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제작사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스포일러 주의"드라마를 하면서도 세월호를 다루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녹두꽃' '소방서 옆 경찰서' 등 다양한 작품을 해오면서도 늘 '세월호'를 다뤄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런 신경수 감독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말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봄이 온다]'를 기획한 인권운동단체이자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인 연분홍치마와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는 장편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감독 문종택·김환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세 가지 안부'('그레이존' '흔적' '드라이브'), 극영화 '목화솜 피는 날'을 제작했다. 이 중 '목화솜 피는 날'은 신경수 감독에게 맡겨졌다.
'목화솜 피는 날'은 10년 전 사고로 죽은 딸과 함께 사라진 기억과 멈춘 세월을 되찾기 위해 나선 가족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극영화로서는 최초로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모두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지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10년간 세월호를 다룬 많은 영화가 있었지만, 극영화는 드물다. 더군다나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만들어간 '목화솜 피는 날'은 그동안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또 다른 유가족인 언니, 그리고 세월호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더욱더 특별하다. 또한 슬픔을 되돌아보고 애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목화솜'과 같은 희망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목화솜 피는 날'의 개봉일인 22일, 서울 마포구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신경수 감독을 만나 관객들에게 세월호 10년의 기억을 어떻게 전하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런 신 감독의 곁에 함께한 연분홍치마 대표이자 '흔적'의 연출자 한영희 감독은 "매우 드물게 나온 극영화"라며 "신 감독님의 의지 있는 실천, 본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을 겪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들이 다시 공동체성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다. 어떤 의미든 살아가는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영화이기에 꼭 극장으로 많이 와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다
'목화솜 피는 날'은 시작부터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갖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시작한다. 세월호 이전, 피해자들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존재했고, 그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다. 단원고 학생들이 등굣길 버스 안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웃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피해자들을 '슬픔'이라는 감정 바깥으로 꺼낸 후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경수 감독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모습을 찾아서 시간을 거슬러 가는 병호(박원상)를 따라 여행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희생자, 유가족, 피해자에 대해서 어느 한쪽은 너무 악마화시키고 어느 한쪽은 너무 윤리적으로 바라본다. 유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걸 깨는 모습을 보면 행여나 괜찮을까 불편해하고 또 걱정한다"라며 "그러나 영화 안에서는 그 두 모습을 다 지양하고자 했다. 살아 있고, 실재하는, 너와 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아빠고 엄마고, 가족을 잃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는 걸 그리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목화솜 피는 날'은 그동안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냈던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극영화로서는 '최초'다. 신 감독은 "드라마를 20년 한 감독이 선체를 찍겠다고 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했다. 선체 내부에서 극영화 촬영이 가능했던 건 연분홍치마와 가족협의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예고편 캡처.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세월호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영화 촬영을 도왔다. 배우들이 세월호 선체가 접안된 목포 신항에 도착할 때마다 매번 설명에 나섰다. 연분홍치마와 가족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들어간 선체 내부를 본 신 감독은 "너무 마음이 좋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작업 전에는 철조망 밖에서 멀찍이 바라봤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가까이 들어가서 봤어요. 멀리서 볼 때는 너무 외로워 보이고, 가까이서 보니 다 녹이 슬고 인양 과정에서 뚫린 구멍을 메꿔서 처참했어요. 또 오랫동안 물속에 있었기에 수중 생물이 그대로 붙어있었죠. 그걸 보면서 비현실적인 느낌도 들었어요." 힘들어하는 스태프들도 굉장히 많았다. 세월호 선체라는, 2014년 4월 16일의 근원으로 들어간 만큼 심적으로 견디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신 감독은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촬영하다 사고 날 수 있겠다 싶어서 굉장히 집중하고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촬영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병호가 선체 안에서 경은을 기억하는 순간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카메라는 천천히 기울 듯이 움직인다. 마치 그날 세월호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신 감독은 김종윤 촬영 감독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는 "고정으로 찍어놓은 것도 있고 기울어져 찍은 것도 있는데, (기울인 것이) 너무 탁월한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라며 "직접적으로는 배가 기울어지는 묘사일 수도 있고, 상징적으로는 경은이 죽음으로 인해서 부모의 세상은 끝났다, 상실이 됐다,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유가족부터 시민까지, 우리 모두가 세월호 '당사자'
'목화솜 피는 날'에는 세월호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소속 배우인 2학년 7반 곽수인 엄마 김명임, 정동수 엄마 김도현, 2학년 3반 정예진 엄마 박유신, 최윤민 엄마 박혜영, 2학년 6반 이영만 엄마 이미경, 권순범 엄마 최지영씨가 출연했다.
신 감독은 노란리본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감독 이소현)을 본 후 세월호 엄마들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노란리본 배우들은 목포와 진도까지 흔쾌히 내려와 촬영에 참여했다.
"최덕문 배우가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다들 연기가 우리보다 살아 있고, 진정성이 있다고 말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이 자기를 보여주는 직업이다 보니 어떤 상황이 닥치면 캐릭터를 넘어서서 자기를 보이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의 일이기 때문에 자신보다는 유가족 역할에 정말 적합하게 연기해 주셨어요. 다른 배우들도 현장에서 유가족분들의 느낌을 받아서 더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해주신 거 같아요."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10년 세월을 한 걸음씩 밟아나가며 만들어간 영화는 단순히 세월호라는 슬픔의 기억과 애도만을 다루지도, 세월호 유가족들만을 조명하지도 않는다. 유가족 옆 언니라는 이름으로 슬픔을 드러내지 못했던 또 다른 유가족, 그리고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슬픔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모든 시민이 '목화솜 피는 날' 안에서 비로소 지난 10년을 말한다. 이러한 영화의 가치는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도 빛을 발한다.
일반적인 영화가 출연 분량과 중요도에 따라 순서대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다면, '목화솜 피는 날'은 경은(박서연)과 남학생 1(이재학), 2(한승혁) 그리고 버스 운전기사 황진수(최덕문)의 이름이 먼저 올라온다. 신 감독은 "사실 병호랑 수현(우미화)이 분량과 중요도 면에서 압도적이지만, 하나하나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식상한 말이겠지만, 세월호라는 사건 앞에서 유가족뿐 아니라 같이 활동한 활동가분들, 그걸 말없이 지켜봐야 했던 시민, 행동하지 못했던 도와주셨던 분, 거기에 대해서 불편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분까지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계자라는 생각에 그렇게 배치했다"라며 "이 영화를 보는 관개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 세월호의 '당사자'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영화는 에필로그를 끝까지 봐야 완성되는 영화예요. 기사를 보시는 극장주분들이 가능하면 불을 좀 늦게 또는 연하게 켜주시면 좋겠다는 게 저의 청입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