인 염소 악마는 게임이나 만화, 찬호께이의 소설 '염소가 웃는 순간' 등을 본 사람에게는 익숙할 '바포메트'다. 기독교 신비주의 전설에 등장하는 바포메트가 본격적으로 소환되면서부터 영화는 코미디에 오컬트를 버무려 스플래터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저 바포메트 CG는 정말 돈을 들여 만든 걸까?'라는 질문이 생길 정도의 비주얼은 '핸섬가이즈'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제대로 반영했다. B급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바포메트 CG와 바포메트 신은 '핸섬가이즈'의 개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영화는 전반적으로 대중성과 B급, B급과 이른바 '쌈마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낸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쩐지 웃으면 지는 것 같은 기기묘묘한 속에서 나온 첫 웃음은 무장해제 신호탄 역할을 한다.
영화 '핸섬가이즈' 스틸컷. NEW 제공과장된 상황, 피와 살이 튀는 잔혹함, 슬랩스틱, 오컬트, 코미디의 향연을 정신없이 오가다 보면 관객들은 어느새 넋을 잃게 된다. 그렇게 무방비해진 사이, 뇌리를 비집고 들어온 요소요소에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그저 영화에 몸을 맡기면 된다.
뜬금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캐릭터에 빠져들어 웃을 수 있는 데에는 배우들의 힘이 크다. 다른 장르보다 균형감 있는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코미디 장르에서 이성민과 이희준은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관객들의 마음으로 사로잡는다. 태생부터 코믹한 두 캐릭터 사이에서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일 있는 미나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간 공승연의 연기 역시 돋보인다.
새로운 시도들로 가득한 도전적인 영화에서 아쉬운 건 비속어의 남발이라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폐습을 답습했다는 점이다. 특히 장애인 비하 이유로 사용에 주의를 요하는 특정 비속어의 반복 사용은 대중을 위한 호러 코미디를 지향하는 '핸섬가이즈'가 지양했어야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스플래터와 오컬트의 결합이라는 색다른 시도를 무리 없이 해낸 남동협 감독에게서 발견한 건 '가능성'이다. 남 감독이 그릴 또 다른 코미디에서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악습과도 같은 클리셰를 전복시키며 새로운 웃음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핸섬가이즈'에서 엿볼 수 있었다. 피터 잭슨이나 샘 레이미 등 명감독들이 B급 호러 무비로 시작해 자신의 재능을 펼쳐냈듯이 남 감독 역시 그러한 길을 걸을지 기대된다.
101분 상영, 6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핸섬가이즈' 포스터. 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