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쌍방울 뇌물·대북송금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지난해 검찰 조사 당시 "음식과 술을 마시며 진술 조작을 강요받았다"는 주장을 놓고 검찰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충돌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정에서 가려져야 할 형사사건이 정치영역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건의 발단은 이달 4일 이 전 부지사의 쌍방울 뇌물·대북송금 62차 공판 피고인 신문이었다. 그동안 검찰과 이 전 부지사 측은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쌍방울의 방북비용 대납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조사 과정에서 "2019년 7월 이 대표에게 대북송금 사실을 보고했다"는 진술을 토대로 공소를 이어갔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는 검찰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방용철 부회장 등의 협박과 회유로 거짓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특히 지난해 6~7월에는 검찰 관계자, 김 전 회장 등과 함께 검찰 조사실에서 술을 마시면서 회유를 당했다고도 했다.
이달 4일 법정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15회에 걸쳐 면담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회유와 위협을 당했나"라는 변호인 질문에 이 전 부지사는 "수원지검 1313호 검사실 바로 앞에 있는 '창고'라고 써있는 방에서 검찰이 나와 김성태 전 회장, 방용철 부회장 등을 불러 조사했다"며 "심지어 술도 한번 먹었던 기억이 있었고, 김 전 회장 등이 나에게 이런 식으로 진술하라고 회유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지사는 "김 전 회장은 나에게 '이재명이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되지 않으면 형님이 크게 뒤집어 쓴다. 이재명을 버려야 형님이 산다'라고 얘기도 했다"고도 덧붙였다.
이후 이어진 검찰의 반대신문에서도 이 전 부지사는 다시 한번 수원지검 조사실에서 술을 마셨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이 연어를 먹고 싶다고 해서 연어를 깔아놨고 성찬이었다"며 "아무래도 쌍방울 측에서 가져온 것 같다"고 했다.
계속된 검찰의 신문에 이 전 부지사는 "하얀 종이컵에 따라서 나눠줘서 먹었다" "(누가 나눠줬는지는) 모르겠다" "(이게 술이라는 건) 입에 대보니 알겠더라" "(교도관들이 몰랐던 이유는) 한참 진정된 뒤에 (구치소로) 돌아갔다"라고 각각 답했다.
이에 수원지검은 지난 5일 "당시 구속수감되어 교도관의 엄격한 계호 하에 있었던 이 전 부지사가 검찰청에서 김 전 회장 등과 술을 마시며 진술을 조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이 전 부지사는 법정에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한 이후에도 이러한 주장을 전혀 하지 않다가 재판 종결을 앞둔 피고인신문 과정에서 명백히 사실과 다른 일방적 허위 주장을 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이 던진 '술판' 의혹…"진술조작 모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일단락될 줄 알았던 의혹은 정치권으로 넘어가면서 확산됐다.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이 전 부지사의 법정 진술을 토대로 "검찰의 협조 없이는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 검찰청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며 "수원지검은 이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진술조작 모의' 의혹의 수사대상"이라고 밝혔다.
지난 16일에는 이 대표도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대장동 의혹 재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검찰은 '황당무계하다'는 말을 할 게 아니고 CC(폐쇄회로)TV, 출정 기록, 담당 교도관 진술을 확인하면 간단할 일"이라며 "검찰의 이런 태도로 봐서 이화영 부지사의 진술은 100% 사실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3명이 검사실 앞 '창고'라 쓰인 방에 들어가 술판을 벌이고 허위 진술을 모의했다는 것은 당사자가 한 이야기"라며 "검찰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면 그날 같은 시간에 3명의 피의자를 어느 검사실에서 소환했는지 확인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는 오는 18일 수원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원구치소도 항의 방문할 계획이다.
검찰 "전원조사 결과 이화영 주장 사실 아냐"
박종민 기자민주당의 공세가 계속되자 검찰은 17일 자체 조사결과를 공개하며 하나하나 반박했다. 수원지검은 "이 전 부지사 검찰 조사에 입회한 변호사, 계호 교도관 38명 전원, 대질조사를 받은 김 전 회장 및 방 부회장 등 쌍방울 관계자, 음식주문과 출정기록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청사에 술이 반입된 바가 없어 음주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쌍방울 관계자가 음식조차도 반입한 사실이 일체 없으며, 음주 장소로 언급된 사무실(1315호)은 식사 장소로 사용된 사실 자체가 없다"고 했다.
또 검찰은 "오늘 새롭게 음주일시로 주장된 지난해 6월 30일은 검사실이 아닌 별도 건물인 구치감에서 식사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 날에는 쌍방울 직원도 청사에 출입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 전 부지사의 주장은 허위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검찰은 "민주당 법률위원회 소속 변호사를 포함해 조사에 입회했던 변호사들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음주나 진술 조작 사실이 없었다고 진술한다"며 "이 전 부지사의 당시 계호 교도관 전원 38명도 외부인이 가져온 식사를 제공한 적이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은 이 전 부지사의 주장대로 '술판 회유'가 사실이라면 그동안 검찰의 협박의 근거로 내세웠던 '옥중서신' 등에 당연히 언급돼야 했다고 짚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7월 민주당 관계자 등과 접촉한 이후부터 조작·회유를 주장했다"며 "그해 7월과 12월 일방적 주장만 적은 소위 '옥중서신', '옥중노트'를 공개했는데 거기엔 술을 마시며 진술을 조작했다는 내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변론종결 당일에 이르러서야 검찰청에서 술을 마셨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꺼내 놓았는 바, 상식적으로 위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청 음주사실이 옥중서신이나 옥중노트에 기재되지 않거나 누락될 리 없다"며 "이러한 점에 비춰도 급조된 허위 주장임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했다.
실제 그동안 이어진 쌍방울 사건 공판에서 이 전 부지사는 검찰과 김 전 회장 등으로부터 협박과 회유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함께 술을 마셨다는 진술은 하지 않았었다.
검찰은 또 시점상으로도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은 허위라고 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5월 19일 민주당 법률위원회 소속 변호인과 함께 진술서를 작성하고 제출한 이후 지난해 6월 9일부터 30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대북송금 관련해 이 대표의 관여 사실을 모두 진술했다"며 "그런데 오늘 말했던 6월 30일 이후나 7월 초순에 술을 마셨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CCTV 공개' 주장에 대해선 "청사 CCTV는 방호 용도로 복도에만 설치돼있고, 복도 이동 상황만 녹화되며(보존기간 30일), 사무실에는 설치돼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법의 정치화…판결 공정성 해칠 우려"
류영주 기자일각에선 법원에서 가려져야 할 재판이 정치화되면서 판결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쌍방울 사건과 관련해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정치적 진영에 따라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될 우려가 있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이 전 부지사에게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야당에서 인정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전 부지사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2019년 1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스마트팜 조성 지원비용 500만 달러, 같은해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을 위해 거마비 등 명목으로 300만 달러 등 총 800만 달러를 보내는 데 관여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를 받는다.
그는 2018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차량(3대)을 제공받는 등 3억 4천만 원의 정치자금(뇌물 및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도 있다. 또 2021년 10월 당시 언론에서 자신에 대한 쌍방울 법인카드 의혹 관련 취재가 시작되자 김 전 회장에게 카드 사용내역 등 관련 자료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있다.
이 사건 선고공판은 오는 6월 7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