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 스포일러 주의 동물권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질문, 인간도 어려운데 왜 동물까지 책임져야 해? 지구 위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오직 인간만이 아니기에, 그리고 동물에게서 '야생'이라 불리는 자연을 빼앗은 건 인간이기에 우리는 최소한의 책임으로 최대한의 '공존'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생츄어리'는 바로 그러한 최소한의 책임을 어떻게 고민해야 할 것인가 이야기한다.
2024년 현재, 국내에는 야생동물을 위한 생츄어리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청주동물원을 생츄어리로 바꾸고 싶은 수의사 김정호, 사육 곰 생츄어리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동물복지 활동가 최태규, 생츄어리가 생기길 간절히 바라는 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이 인간의 시대, 야생동물의 보금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전작 '동물, 원'에서 동물원의 역할과 의미를 물었던 왕민철 감독이 '생츄어리'를 통해 다시 한번 동물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동물원 밖, 야생의 동물들이 어떻게 동물원이라는 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 경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존'의 의미와 생츄어리(야생동물 생츄어리·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을 위한 보호 시설)의 필요성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의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이 줄어만 가는 고라니와 독수리, 사육 농장에 갇혀 평생 살아가야 하는 사육 곰, 인간에게 길들여져 위험에 빠진 여우와 너구리, 구경꾼들 사이에서 생활이 전시되고 있는 동물원의 호랑이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이다.
'생츄어리'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에도 바로 '인간'이 있다. 감독은 인간으로 인해 상처받은 동물들과 이러한 동물들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세밀하게 관찰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사육사, 수의사, 활동가들의 여러 활동과 고민 그리고 동물권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와 논의 지점까지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동물을 둘러싼 끝나지 않는 논쟁은 영화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보호해야 할 동물과 죽어도 되는 동물은 따로 있는 걸까'라는 주제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이 이른바 '반려동물'이라 부르는 동물은 보살피고 인간과 공존한다는 게 당연하지만, '반려'라는 단어 대신 '야생'이 붙은 동물들은 보살핌과 동떨어진 채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이러한 질문은 야생동물들의 생존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사람들조차도 던지고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야생동물과 '공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전적인 정의나 이상적인 바람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가 바로 공존이다.
'어떤 동물은 죽어도 되고, 어떤 동물을 살려야 하나'라는 딜레마처럼 어떤 인간은 동물과 대립하고 어떤 인간은 동물과 공존을 꿈꾼다. 어떤 인간은 동물을 상처 입히고, 어떤 인간은 그렇게 상처받은 동물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간으로 인해 야생동물이 아프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렇기에 인간이 책임져야 마땅하지만, 이 역시 서로 다른 생각으로 나뉜 인간들로 인해 쉽지 않다.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하는 게 있다.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기는 등 인간이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왜 동물, 그것도 야생동물을 위해 인간의 땅과 돈을 내어줘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동물과 관련된 복지나 윤리를 이야기할 때 반대 진영에서는 '인간'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자연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었는지, 인간만이 이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존재인지, 동물들의 터전 위에 인간의 문명을 세운 것은 아니었는지 등을 반문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동물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고, 또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대부분 원인은 인간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놓은 덫, 인간이 의도적으로 살포한 농약, 인간의 탐욕 등 인간에서 비롯한 문제들이 야생동물들을 자연에서 몰아내고, 상처입히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동물권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담론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책임'으로 접근해 바라볼 수는 있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선택들이 만든 결과이기에 이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으로 우리는 '공존'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공존'의 의미 역시 마찬가지다. 최선의 공존, 이상적인 공존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현실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차선의 공존, 현실적인 공존은 무엇인지 거듭 질문해야 한다.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은 이보다 더 깊을 수밖에 없다. 과연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야생동물에게 치료가 최선인지 아닌지, 어떤 기준으로 안락사를 결정해야 하는지 생사의 경계에서 늘 묻고 고민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죽을 운명이라는 걸 모르는 곰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사과가 마지막 만찬인지도 모른 채 금세 해치운다. 인간이 자기 앞에 둔 사과를 다 먹은 곰은 이내 몇 차례 주사를 맞은 후 세상을 떠난다.
존엄조차도 스스로 선택하고 지킬 수 없는 동물, 그리고 그들의 존엄을 위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도 흔들리며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의 막중한 책임 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죄책감과 슬픔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이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피해를 또 다른 인간이 대신 책임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이러한 책임감과 죄책감, 그리고 부끄러움이 단순히 수의사, 사육사, 활동가 등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관계자들만의 고민으로 끝나선 안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자연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인간의 문명 속에서 살아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은 공존에 대한 고민이 결국 인간인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야 할 과제임을 알린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느끼는 부끄러움이 부끄러움에서 끝나지 않도록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카메라는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동물권에 대한 고민을 눈앞으로 끌어오고, 공존을 위한 고민과 실천으로 나아갈 의지를 전했다. '동물, 원'에 이어 '생츄어리'까지 뚝심 있게 인간의 최소한의 책임과 공존을 위해 카메라를 든 왕민철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엔딩 크레딧에서 적어도 처음 올라온 이름들은 꼭 살펴봐야 한다.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생츄어리'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였는지와 함께 감독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에 놓치지 않길 바란다.
109분 상영, 6월 1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생츄어리' 포스터. 시네마 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