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무당 화림 역 배우 김고은. BH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배우 김고은은 자신의 얼굴과 내면에 다양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배우다. 때로는 과감한 얼굴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강렬한 에너지를 터트리고, 때로는 사랑스럽거나 강단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어떤 우려도 김고은을 만나면 호평으로 돌아선다.
그런 김고은이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화려하고, 가장 날카로운 모습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영화의 본편이 공개되기도 전, 예고편 속 짧은 장면만으로도 '성공'을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에서 김고은은 원혼을 달래는 무당 화림으로 열연을 펼치며 벌써 200만이 넘는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실제 굿을 접한 관객들이라면 김고은의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섬세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김고은은 완벽하게 무당 화림으로 변신했다.
실제로 김고은은 무의미해 보이는 작은 동작 하나에 자신이 그려야 할 화림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관찰하고, 몸으로 기억하고, 이를 펼쳐내며 '파묘'의 가장 강렬하고 역동적이며 인상 깊게 남을 대살굿 장면을 완성했다. 김고은은 당시를 회상하며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다"고 했다.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 김고은에 깃든 무당 화림
▷ '파묘' 시나리오를 읽은 후 이 작품이 가진 영화적인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그리고 장재현 감독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연출적인 부분에서 감탄한 지점은 무엇이었는지도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일단 내 캐릭터의 매력도가 정말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험한 것'을 감독님이 어떻게 구현해 내실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계속 상상을 하면서 읽게 됐다. 그리고 내가 워낙 감독님 전작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막연한 상상이 감독님의 손길을 거치면 좋은 장면으로 탄생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 영화로 나왔을 때는 감독님의 디테일이 너무 좋았고, 긴 시간인데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잘하신 거 같다.
▷ 화림 역을 어설프게 보이기 싫어서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고 들었다.
나는 무속인의 포스나 아우라가 사소한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물론 굿이나 경문 읊는 것처럼 큰 퍼포먼스를 잘 해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굿을 준비할 때 몸을 살짝 떤다거나 목을 꺾는 등 디테일한 동작을 크게 관찰했다. 그리고 원래는 없었던 부분인데, 무속인 선생님들이 휘파람을 많이 부시더라. 휘파람은 왜 불고 몸은 왜 떠는지 하나하나 물어보며 했다.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 ▷ 무속인들과 전화 통화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들을 주로 물어봤나? 굿이나 경문 읊는 장면 등 중요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선생님들이 바쁘셔서 현장에 안 계셨기에 혼자 하면서 뭔가 불안한 순간이 찾아오면 무조건 전화했다. 현장에서 내가 휘파람 부는 모습을 넣어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을 때도, 난 귀를 잡아서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을 가져가 보고 싶었는데, 그게 괜찮은 건지, 정말 아주 사소한 것들을 다 물어봤다.
▷ 경문을 외울 때는 특유의 목소리 톤으로 음률까지 넣어야 해서 힘들었을 것 같다. 그 장면이 연습 시작할 때부터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어설프면 진짜 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장면 찍는 날이 잡혀 있으면 미뤄졌으면 좋겠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장면이다. 실제 굿을 보면 선생님들이 어떤 퍼포먼스를 하기 전에 경문을 쫙 읊는데,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저건 내공인데 내가 아무리 연습한들 될까 싶었다.
하실 때마다 음을 다르게 타길래 물어보니 음을 타는 건 애드리브라고 하더라. 그게 진짜 안 된다. 그래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연습하다가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선생님에게 한 세 번 정도만 처음부터 끝까지 해달라고 부탁해 녹음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그중 내가 가장 잘 탈 수 있는 음들을 노래처럼 통으로 음을 외우기로 한 거다. 그래서 통째로 외웠다.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 대살굿을 완성하기까지
▷ 예고편부터 화제를 모았던 대살굿 장면은 어떻게 연습한 건가? 촬영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선생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동작도 어떤 신을 받았는지에 다라 동작이 다르다. 장군신을 받았을 때는 뛸 때도 말 타듯이 뛴다든지, 칼을 어떻게 잡는지 설명으로 듣기도 하고 직접 해보기도 했다. 피 마시는 것 등 행동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알려고 했다. 그리고 굿 중에서도 대살굿 같은 터프한 굿은 잘 안 한다고 들어서, 실제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봤다.
▷ 영화를 보면 정말 접신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다. 실제로 그런 평가도 많이 나오고 있다. 우선 그런 평가에 대해서는 기분이 좋고, 너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사실 무속신앙을 잘 몰랐기에 어색하게 표현될까 걱정했던 부분이 가장 컸기에 그런 평을 해주셨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 현장에서 내가 뛰기 시작하자 징이나 북을 쳐주는 분들이 더 세게 쳐주시고 흥을 더 올려주시는데, 그게 파이팅을 올려주는 게 있다. 실제로 힘이 더 올라오더라.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 ▷ 우스갯소리지만, 그러다가 정말 접신하거나 귀신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되진 않았나? 그게 실제 퍼포먼스고, 경문도 실제 경문이니까 그런 거 하다가 실제로 신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하고 그랬다.(웃음) 사실 그것보다도 난 사실 귀신을 볼까봐 걱정했다. 왜냐하면 내가 오컬트를 좋아하고, '심야괴담회'도 열심히 본다. 그런 걸 보면 너무 쉽게 귀신이 보이고,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보여서…. 그런 걸 하도 많이 보니까 나에게도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무속인 선생님들이 못 볼 거라고 그러시길래 그렇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웃음)
▷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장면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니 어떤가?
굿을 할 때, 무속인 선생님이 이런저런 것들을 하며 칼을 바닥에 던질 때가 있다. 그러면 제자분들이 옆에서 다 받아주고 주워준다. 내가 촬영할 때는 그걸 선생님이 다 해주셨다. 영화에도 나온다. 그것도 기분이 좋더라. 되게 감사했다. 그렇게 해주시니까 진짜 내가 뭔가 능력 있는 무속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거기서 오는 자신감도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영화 '파묘' 무당 화림 역 배우 김고은. BH엔터테인먼트 제공 김고은은 한계를 짓지 않는다
▷ 필모그래피를 보면, 장르도 다양하고 연기의 폭도 정말 넓은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배우 김고은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고 생각하나? 스스로 단정 짓지 않는 게 가장 큰 게 아닐까 싶다. 뭐는 안 하고 싶고, 뭐는 하고 싶고, 뭐는 안 되고… 그런 게 내 안에는 없다. 모든 배우가 그러겠지만, 어떤 한 작품이 대중에게 크게 각인되고 나면 비슷한 결의 작품들이 많이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보이지 않은 모습이 분명하게 있지만, 그 보이지 않은 모습을 끄집어내는 도박 같은 선택을 하기 쉽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내 안에서도 뭔가 한계를 지으면 정말로 한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난 스스로 단정을 안 짓는 편인 거 같다.
▷ 늘 누군가에게 자신의 결과물을 내보이고, 동시에 평가를 받고 또 선택받아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길을 걸어 나간다는 건 김고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난 배우는 정말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하다. 꼭 배우이기 때문에 항상 결과물에 대해서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직업이 평가받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당연히 좋고, 처음에 갖고 있던 의도대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순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정말 많은 분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고,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이기에 너무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