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불신의 시대를 설계하는 건 누구인가 '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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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계자'(감독 이요섭)

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 스포일러 주의
 
소이 청 감독의 홍콩 영화 '엑시던트'가 우연과 필연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의 믿음과 불신을 그려냈다면, '설계자'는 세계관을 보다 확장해 현시대, 다시 말해 불신의 시대까지도 영화 안으로 가져왔다.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의 설계를 통해 우연한 사고로 조작된 죽음들이 실은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최근의 타깃 역시 아무 증거 없이 완벽하게 처리한 영일에게 새로운 의뢰가 들어온다. 이번 타깃은 모든 언론과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유력 인사다.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수 있는 위험한 의뢰지만, 영일은 그의 팀원인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과 함께 이를 맡기로 한다. 철저한 설계와 사전 준비를 거쳐 마침내 실행에 옮기는 순간, 영일의 계획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
 
'설계자'(감독 이요섭)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우연'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믿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이 모두 '우연'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한 '필연'인지에 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여기에 '인간'을 넘어 '시대'로 세계를 확장한 영화는 주인공 영일에게 결핍을 안겼다. 신원 조회를 해도 나오지 않고, 출생 신고조차 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배경이다. 영화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존재를 '깡통'이라 부른다. 깡통인 영일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는 같은 깡통인 짝눈(이종석)밖에 없다. 이미 결핍이 있는 영일에게 영화는 짝눈의 상실이라는 또 하나의 결핍을 얹어준다.
 
영화의 첫 번째 사고, 원작을 오마주한 영일과 그 팀이 만든 필연에서 발생한 사고를 통해 감독은 관객들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어 놓는다. 우리가 아는 사건·사고가 '우연'으로 인한 게 아닌 '필연'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 말이다.
 
주인공의 배경에 '깡통'이라는 설정을 더한 데 이어 '설계자'는 원작과 다른 중요한 설정이 또 하나 등장한다. 바로 '청소부'다. 영일은 자신들과 달리 청소부는 업계 대기업이라 칭한다. 그러나 이 청소부의 정체는 물론 그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그러나 영일은 짝눈의 죽음 뒤에는 청소부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일의 말처럼 영화는 우리가 아는 사건이 때때로 필연에 의해 탄생한 것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관객들에게 작은 의심의 씨앗을 심어둔 후 관찰자 입장에서 설계자들의 사건 설계를 지켜보게 한 뒤, 감독은 설계자들의 두 번째 사건에 변수가 생기고 이로 인해 팀에도 문제가 발생한 후부터 관객들의 시점을 보다 스크린 깊숙한 곳으로 끌고 들어오고자 한다.
 
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이를 기점으로 영일은 팀에 위기를 불러오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청소부'가 있고, 청소부의 조력자이자 팀의 배신자가 있다고 의심한다. 이 의심은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영화의 후반부가 시작되고, 영일이 모든 존재를 믿을 수 없게 되면서 카메라는 주변의 존재하는 모든 인물과 모든 상황을 믿을 수 없게끔 보이게 만든다. 이때부터 영일의 의심은 관객에게로 이어져 영일에게 이입해 보다 적극적인 의심의 주체자가 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캐스팅부터 상황 설정까지 어딘지 의심스러운 지점이 많아 보이게끔 세팅했다. 이는 믿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하는 경찰조차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믿음과 불신이 흔들리는 경계에 선 영일은 심리적으로 점차 벼랑 끝에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영일과 관객들의 의심을 더욱 부추기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유튜버 하우저(이동휘)다. 하우저의 역할은 관객들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감독이 원작보다 키운 세계인 불신의 시대를 영화 안으로 끌어온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영화는 불신의 시대를 말하고자 미디어를 끌어들였다. 언론은 물론 개인이 미디어이자 언론이 된 세상에서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는 어지럽게 뒤엉킨다. 누군가의 불행은 미디어의 좋은 먹잇감이다.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영화는 개떼처럼 달려드는 미디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포착하며 시대가 가진 불신, 그리고 그 안의 혐오까지 드러낸다.
 
그렇게 영일은 누구도,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채 자신이 청소부라 믿는 인물에게 복수하고자 살인을 설계한다. 그러나 설계의 완성 끝에서 영일이 만난 것은 결국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명제에 '자기 자신'조차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영일은 자신의 세상을 믿을 수 없는 곳으로 설계해 온 결과, 거짓조차 믿음이 되어 버린 자신이 설계한 세상 안에서 스스로 희생자가 된다.

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영화 '설계자' 스틸컷. NEW 제공'설계자'의 끝이자 영일의 끝에서 만난 건 그 무엇도,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게 아니라 사실 모든 불신은 모두 우리리 스스로 설계한 결과라는 점이다. 영일의 불신, 언론의 불신, 유튜버의 불신 모두 스스로가 설계한 강력한 믿음 아래서 행동한 결과물이다. 이 믿음은 진실 여부와 관계 없는 믿음이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까지도 쉽게 가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엔딩 장면조차도 과연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우연인가 필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끝까지 모든 것을 불신하도록 만든다.

시작부터 끝까지 우연과 필연을 중첩시키며 믿음과 불신을 그려낸 '설계자'가 아쉬운 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소재와 주제는 흥미롭지만, 영화의 설계가 이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반부는 원작의 설계를 바탕으로 나름 밀도 높고 긴장감 있게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후반부부터 점차 설계가 '우연'이란 키워드와 이에 기댄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확장한 세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며 긴장감마저 흔들린다. 시대까지 아우르려는 시도는 심리와 사건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설계자'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강동원의 서늘함이 깃든 얼굴, 자신이 만든 불신의 세계가 만든 결과에 고통받는 얼굴이다. 여기에 영일의 세계를 뒤흔드는 짝눈 역 이종석의 강력한 믿음이 담긴 얼굴 역시 큰 역할을 했다. 원작의 성별을 비튼 재키와 월천 역의 이미숙과 이현욱, 그리고 새로운 얼굴인 하우저 역 이동휘와 점만 역 탕준상도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호연을 펼쳤다.
 
99분 상영, 5월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설계자' 메인 포스터. NEW 제공영화 '설계자' 메인 포스터.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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