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가 죽었다' 김세휘 감독. ㈜콘텐츠지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누군가가 시체를 발견했는데, 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누군가는 어떻게 시체를 발견했고, 왜 신고를 할 수 없었던 걸까. 한 줄의 문장에서 파생한 질문과 의문은 '보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라는 욕망 그리고 현대 사회가 가진 양가적인 속성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결합해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로 탄생했다.
언뜻 SNS의 폐해를 그린 듯하지만 영화가 진짜 보여주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본성은 스릴러라는 옷을 입고 관객들을 몰입시키며 질문을 던진다. 장르가 가진 속성에 대한 김 감독의 탐구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도록 이끌었다. 그는 '그녀가 죽었다'를 두고 "잠깐 딴짓할 시간도 없는, 몰입감 높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더불어 배우 변요한, 신혜선, 이엘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한 줄의 문장이 SNS의 시대 인간의 본성과 이중성을 파헤치도록 했는지, 이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인 재미까지 갖춰 완성할 수 있었는지,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콘텐츠지오 제공한 줄 문장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다
'그녀가 죽었다'는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가 자신이 관찰하던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의 죽음을 목격한 후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한소라의 주변을 뒤지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김세휘 감독이 '그녀가 죽었다'를 시작한 건 바로 한 줄의 문장이었다. 보통 이야기를 쓸 때 김 감독은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문장부터 시작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 역시 '누군가가 시체를 발견했는데, 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면'이라는 문장에서 시작했다.
그는 "'왜 신고를 못 했을까' '자기도 거리끼는 게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마인드맵 하듯이 펼쳐나갔다. 어떤 상황에서 가장 극적으로 재밌는 상황이 펼쳐질지 생각하면서 로그 라인과 시놉시스를 짰다"라고 설명했다.
거리낌은 '훔쳐보기'라는 욕망으로 구체화했다. 영화는 '보고 싶다'라는 관찰자로서의 욕망과 '보여주고 싶다'라는 관찰 대상자로서의 욕망이 양가적인 속성을 가진 CCTV와 SNS와 만난다. 그러나 김 감독은 처음부터 SNS를 소재로 삼진 않았다. 오히려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 중 자기 합리화, 변명을 늘어놓는 이야기"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포스터. ㈜콘텐츠지오 제공자기 정당화를 다룬 심리학책 '거짓말의 진화: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저자 엘리엇 애런슨, 캐럴 태브리스)에서 악인이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자기 합리화를 하는 내용을 보게 됐고, 이를 영화에 녹여내고자 했다. 그는 "이런 합리화를 보통 사람이 하는 것보다 극에 있는 사람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영화의 주제가 좀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에 더해 타인이 숨기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싶어 하는 나쁜 본성이 사람마다 다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변명을 계속하면서 남의 비밀 알고 싶어 하는 인물, 그런데 그 변명이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선을 넘지는 않는다고 하는 캐릭터를 먼저 만들었어요. 그게 구정태예요." 구정태를 만든 다음 구정태와 가장 극에 닿아 있는 캐릭터로 떠올린 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다 숨기는 인물, 인플루언서 한소라였다. 극에 놓인 두 인물이 맞닥뜨리면 강렬한 스파크가 나올 거라 예상했다. 그런 캐릭터로 직업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고, 구조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SNS라는 소재에 가닿았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콘텐츠지오 제공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미션
남의 삶을 훔쳐보는 공인중개사와 남의 관심을 훔쳐 사는 인플루언서의 만남을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로 그려가는 과정에서 관객들의 몰입과 장르적인 재미를 위해 김 감독이 중요시 한 건 바로 '속도감'이었다.
그는 "내게 '재미'라는 건 복합적이었다. 스릴러적으로 무조건 무섭고 긴장되기보다 상황이 빠르게 몰아친다면, 변화하는 속도감에 관객들이 재밌게 볼 거라 생각했다"라며 "영화 속 캐릭터들이 정상인들이 아니다 보니 너무 무겁게 가면 오히려 비호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웃음 포인트를 넣으며 풀어줄 때는 풀어주면서 상황적인 호흡과 리듬감을 가져갔다"라고 설명했다.
문제적인 캐릭터들, 특히 구정태는 한 사건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건의 피해자가 된다. 이때부터 구정태를 관찰하는 관객들에게는 불편한 몰입이 생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구정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이냐는 점이다.
"가장 크게 우려한 지점이었는데, 구정태를 옹호하고 미화하지 말자는 게 중요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구정태와 한소라를 미화하지 않으려는 나의 진심을 관객분들께 알아달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오히려 그들의 뻔뻔한 면모를 더 보여주자는 거였어요. 둘의 목소리(내레이션)를 듣는 관객은 오히려 가치 판단을 통해 그들이 구제 불능이라는 생각이 들 거라 생각했죠." 그럼에도 만약을 위해 마련한 게 바로 오 형사의 마지막 발언이다. 오 형사는 영화 안에서 관찰자로서 중요한 위치에 놓인 인물이다. 바로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구정태를 관찰한 후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던 관객들의 머릿속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혹시라도 관객분들이 오해하실 수도 있기에 너무 직접적일 수도 있지만, 오영주의 입을 통해 도장 찍듯이 구정태가 어떤 인물인지 이야기했다. 편집 과정에서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내가 거의 우기다시피 무조건 들어가야 해서 넣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콘텐츠지오 제공 욕망의 공간에 놓인 배우들, 그들의 열연으로 완성한 '그녀가 죽었다'
영화 안에서 구정태의 욕망과 그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또 하나의 장치는 그의 집에 전시된 개미집과 창고다. 구정태의 내면에 얼마나 남의 집 안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과 타인의 집을 훔쳐봄으로써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지가 공간에 녹아있다.
특히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온전히 드러낸 창고와 달리 선을 넘지 않으려 한 공간인 집에서조차 남의 집을 엿보고자 하는 욕망은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 게 바로 개미집이다.
이 부분을 두고 김 감독은 CG 팀과 논의했지만, 제작비의 문제로 실제 개미들을 채집해 키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결국 섭외한 개미 전문가가 외래종을 선별해 채집, 한 달 정도 먹이를 주며 키운 후 미술팀이 지어놓은 집에 개미들을 풀어줬다. 김 감독은 "다행히 개미들이 잘 적응해 줬다"라며 개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어 개미집을 깨트리는 장면은 개미의 안전을 위해 개미 없이 진행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모든 요소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김 감독 역시 변요한, 신혜선, 이엘이 보여준 호연에 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변요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는 '성덕'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 감독은 "'들개'와 '소셜포비아'를 보고 너무 감탄해서 그가 출연한 단편영화 중 찾아볼 수 있는 건 다 찾아봤다"라며 "'토요근무'(2011)에서 위험해 보일 수 있는 장면인데도 그게 하나도 안 위험해 보이고, 이 사람은 선을 넘을 거 같지 않은 선(善)을 가진 사람을 연기했다. 구정태는 그런 이미지가 중요한 인물이어서 내게 꼭 필요한 배우였다"라고 강조했다.
영화 '그녀가 죽었다' 스틸컷. ㈜콘텐츠지오 제공한소라의 경우는 사람을 확 빠져들게 하는 매력은 물론 큰 폭의 감정 연기를 섬세하게 할 줄 아는 배우가 필요했다. 김 감독이 보기에 신혜선은 한소라에 적역이었다. 그는 "신혜선 배우가 출연한 스릴러 영화를 보면 굉장히 섬세하게 미세한 표정의 떨림 연기 등을 되게 잘한다. 동시에 독기도 엿보이도록 표현하는 걸 보고, 영화에서 한소라의 싸이코 같은 면모가 발현될 때 보여줄 얼굴이 너무 궁금해졌다"라고 이야기했다.
오영주 형사는 영화 안에서 유일한 정상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김 감독은 "구정태의 행동을 편견이나 가치 판단 없이 일적으로 판단해 줄 이미지의 배우가 필요했다"라며 "자기 일을 집요하게 할 거 같고, 목소리도 믿음이 가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이엘 배우가 잘 맞았다"라고 설명했다.
"정말이지 배우들의 연기를 온 세상 사람이 다 봤으면 좋겠어요. 변요한, 신혜선, 이엘 배우가 얼마나 잘했는지 말이에요. 사실 이 이야기가 비호감일 수도 있고,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걸 끝까지 몰입해서 갈 수 있는 건 배우들의 힘이 정말 커요. 되게 하기 어려운 연기인데, 마치 정말 그 사람인 것처럼 해준 배우들의 연기를 관객분들도 재밌게 잘 봐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웃음)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