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욱 전 대구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칠곡경북대병원) 진료교수. 조 전 교수는 현재 경기 시흥 신천연합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외래진료 담당이지만, 주말에는 입원환자 회진을 위해 병원으로 자진 출근한다. 본인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코로나 뚫고 재개된 공공병원 응급실…"뺑뺑이 책임, 환자에 전가 말아야" ②[르포]진천→이천 가야 '심야 응급실'…"중환자 2명이면 마비" ③"비우래서 비웠더니"…공공병원은 왜 '벼랑 끝' 몰렸나 ④[르포]소아과 '씨마른' 소멸위험지역 진료 나선 지방 의료원 ⑤소아응급의료센터 '자원'한 수도권 의사…1년 만에 떠난 이유 (끝)
|
"환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 전공의 때부터 소아응급실 선호"
경기 시흥의 종합병원(2차 의료기관)인
신천연합병원의 조병욱 소아청소년과 진료과장은
전공의 시절부터 응급실이 좋았다는 '별종'이다. 적지 않은 레지던트들이 소아과를 선택해온 이유 중 하나가 '야간·휴일 진료를 하고 싶지 않아서'란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응급실의 특징은 의사가 '갑(甲)'이라는 거예요. 쉽게 얘기해서 저는 친절한 의사가 아닌데, (응급실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만 하면 되는 곳이거든요. '보호자 컨트롤'이 아니라 (환자인) 아이가 먼저잖아요.
입원환자를 보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반대로 진단·치료가 끝나고 나면 (추적관찰 없이) 손 떼는 것도 깔끔하고요. 그리고 '온 앤 오프(On & Off)'가 확실하잖아요." 의외로 심플한 설명은 국내 소아진료가 처한 현실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었다.
8년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조 과장의 직전 직장은 전국에 10곳뿐인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다.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소아 응급진료의 특수성을 고려해 성인 응급실과 구분되는 '소아 전담 응급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을 센터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소아 연령대별 의료장비와 전담의사가 '24시간' 상주하는 것이 전제다. 올 4월 인하대부속병원·세종 충남대병원이 추가 지정됐는데, 차의과대 분당차병원 등 2곳을 제외하곤 모두 상급종합병원이다.
서울→대구 통근에도 '파격 조건' 칠곡경북대병원 자원
조 과장은
대구·경북 지역의 소아응급의료센터인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약 1년간 근무했다. 인하대병원에서 수련 후 인천 소재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그가 이같은 결정을 한 데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원내 소청과 개설을 돕는 등 의욕적으로 일했지만 팬데믹 기간 진료과 매출이 급감하자 근무를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전화로 일종의 '비대면 진료'를 보길 원했던 병원 측 지침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때 눈에 띈 게 칠곡경북대병원의 구인 공고다. 소아 응급진료에 뜻이 있던 차에 마침 관련 세부 전문의가 생겨 응급실 쪽부터 찾아본 터였다.
근무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총 6명의 의사를 채용함에 따라,
출근은 '6일에 1번'에 연봉도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정부가 지난 2016년부터 지원사업을 진행 중인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길의료재단 길병원 △인하대 의대 부속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차의과대 분당차병원 △순천향대부속천안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전국적으로 총 10곳이 있다. 칠곡경북대병원 제공"사실 칠곡경북대병원은 대학병원이고 국립이다 보니, 원래 책정된 급여는 되게 적어요. 그런데 지자체에서 소아 응급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지원금을 인(人)당 1억씩 준 거예요. 5명을 고용하면 5억을 주는 식으로…원래 그 지원금을 의사 인건비로 다 녹이는 병원은 한 군데도 없거든요.
칠곡경북대병원은 병원장님의 결단으로 (전문의) 1명당 1억씩 추가급여로 지정해준 거예요. 사실 (센터에) 딸려있는 식구들이 많잖아요. 그쪽에도 급여가 녹아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병원에서 부담하기로 하고 '우린 의사가 있어야 돌아가는 구조니까 일단 여기 다 투자하자' 하고 운영하신 거라 하더라고요."
서울 주민이라 통근이 유일한 고민거리였지만, "1주일에 한두 번(하루 24시간 근무)만 다녀오면, 그 외 시간에는 다 아이를 케어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근로 만족도도 높았다.
일을 접게 된 배경은 다른 데 있었다.
조 과장은
"갑과 을(乙)의 관계가 무너져 버린 게 가장 컸다"고 했다.
"제가 보호자들한테 보통 그렇게 설명드려요. 응급실은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를 재빨리 제공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하는 공간이라고…엄마·아빠가 애를 데리고 와서 '본인들이 원하는 검사와 치료를 하는 곳'은 응급실이 아니니 외래로 가시라고 얘기를 한다는 거죠, 항상.""내 새끼 수액만 놔 달라…다른 애 알바 아냐"에 '현타'
사건의 발단은
환자가 밀려든 올해 어린이날(5월 5일)이다. 당일 조 과장이 온종일(24시간) 진료한 환자는 약 120명에 달하지만 칠곡경북대병원이 보유한 소아 응급실 베드(병상)는 딱 7개였다. 소아응급의료센터라 해서 병상사정이 더 넉넉하지는 않았다.
환자 수용능력이 제한적인 만큼 전문 의료진이 판단하는 우선순위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의 환자'가 내원한 시점엔 수액치료 중인 3명·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1명 외 베드 3개가 비어 있었다. 코로나19 검사로 인한 '입원대기'도 3명 있는 상태였다.
약 2시간 전부터 토하기 시작한 만 12세 자녀를 데려 온 엄마는 대뜸 "다 됐고, 수액이나 놔 달라"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어떤 증상으로 왔는지 등을 봐야 하니 진찰부터 해보자고 했다. 아이는 한눈에 봐도 '장염 소견'이었다. 만약 장염 가운데서도 마비성 장폐색이 오는 경우면 급속도로 진행되는 탈수를 풀어주기 위해 수액이 필요할 수는 있었다.
'엑스레이(X-ray)부터 찍어보자'는 조 과장의 말에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이 어머니가 '여기 오기 전 (이미) 다른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고, 장염 진단도 다 받았다'는 거예요. 그럼 거기서 약이랑 다 받으신 거 아니냐고 했더니 '외래 마감시간이라 수액을 못 놔준다'고 해서 여기로 왔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전 그 엑스레이(결과)를 본 적이 없잖아요.
또 구토한 지 2시간밖에 안 됐고 아직 탈수까진 오지 않았다고 얘기하니 '지금 진료 거부하는 거냐'고, '내가 지금 수액 놔 달라 하잖아요', 막 이러시는 거죠."
그 새 진료 대기는 10명으로 불어났다. 조 과장은
'얘가 수액을 다는 순간 최소 2시간은 맞아야 하는데, 그럼 나머지(10명)를 2병상으로 봐야 한다'며 다른 중증 환자를 위해서라도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수는 없다고 간곡히 설명했다. 해당 환자에게는 항구토제를 처방하고 진료를 종결할 생각이었다.
보호자는 막무가내였다. 다음 환자 진료를 시작한 조 과장을 붙잡고 한 말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애들이 아픈 건 '내 알바'가 아니래요. '내 새끼가 아프니까, 난 수액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내놔라'고 해서 '안 됩니다' 하니 가겠대요. 자의 퇴원서는 쓰고 가시라고 하니, 진료비도 안 내고 도망 가버렸어요." 원하던 수액을 얻지 못한 보호자는 보건소에 민원을 넣었고, 조 과장을 고소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두 차례에 걸쳐 '고객의 소리'에 남겼다. 하루 이틀 겪는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새끼가 아픈데, 남의 새끼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휴일에도 정작 '내 애'는 못 보고 지방에 와있는 이유에 대해 시쳇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준말)가 왔다.
지난달 26일 경기 시흥 신천연합병원 근처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병욱 소아청소년과 진료과장. 조 과장은 인천광역시의사회 총무이사도 맡고 있다. 이은지 기자지난 2월 퇴근 후 집에서 마주한 아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꺽꺽거리며 호흡 곤란이 오는 게
전형적인 후두염이었다. 전날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을 땐 '내가 내일 가서 볼 테니 해열제만 놔 달라'고 했던 그였다. 뒤늦게 아이를 들쳐 업고 달려온 곳이 신천연합병원이다.
스테로이드제인 덱사메타손과 에피네프린(강심제)을 쓴 지 3시간 만에야 숨통이 트였다. "그게 건드려지는 순간 '아, 일 못 하겠네'가 된 거죠."외래 보는 '페이닥터'보다 처우 열악한 소아응급의
곧바로 사직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통상 '페이(pay)'가 적은 소아 응급실 쪽은 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의사를 구하려 하면서도 응급의료의 특성을 고려한 근무여건을 보장하는 곳은 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집에서 가까운 이대목동병원 등에서도 제안이 왔지만 '전담의 3명'으로 응급실을 돌리겠다는 말에 이내 거절했다.
"소아도 그렇고 성인도, 응급실을 돌리려면 최소 (의사) 5명이 필요해요. 환자 수가 아니라 근무시간 때문에 그런 건데, 환자가 적어 매출이 안 나온단 이유로 고용을 (더) 못 하는 거죠. 평일 주간에는 외래에서 (응급환자를) 봐주신다 해도 4명 이상은 돼야 가능한 거예요.
응급의료법상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5명 이상 구비하게 돼있어요. 급여를 꽤 세게 주는 500병상 이상 규모 병원도 (소아 응급실 당직의) 4명을 뽑더라고요. 급여 수준도 저처럼 일반 진료를 보는 봉직의(페이닥터)보다 낮고요." 조 과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외래로 소아환자를 받는 지금, 대구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중증환자를 본다고 말한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케이타스(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상 2등급 정도로, 산소치료를 포함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다. 소아응급의료센터에선 매주 1명도 보기 어려웠던 데 반해
최근엔 주당 두세 명씩 진료한다.
심폐소생술(CPR)을 필요로 하는 가장 심각한 1등급도 칠곡경북대병원에서 "1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였다고 했다.
중증응급 소아에게 권역별로 가장 신속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센터에 경증환자가 되레 더 많은 아이러니다.
'응급'='중증' 동의어 아냐…"지역 불문 경증환자로 포화"
조 과장은
'소아'와 '응급'이 하나의 단어로 결합된 순간부터 일종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이뤄졌다고 본다.
소아기에 있는 응급환자는 당연히 '중증'일 거라 간주하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엄연히 다른 개념인 응급도와 중증도를 등치시키는 오류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응급실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는 '발열'이지만, 의학적으로 보면 다음날 외래로 해결 가능한 수요가 대부분이라는 게 조 과장의 시각이다.
"제가 무심하거나 인성이 나쁜 의사라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우리 어렸을 때는 밤에 열난다고 (무작정) 응급실로 뛰어가지 않았거든요. 호흡곤란 등 KTAS '레벨 2' 정도 될 때 응급실에 가야 되는 거죠.
(최다 내원사유 중 하나인) 단순 복통은 KTAS상으로 아예 (비응급인) 4등급이에요. 토하거나 설사하면서 배가 아픈 건 장염으로 보고 '내일' 가도 된다는 거예요. 반대로 (그 외) 아무 증상도 없는데 복통으로 애가 데굴데굴 구르는 경우라면 바로 (응급실에) 가야죠."
조 과장은
비응급 소아환자들이 '갈 응급실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작금의 상황은 정상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의 소아 응급실들도 "베드는 몇 개 없는데 거의 다 수액 깔고 누워있는" 사정은 비슷하다고도 했다. 소아진료 대란은 정말 '골든타임' 내 치료를 요하는 응급환자보다는 경증환자 포화로 벌어졌다는 취지다.
그는 "의료 접근성이 과도하게 좋은 것"이라며
"KTX를 타고 약 3시간이면 가는 부산을 왜 2시간 만에 못 가냐고 컴플레인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인 대구 칠곡경북대병원에서 1년간 근무한 조병욱 소아청소년과장은 현재 소속된 신천연합병원에서 중증도 있는 환자들을 더 많이 봤다고 말한다. 다만 2차 의료기관인 신천병원은 '배후진료' 문제로 소아 응급실을 별도로 두기는 어려운 상태다. 이은지 기자무분별한 이용 거르는 '사다리' 필요…"건보료율 인상도 방법"
물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의 운영 의도에 부합하는 환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 대비 비중이 매우 적을 뿐이다. 조 과장도 소아응급의료센터를 단계적으로 확충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공감했다. 소아 응급환자에 대한
'배후진료'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점 의료기관은 권역별로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 과장은 "중증 대응을 위해 만든 센터에는 경증이 못 들어오게 막아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문제란 것"이라며
오·남용에 가까운 의료이용 행태에 대해선 '페널티성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도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이용 시 본인부담금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조 과장은 "응급실 이용은 (어차피) 비급여 검사 빼고는 거의 급여 항목으로 돼있다.
본인 부담금을 올리는 것보다는 건강보험 부정수급의 일환으로 보고 그에 상응토록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실손의료보험으로 응급실 문턱이 낮아진 부분도 크다는 점을 함께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일정한 소아진료 인프라를 유지하려면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수가체계 개선(가산수가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소청과는 환자 50명을 본다고 가정하면 (보호자까지) 100명을 상대해야 해요. 그럼 진료의 가치가 달라야죠.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게 메인이라 생각해요. (연간) 신생아 수가 70만일 때는 오히려 환자를 적게 보고 싶어 했을 거예요. 지금은 '20만'이 무너지게 생겼으니, 어느 정도 유지는 해야 되니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거든요.
특히 사람 바이탈(vital)을 다루는 병원급의 엄청난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봐요. 소청과는 큰 특징이 '대학교수 아니면 개원의'로 극단적으로 양분돼 있어요. 만약 병원급 수가·근로조건 개선이 이뤄진다면 (10%대로 급락한) 전공의 지원율도 증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