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 스틸컷. 명필름·시네마6411 제공※ 스포일러 주의 늘 그곳, '길위에' 정치인 김대중이 있었다. 민중이 부르는 곳에는 늘 정치인 김대중이 있었고, 정치인 김대중이 있는 길 위에는 늘 민중이 있었다.
"나는 늘 길 위에 있습니다. 누가 부르든지 늘 달려가겠습니다."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처럼 그의 정치 인생은 늘 길 위에 펼쳐졌다. 정치인으로서 첫걸음을 뗀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독재정권의 탄압과 낙인 속에서도 민중을 등에 업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삶을 담아낸 영화가 '길위에 김대중'이란 제목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 것 역시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늘 그곳에 있었지만, 극단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일관되게 실천했지만, 아직 '정치인 김대중'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제작자와 감독 역시 그의 삶의 궤적을 좇으며 그동안 몰랐던 정치인 김대중을 만났다. 그렇기에 두 사람을 비롯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길위에 김대중'이 더 많은 관객에게 가닿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1959년 강원도 인제 선거 당시 거리 유세 모습.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제공 왜 '길위에'였을까
영화를 보기 전, 제목 '길위에 김대중'만 본 관객이라면 의아해할 수 있다. 맞춤법대로라면 '길위에'가 아닌 '길위의'가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왜 '길위에'여야 했는지 그 숨은 의미를 알 수 있다. 민환기 감독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의 일생에 그 답이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의 길을 가기로 한 후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면서 만났던 분들의 열망이 김대중 대통령을 굽히지 않게 하는 데, 되게 큰 성장의 밑바탕이 됐던 거 같아요. 길 위에 서 있었기에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분이 겪은 수많은 역경도 사실 사람들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 열망을 무서워 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김대중 대통령을 역경에 처하게 한 동시에 굽히지 않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는 점에서 '길위에 김대중'이란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_민환기 감독 영화의 제목을 정하는 일이란 보통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영화는 50개 후보를 두고도 정하지 못해 개봉 2주 전에서야 겨우 지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길위에 김대중'은 이구동성으로 좋다는 의견을 얻어 빠르게 결정 났다. 이 자리에 민 감독은 없었지만, 그 역시 제목과 선정 이유를 듣고 반길 수밖에 없었다.
"편집본을 보고 모여서 제목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길위의 김대중'이 나왔어요. 그런데 '길위의'는 수동적이고 정적이라 '길위에'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고, 영화 속 인터뷰에도 '난 늘 길 위에 있었다'란 내용이 담겨 있기에 그 자리에서 '길위에 김대중'으로 제목을 결정했어요." _최낙용 대표 1980년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당시 모습.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제공민 감독은 "'길위의'라고 하면 김대중 대통령 한 사람만 주목하는데, '길위에'라고 하면 그분도 있고 다른 사람도 있게 된다"고 또 다른 의미를 설명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의 얼굴이 계속 나와요. 그분의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성취됐는지에 대한 거대한 흐름을 정치인 김대중을 지지했던 사람들,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과 함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_민환기 감독
그렇다면 늘 길 위에 서 있던 정치인의 일생을 따라가며 만난 끝에 보게 된 김대중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었을지 궁금했다. 최낙용 대표는 답하기에 앞서 '길위에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김대중 대통령 100주년에 바치는 '영화인의 헌사'라고 이야기했다.
"그분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어요. 한정된 활동만 보고 비판적으로 판단한 적이 있는데, 결국 그분은 일관되게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도화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걸었던 의회주의자인 정치인이었던 거죠. 또 종교적인 심성에서 나온 관용과 용서, 화합의 태도는 요즘 같은 시기에 더 중요한 거 같아요." _최낙용 대표김대중 대통령 100주년 탄생일인 1월 6일을 기념해 현지 시간으로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비츠 대학교 상영관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 해외 첫 상영회 모습. 명필름·시네마6411 제공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 위한 '도전'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영화에 비해 관객 선호도가 낮은 편이다. 또한 많은 상영관을 배정받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길위에 김대중'은 새로운 길을 나아가기로 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관객과 만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죠. 감독님이 작품을 잘 만들 거라는 신뢰가 있었기에, 제가 할 일은 잘 만든 작품을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하는 거였죠." _최낙용 대표 그래서 최 대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영화 상영위원회'를 발족하고, 영화관뿐 아니라 공공장소 같은 새로운 상영 공간도 적극적으로 개척하기로 했다. 바로 '연대'의 힘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 해외 상영회 모습. 명필름·시네마6411 제공지난해 8월부터 위원회를 조직하기 시작해 13개 위원회가 완성됐다. 광주에서만 17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편집본이 나올 때마다 위원들에게 보여주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영화를 잘 알아야 상영을 위한 설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텀블벅 펀딩도 진행했다.
"지역에서 움직이는 걸 '지상전'이라 하고, 저나 감독 등이 각종 방송에 나가는 걸 '공중전'이라고 불렀어요."(웃음) _최낙용 대표
정기적으로 회의도 하고, 치열하게 논의하고 소통하며 개봉을 준비했다. 상영관 확보와 예매율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발로 뛰고 또 뛰었다. 국내 개봉에 맞춰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일본, 중국, 독일 등 해외 15개국 30개 도시 동시 상영도 마련했다. 연대의 결과다.
"단순히 후원하고 협찬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같이 만들어 나간 거예요. 장르의 한계, 제작비, 배급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함께한 거죠. 그게 이 영화의 성과일 수 있겠지만, 동시에 배급 상영에 있어서 직배사(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배급하는 회사)나 큰 메이저 영화가 아닌 영화들이 극장에서 관객 만날 수 있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런 부분도 같이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_최낙용 대표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 민환기 감독과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 명필름·시네마6411 제공
'길위에 김대중'의 성취와 바람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지상전과 공중전까지 치른 끝에 완성된 '길위에 김대중'은 이제 더 많은 관객과 만나는 일만 남았다. 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영화를 하면서 객관성을 잃지 말고, 게을러지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게을러지면 기존에 나와 있는 평가에 편승해서 가게 되거든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영화를 마지막에 내놓으면서도 게을러지지 않았던 것, 그게 성취인 거 같아요. 적어도 내가 게을러서 기존의 느낌을 또 한 번 반복하지 않으려 했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_민환기 감독 제작자인 최낙용 대표 입장에서는 민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가 몰입하기 어려운 장르라는 선입견을 깨고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준 것 역시 하나의 성취다.
"무엇보다도 영화 한 편이 완성될 때 느끼는 건데, 항상 감동이에요. 누군지 모를 분들이 펀딩에 동참하고, 영화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볼 때…. 세상은 여전히 맑고 곱고 연대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하게 돼요. 그게 굉장한 성취인 거 같아요." _최낙용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 스틸컷. 명필름·시네마6411 제공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예비 관객들을 위해 '길위에 김대중'이 어떤 영화인지 한 줄로 정리했다.
"정치를 통해서 세상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던 사람에 관한 영화. 그 사람이 성장하는 이야기." _민환기 감독
"다섯 번 정도는 울음을 참아야 하고 한 번은 꼭 울 수밖에 없는, 몰입할 수 있는 영화." _최낙용 대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