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정지혜 감독이 '정순'에게 주체성을 불어넣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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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순' 정지혜 감독 <하> '중년 여성 피해자'라는 틀에서 '정순'으로 거듭난 방식에 관하여

영화 '정순' 정지혜 감독.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정순' 정지혜 감독.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스포일러 주의
 
중년 여성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관해 사회와 미디어는 '중년 여성'이라는 틀과 '피해자'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하나의 이미지로 묶이길 강요할 때가 있다. 이런 모든 틀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객체에서 주체로 거듭나는 인물이 바로 '정순'이다.
 
영화 '정순'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된 중년 여성 정순이 자기 자신으로 다시 바로 서는 이야기를 그려가며 여러 틀과 차이를 드러내고 이를 하나씩 깨부순다. 그 안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생각하지 못했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도 숨어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정지혜 감독의 우리 사회를 향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과연 정 감독은 '정순' 안에서 어떻게 수많은 선입견과 틀을 하나씩 벗겨내고, 또 이에 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보자는 물음을 던졌는지,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영화 '정순'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정순'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디지털 성범죄'의 재현에 관한 고민

 
▷ 영화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장면 자체를 수위 높게 묘사한다든지 하지 않고, 적정선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내부 스태프들끼리도 의견이 되게 다양했다. 그래서 난 일단 표현에 있어서 최대한 조심했으면 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관객들에게 우리가 영화로서 보여드리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정순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방법을 찾았다. 또 김금순 배우와도 그 장면에 대해서 논의했을 때 합의점이 알맞게 맞아떨어졌다. 관객분들도 휴대전화 속 영상이 보이지 않더라도 정순의 노래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진입했다.
 
▷ 정순의 딸 유진이 경찰서에 가서 엄마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직접 진술, 피해 사진 캡처 요구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겪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일들이 보인다. 이러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거 같다.
 
시나리오를 2018~19년쯤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더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가 정말 낮았다. 또 피해자들은 직접 사설 업체를 통해 영상을 삭제해야 그 과정을 버틸 수 있는 상황이 많았다. 그래서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 왜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 왜 이런 현실에 아무도 관심 없는지 분개하면서 썼다.
 
이후 N번방 사건이 있었고, 이후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법이라던가 처벌 수위가 시나리오를 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먼데 거기서 좀 멈춰있는 것 같다. 그래서 관객분들이 '정순'에서 그려지는 것들이 그렇게 옛날일 같지 않다고 느끼는 것도 안타까웠다. 영화를 제작할 때보다는 조금 변화가 있었다는 것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변화가 이뤄져야 할 거 같다.
 
▷ 보통 피해자를 향해 "왜 그랬어?"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은연중에 수사기관도, 미디어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거나 피해자 탓을 할 때가 있는데, 정순의 가족과 동료는 그렇지 않았다는 지점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시나리오 작업할 때는 나도 일차적으로는 그런 주변인의 반응을 그렸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그런 걸 배제하게 됐다.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너무나 많이 그려왔던 장면이기에, 영화에서는 반복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인지 못 하고 있었는데 보신 관객분들이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그런 대사가 없어서 좋았다고 이야기 해주셔서 더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정순'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정순'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정순은 저항하고 분노하고 자신을 찾아 나아간다

 
▷ 정순이 사건 이후 처음으로 공장에 간 후 고개 숙이지 않고, 또 영상 속 노래와 춤을 재현하는 장면도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저항하려는 분노이자 선언처럼 보였다. 그동안 어떤 성범죄 피해자를 다룬 콘텐츠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었다.
 
정순이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으로 인해 영수와 도윤을 선처하지만, 정순이라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결연함과 떳떳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정순이 공장에서 가서 너희가 숨어서 봤던 걸 이렇게 내가 보여준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자기 삶의 의지를 남들에게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선언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신을 시나리오 단계 때 추가한 거다.
 
도윤이 정순을 부르지 않았는데도 출석 부르는 곳에 찾아오자 당황하는 모습부터 도윤이 일할 거 없으면 가만히 있으라니까 정순이 "내가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라고 하는 대사도 정순이 가해자들에게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숨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장면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 영수의 달방 앞에 있는 여성 노숙자가 등장한다. 영수와의 관계를 들킬까 노심초사했던 정순은 늘 얼굴을 가린 채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영수의 방에서 빠져나온다. 그런 정순은 노숙자를 보고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노숙자가 정순과 동년배 여성으로 설정됐다. 어떤 의미를 가진 캐릭터인가?
 
영수와의 관계가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아님에도 부끄러움 등을 느낀다. 그런데 영수의 달방을 나올 때마다 동네 토박이라 웬만하면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임에도 전혀 할 수 없는 인물을 반복해서 만난다면 정순의 심경 변화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에 노숙자를 떠올리게 됐다.
 
노숙자 성별 없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일차적으로 그 사람이 남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 이것도 되게 편견이고, 내가 너무 관성적으로 생각한다는 생각에 '여성 노숙자'라는 성별을 지정하게 됐다. 정순이 처음 그를 볼 때는 자기와는 다른 환경에 놓인 인물,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에 무섭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정순이 그를 걱정도 하는 등 되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면 좋을 것 같았다.
 
또 노숙자를 통해 정순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건 이후 정순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영상이 유포된 환경에 놓이게 된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정순이 그 노숙자를 봤을 때 자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 자신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동질감을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연령대도 정순과 비슷하게 설정하고, 김금순 배우와 닮은 이은희 배우를 캐스팅했다.

영화 '정순'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정순'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 영화에서 자동차와 운전석, 조수석은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늘 조수석에 앉아 조주석 창가를 통해 보이던 정순이 영화 마지막으로 가면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백미러를 통해 웃는 얼굴이 보인다. 여성성이라는 사회가 만든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피해자성을 넘어 객체에서 주체로 거듭나는 정순의 모습이 담겼다.
 
사실 내가 면허가 없어서 다른 분들이 운전하는 차에 탈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디로 이동하는 에 있어서 수동적이 되거나 범위가 좁아지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그걸 정순한테 대입했을 때, 정순은 운전을 배워서 수동적이지도 않고, 범위가 제한적이지 않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운전이라는 요소를 넣게 됐다.
 
▷ 마지막으로 예비 관객들을 위해 '정순'을 홍보해 달라.
 
'정순'을 우리 주변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 영화를 보시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나와 내 주변을 생각하게 되고, 나는 앞으로 나와 내 주변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등을 고민하게 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관객분들께서 그렇게 영화를 봐주시면 제일 좋을 거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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