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호자' 정우성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베테랑 배우 정우성이 신인 감독으로 돌아왔다. 절친 이정재에 이어 장편영화 메가폰을 잡은 정우성이 선보인 '보호자'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정우성과 우리가 미처 몰랐던 정우성의 모습이 동시에 담겼다. 그렇기에 새롭고 낯설면서도 어쩐지 '정우성스럽'다.
'배우'인 정우성은 자신의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으로 관객을 만나는 모험가다.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로 활동하며 사회적인 발언도 주저하지 않아 온 정우성은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사회적 리더다. 영화 홍보가 아닌, 스스로 즐기기 위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열과 성을 다하는 정우성은 사회적인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인간 정우성'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감독 정우성'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보호자'로 연출 데뷔한 정우성은 확고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아갈 줄 아는 감독이었다. 그는 레퍼런스보다 '정우성다움'을 찾는 것이 감독으로서 스스로 나아갈 방향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뚝심 있게 '보호자'라는 그다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 '보호자'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레퍼런스 모으지 마라"
정우성 감독은 '보호자' 시사가 끝나면 마음이 개운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시사회 이후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몰려오며 떨리기까지 했다. 그는 "'보호자'는 새롭고 개성 강한 영화다. '정우성 감독'스러운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새로움이 산업에 긍정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여질 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제 '보호자'라는 배가 출항하는 건데, 넓은 바다로 나가 어떤 날씨와 풍파를 맞을지, 그런 생각들로 떨린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정 감독이 말했듯이 '보호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업적인 영화의 색채를 띠지 않는다. 액션 느와르인가 싶었지만 그보다는 캐릭터의 심리와 선택에 초점을 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영화의 톤앤매너를 정하기까지 정 감독이 가장 중점을 둔 건 자신이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감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레퍼런스를 모으지 말자는 것이었다.
영화 '보호자' 현장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보통 영화 작업을 하면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스태프와의 원활한 소통이라는 명목하에 레퍼런스를 만들어요. 그걸 스태프에게 공유해서 '이 신은 이렇게 찍을 거야'라는 작업이 이뤄지죠. 제가 처음 감독으로서 연출부에 내린 지시는 '레퍼런스 모으지 마라'였어요. 이 영화에 필요한 이미지는 시나리오 안에서 찾아가려 노력했죠. 제 나름대로는 그것이 '보호자'다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보호자'의 톤앤매너가 자연스럽게 결정됐죠."
톤앤매너를 정한 정우성 감독이 대면한 또 하나의 도전은 '클리셰'(진부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상투적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나 표현)였다. 시나리오 속 설정과 이야기가 여러 영화에서 봐온 전형적인, 즉 '클리셰'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그만의 '반항심'이 발휘됐다.
정 감독은 "영화인으로서 이러한 소재와 폭력을 대하는 방식은 정당한가 생각했다. 많은 레퍼런스를 붙여 놓은 것 같은 영화를 내놓고, 거기에 '상업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새로운 도전 의식이 어느 순간부터 상실된 것 같다는 고민이 있었다"며 "영화인으로서 영화를 아끼고 오래 하고 싶다면, 도전이 있어야 발전이 있고 그것이 관객에게도 끊임없는 가능성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영화 '보호자' 현장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평소 진지한 만큼 웃음도 중요시하는 그이기에 영화에는 자연스럽게 '블랙코미디' 색깔이 강하게 묻어난다. 그는 "물론 어떤 측면에선 진지하다. 하지만 웃음도 되게 중요하고, 이 일을 하면서 즐기지 않으면 정말 일이 일로만 느껴진다. 지속할 수 없다"며 "내가 영화 홍보한다고 'SNL 코리아' 등에도 나가는데, 사실 내겐 관객들과 다른 모습으로 소통할 기회다. 그래서 내가 즐기는 게 더 크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물론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고 사회적 민감한 이슈와 결부돼 내 이름이 언급되기도 해서 진지함으로 각인됐을 수 있다"며 "난 진지함도 중요하지만 시답지 않은 웃음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영화 '보호자'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정우성스러운' 영화를 만들어 가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정 감독이나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정우성스러운'이다. 그만큼 영화는 정 감독의 색을 가득 품고 있다.
"'정우성'다운 영화가 나왔다고 했을 때 '나다운 영화라고?' 싶었어요. 이게 나다운 영화가 될 수 있겠구나 했죠. 제가 저다운 영화를 규정하고 결정짓고 이렇게 찍을 거라고 하진 않았어요. 회의할 때도 레퍼런스를 갖고 하지 않았어요. 매 장면 상상력을 찾아가는 작업이었죠. 찾아감을 실현하고 영상화했던, 그게 연출자로서 '정우성다움'을 찾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정우성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정 감독은 보통의 영화가 갖는 '폭력성'보다 의도치 않은 행위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려 했다. 이는 소재를 대하는 '영화인'으로서의 고민이었다.
그는 "난 현실적인 인간의 고뇌 쪽으로 더 많이 집중했다. 주인공 수혁은 폭력의 시간을 부정하고 후회하는 친구라서,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수혁의 선택은 커다란 딜레마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딜레마 안에서 최소한으로 아이와 만날 방법은 뭘까 고민했던 것"이라며 "'보호자'에서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상황에 놓인다. 우리가 하게 되는 행동의 의도치 않은 파장, 아이러니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캐릭터도 어느 정도 과장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는 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더 확연하게 느껴진 캐릭터의 색깔을 반영한 결과다. 그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면서 그것들에 색을 계속 입혀가다 보니 지금의 캐릭터가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보호자' 현장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정 감독은 "성숙한 사고를 갖고 상대를 대하는 게 아니라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를 대할 때 어떤 행위가 나올지 생각하니 귀엽더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성준(김준한)의 결핍은 2인자로서 갖고 있는 내면적인 나약함이다. 그 나약함이 들킬까 봐 그게 극단화 돼 영화의 사건을 만드는 주축 인물이다. 나약함을 위장하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과장된 행위가 실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우진(김남길)은 자기 마음대로 감정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하는 친구다. 그런 종잡을 수 없는, 4차원적인 그런 모습이 실소를 자아내는 요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우성의 고민과 세심함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수혁의 딸 인비(류지안)라는 캐릭터다. 어린아이가 납치되는 역할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 아이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 어린 배우가 나오는 작품에서는 어린 배우를 단순한 캐릭터로 소비하는 경우도 많다. 정우성 감독은 어린아이, 어린 배우에 대한 클리셰적인 활용법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그는 "보통 아이를 대상화하고 나약하게 만드는데 그건 아이를 소재로, 수단으로 이용해 먹는 거라 생각한다"며 "아이를 출연시키기로 한 이상 아이도 '그 존재 자체'로 존재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미성숙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아이는 가장 성숙한 인격체일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영화 '보호자' 정우성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배우' 정우성 그리고 '감독' 정우성
'보호자'에서 정우성은 감독이자 주연 배우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최근 인터뷰에서 김남길은 "연출을 할 때 연기적 호흡을 잘 알아 배려하고 놀게 해줬다"며 정 감독을 칭찬했다. 정 감독이 배우이기에 가능한 배려였다.
정 감독은 "배우로서 감독을 하는 장점은 분명히 있는 거 같다. 배우들이 디렉션에 있어서 소통의 원활함을 이야기하는데, 배우의 입장이다 보니 소통 방식이 명확한 것 같다"며 "명확하게 디렉션을 줘야 한다고 의식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배우 일을 하다 보니 단어가 갖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 의미와 저 사람이 생각하는 의미가 같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소통의 원활함이 있는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감독으로서 자신의 연기는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사실 수혁의 딜레마, 고민, 설정, 다른 캐릭터와의 충돌 등 수혁에게는 많은 제약이 있었던 거 같다.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고. 나름 나쁘지 않게 하지 않았나"며 한참을 웃은 뒤 "이 대답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보호자' 속 그가 연기한 수혁은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삶을 쟁취하기까지 너무나 큰 희생과 혹독한 길을 걸어야만 한다. 수혁에게 결핍된 건 '평범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혁을 연기하고 그를 그려낸 정우성 감독에게 '평범한 삶'이라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어려운 질문"이라고 했다.
"익명성이 상실된 사람의 평범한 삶은 분명히 큰 결핍이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죠. 일상의 가치는 사소한 거예요.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사소한 감정과 분노 등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 감정에서 파생돼서 큰 행위로 이어지죠. 일상에서 같이 교감하는 누군가와의 시간이 다 가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해요. 일상에서 나를 보여주고, 상대를 보는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 '보호자'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배우로서 좋은 액션 영화를 선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과 '보호자'를 잘 만들고 싶다는 감독으로서의 생각이 만나 '보호자'를 이뤘다. 정우성이 '감독'을 맡아 각색부터 캐스팅, 후반 작업까지 온전히 책임진 영화다. 그는 '보호자'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감독으로서 얻은 성취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를 물었다.
그는 "극과 극은 만나는 거 같다. 늘 언제나 좋은 것에는 그것과 반대의 이면이 있다. '보호자'를 두고 '정우성다운 영화' '감독의 언어가 담긴 영화' '매혹적인 영화'라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더라"며 "'보호자'스러운, '보호자'다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내 도전이 봐주시는 분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웃기지만, 시장에 나갈 때 이 새로움을 어떻게 많은 분에게 전달해 드릴까 하는 숙제가 공존하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제게 연출할 기회가 올 때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할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어떤 시기에 제가 선택한 어떤 영화를 연출한다면, 어떤 언어와 톤앤매너를 결정할 것인지는 시기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선택하는 시나리오에 어떤 채색을 할 지, 또 어떻게 새롭게 할 지가 감독으로서 제 숙제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