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덕희' 박영주 감독. ㈜쇼박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누구나 한 번쯤은 보이스피싱 문자나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뉴스에도 수없이 등장한 보이스피싱 사건을 보면 어떻게 저런 문자에 속아 넘어갈까 생각하지만, 범죄자들이 노리는 건 피해자의 취약해진 부분이다. 그러나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를 노리고 파고든 범죄자들이 아닌 피해자를 탓할 때가 많다. '시민덕희' 역시 그러한 현실을 담았다.
그러나 '시민덕희'가 가고자 하는 길을 현실과는 다르다. 모두가 '피해자 탓'을 할 때 영화는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의 문제라고 정확하게 짚어낸다.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한 피해자이자 평범한 시민 덕희가 보이스피싱 총책 잡기에 나서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피해자를 생존자로,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은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에게 있다고 거듭 이야기한다.
그것이 바로 박영주 감독이 '시민덕희' 속 덕희와 '시민덕희'의 모티프가 된 사건의 주인공 그리고 현실을 사는 모든 덕희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덕희는 또 다른 피해자와 연대하고, 자신의 피해를 경시했던 공권력의 사과를 받아낸다. 박 감독이 바라는 세상의 풍경이기도 하다. 지난달 '시민덕희'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박영주 감독에게 영화의 시작점과 영화를 통해 그려내고 싶었던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쇼박스 제공 '보이스피싱'은 피해자 잘못이 아니다
▷ 2016년 화성 보이스피싱 검거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해당 사건을 접한 후 해당 사건에서 영화에 꼭 녹여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실제 피해자인 김성자씨를 만나서 이야기 들었을 때 놀랐던 부분 중 하나는 피해자임에도 범죄자 탓을 하기보다 굉장히 자기 잘못이라고 많이 생각하시더라. 안타깝고 놀랐던 부분 중 하나다. 경찰 인터뷰를 하면서 다른 피해자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다른 피해자도 그렇다더라. 그래서 영화를 통해 피해자들 잘못이 아니라고, 자책감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 실제 사건에서 감독이 영화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방향으로 그려내고 싶었던 지점은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다. 보이스피싱이 악질적인 범죄임에도 이를 가볍게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전반적인 인식이 장난스럽게 희화화된 부분이 있다 보니 그런 걸 바로잡고 싶었다. 조직적이고 교묘한 수법을 이용해서 피해자가 생기고 있다. 또 직접 얼굴을 보며 사기 치는 게 아니라 전화상으로 익명성에 기대 사기를 치다 보니 죄책감을 안 가지는 경우가 많다더라. 그런 부분이 화가 났었다.
그래서 연출할 때 절대 가볍게 다루지 말고 잘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보이스피싱 자체가 전화로 진행되기에 별로 위협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어서 이 범죄가 무섭고 위험하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가시화할 수 있는 영상화 작업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쇼박스 제공 ▷ 혹시 김성자씨도 영화를 보셨는지,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궁금하다. VIP 시사회에 오셔서 영화를 보시기 전에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씀하셨다. 그다음 무대인사를 하는데 오셔서 김성자씨가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자신은 그 일을 겪었을 때 누군가 미안하다고 한 적도, 보상받은 적도 없고, 속상한 부분이 많았는데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되게 감사했고, 내 몫을 했나보다 싶어서 한시름 덜었다.
▷ 이번 영화를 위해 보이스피싱 관련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지점은 무엇인가? 관련된 책 중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는데, 보이스피싱 범죄가 정말 악질적인 이유는 단순히 돈을 빼앗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절망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노리는 사람들이 사회 취약층, 절박하고 절실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악질적인 범죄다.
경찰들을 조사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취업을 앞둔 친구가 인출책에 가담하게 된 경우였다. 처음에는 인출책인 줄 몰랐는데 도중에 어느 정도 알게 된 거다. 결국 그 친구는 잡혔는데, 넌지시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이 되지 않았다. 정말 후회했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무서웠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쇼박스 제공 '시민덕희'의 균형점
▷ 영화는 적절하게 현실적인 이야기와 코미디를 오가면서, 보이스피싱과 덕희의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받아들이게끔 한다. 이러한 균형점을 찾기까지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이게 너무 무겁게만 그리자니 일상성이 깨지는 거 같고, 그렇다고 코미디만 하자니 보이스피싱 범죄가 너무 가볍게 비칠까 싶어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평범한 시민들이 총책을 잡으러 가는 과정이 녹록지 않고, 그 과정을 마냥 무겁게만 그리면 오히려 캐릭터 덕희가 가진 힘이 약해질 거 같다고 생각했다.
덕희는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위트와 재치를 유지하는 인물이다. 평범한 시민이기에 프로 형사처럼 착착 사건을 해결할 수 없는 만큼 그런 개연성을 깨지 않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고 웃음이 새어 나올 수 있으면 더 재밌게 볼 거라 생각했다. '더 글로리'에서 현남이 '나는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라고 한다. 비록 처한 상황이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웃을 수 있는 거다. 덕희가 씩씩하길 바랐다. 씩씩한 캐릭터로 하려다 보니 그런 신들이 생길 수 있었다.
▷ 보이스피싱 본거지는 누아르 장르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어떤 공간으로 보이길 원했나? 아무래도 다른 장르처럼 보이게 일부러 연출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자체가 가벼운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관객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연출하고 싶었다. 폭력적인 부분도 있는데, 실제로 조직 안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폭력이 많이 자행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아이가 갇혀 있고,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공간을 상상해 봤을 때 마냥 편하지 않은 공간일 거라 생각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창문을 다 신문지 같은 거로 막아 놨다. 빛이 못 들어와서 시간을 헤아리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전화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만들었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쇼박스 제공 "덕희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과정
▷ '시민덕희'를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점 그리고 가장 보람을 느꼈던 지점은 무엇인가?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덕희가 총책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할까, 일개 피해자고 시민이고 힘 없는 덕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이었다. 그런데 덕희의 대사를 쓰고 알았다. 스스로를 잘못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는 걸 클라이맥스 대사를 쓰는 순간 나도 알게 된 거다.
▷ 어떤 목표처럼 꼭 해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는 가족 이야기다. 사실 사연 없는 가족이 없잖나. 나도 가족 관계가 좀 복잡한 편인데, 가족을 통해서 애증의 감정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게 우선인 거 같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쇼박스 제공 ▷ 연출자로서 놓치지 않고 끝까지 가져가고 싶은 목표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감독이라는 건 결국에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거 같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이야기를 쓰다 보면 부정적인 피드백이 올 때도, 타협해야 할 지점도 있고 여러 순간이 있는데, 그래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자 한다. 내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잃지 말고, 스스로에게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되고자 한다.
▷ '시민덕희'는 이런 영화라고 예비 관객들을 위해 한 줄로 홍보를 해본다면? '시민덕희'는 진심을 담아서 재밌게 만든 영화! 관객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평은 "재밌다"인 거 같다. 그것만큼 기쁜 호평이 없는 거 같다. "너무 재밌다!"고 하면 더 좋고! (웃음)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