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세월호 10년 보듬고 희망 피워낸 '목화솜 피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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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목화솜 피는 날'(감독 신경수)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스포일러 주의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세상을 떠난 뒤 누군가의 마음과 기억은 그날에 멈춰선 채 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는 누구보다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이, 또한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도 알게 모르게 아픔이 새겨졌다. '목화솜 피는 날'은 지난 10년,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뎌온 모두의 마음과 기억을 들여다본 후 각자의 마음에 목화꽃을 피워내 보자고 말한다.
 
10년 전 참혹한 사고로 경은(박서연)을 잃은 병호(박원상)는 기억을 점차 잃어간다. 무기력함에 갇혀있던 아내 수현(우미화)은 고통을 견디느라 이를 외면한다. 어느 날, 묵묵히 견디던 첫째 딸 채은(이지원)은 아빠마저 잃을까 봐 참아왔던 두려움이 터져 나온다. 각자의 방식으로 경은을 기억하며 아픔을 묻던 그들은 멈춰버린 세월을 되찾고자 한다.
 
'목화솜 피는 날'(감독 신경수)은 10년 전 사고로 죽은 딸과 함께 사라진 기억과 멈춘 세월을 되찾기 위해 나선 가족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영화 제작사 연분홍치마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가 함께 기획한 '세월호 참사 10주기 장편 극영화'라는 점에서 뜻깊다.
 
'목화솜 피는 날'이 더욱더 특별한 건 지난 세월호 가족들의 마음속에 쌓여온 아픔과 슬픔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며 되짚어 봤다는 것뿐만 아니라 세월호에 함께 아파하고 슬퍼했던 이들의 지난 10년까지 함께 보듬으며 되짚어 봤다는 데 있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상실이 지나간 가족의 마음과 기억 속에는 여전한 상처와 슬픔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상실로, 누군가는 외면으로, 그렇게 각자 자식을 잃은 슬픔에 대처해 나간다. 영화는 딸 경은의 죽음 이후 기억을 잃은 아빠 병호와 기억을 외면하고자 한 수현 그리고 경은의 언니와 세월호를 지켜봤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보여준다.
 
병호가 잊는 것으로 10년을 버텨왔다면, 수현은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10년을 버텨온 인물이다. 그렇지만 잊었던 병호와 외면했던 수현은 모두 딸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으로 가득 차 있다. 괜찮지 않지만 진상 규명을 위해 나아가야 했고, 또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해야만 했던 가족들의 10년이 병호와 수현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영화는 병호가 안산, 진도, 목포 등 세월호와 밀접하게 관련된 세 곳을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세월호와 관련한 병호의 기억을 하나씩 더듬는다. 병호의 기억 안에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슬픔, 그런 부모를 향한 혐오의 언어와 불편한 시선들이 담겼다.
 
병호와 수현의 기억을 엿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세월호 가족 안에서 벌어졌던 의견 차이 등도 만나게 된다. 상실을 겪고 진상 규명에 나섰던 이들은 병호와 수현처럼 각자의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런 세월호 가족들 안에서만 이뤄졌던 일들,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 있는 기억까지도 영화를 통해 솔직하게 관객들에게 드러낸다. 이 역시 지난 10년을 끄집어내고 되짚어가며 앞으로의 10년을 나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다.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가 아닌 피해자 언니의 지난 10년, '세월호 가족'은 아니지만 세월호를 지켜보고 연대했던 모든 사람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이후를 살아왔고, 또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조명한다. 그렇게 영화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모두의 마음 한쪽에 우리도 모르게 아픔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던 아픔을 대신 이야기해 준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이렇게 영화가 10년을 되짚어보고 굳이 끄집어내는 것은 영화의 제목처럼 세월호 아이들을 비롯한 모든 피해자가 목화솜처럼 다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또 304명을 기억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우리 모두의 안에 각자의 목화솜을 피워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처럼 슬픔과 아픔을 관통하며 달려온 끝에 목화솜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 그날날은 잊힐 수도 외면할 수도 없지만, 그 모든 마음을 모아 304명을 위한 내면의 목화솜을 하나씩 피워내면 어떨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 속 말마따나 목화에는 삶과 죽음, 행복과 슬픔이 모두 들어있고, 영화 역시 단순히 슬픔과 아픔, 죽음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생명과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엔딩 이후까지도 차분하게 2014년 4월 16일을 밟아나간다. 앞서 기억을 잊은 병호가 세월호 선체 안에서 경은의 기억과 마주하는 순간, 그날의 세월호처럼 기울어지는 카메라는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마지막 달라진 모습으로 세월호 선체에 들어서 사람들에게 곳곳을 소개하는 병호의 모습은 영화가 내내 이야기한 것이 아픔의 반복 내지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이들로 시작해 아이들로 마무리한 영화는 목화솜 같은 희망을 다시 피워낼 수 있음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어딘가에서 다시 피어날 304명을 위해서라도, 아픔과 슬픔을 다시금 찬찬히 마주한 우리가 그 너머까지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기를 다시 한번 바라게 된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지난 10년의 시간을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했지만, 괜찮지 않았지만 애써 괜찮은 척해야 했던 그 아픔만은 진하게 압축되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그 어느 때보다 진정성 가득한 배우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월호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극단인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들의 연기에는 수많은 배우가 그토록 강조하는 '진정성'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이로 담겼다. 또한 박원상, 우미화, 최덕문, 조희봉, 이지원, 박서연 등의 연기 역시 왜 그토록 배우들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진정성'을 이야기했는지, 그 진정성이란 단어가 가진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육룡이 나르샤' '녹두꽃' 등 드라마를 통해 만났던 신경수 감독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세심함과 단단함은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온 구두리 작가의 각본을 바탕으로 신 감독은 세월호 가족들의 지난 10년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그리고 세월호를 목격하고 기억해 온 우리 역시 슬픔과 아픔이란 단어를 이야기해도 된다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목화솜을 피워보자고 전한다.
 
90분 상영, 5월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목화솜 피는 날' 메인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영화 '목화솜 피는 날' 메인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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