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전경. 이은지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코로나 뚫고 재개된 공공병원 응급실…"뺑뺑이 책임, 환자에 전가 말아야" (계속) |
지난 6월 28일(수) 밤 10시 50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의 응급실 로비는 환했지만 대기 중인 보호자 네다섯 명의 얼굴은 어두웠다. 중증 전신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로 내원한 환자의 회복을 기다리던 젊은 남성은 초조하게 발을 구르다가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 환자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관계가 어떻게 되세요?""남자친군데… .""친 보호자가 아니셔서 진료결과를 설명드릴 순 없고 아직 증상이 좀 남아있어서 처치가 더 필요하세요." 작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간 남성은 30분 후 다시 응급실 자동문 우측에 걸터앉았다. 이날 밤 10시부터 익일 오전 10시까지 야간당직을 맡은 이성 응급실 실장(응급의학과 전문의)은 "아나필락시스의 원인 물질은 다양하다. 그 물질에 의한 과민반응으로 쇼크에까지 이르는 건데, 심한 경우 사망하기도 한다"며 "(이 환자는)
지금 응급조치를 해서 혈압이라든가 맥박 수 같은 생체징후를 안정화하고 올려놨는데, (당장) 퇴원할 수는 없는 상태여서 지켜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실장이 근무를 '바통 터치'하기 전부터 재원 중이었던 여성 환자는 자정이 넘어서야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 사이에도 "속이 약간 울렁거리고 메슥거린다"며 '급체'를 호소한 50대 여성, 머리가 찢어져 봉합한 뒤 실밥을 "하루 먼저 풀러" 온 중국인, 운동하다 발을 접질린 중학생, 대상포진 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았다.
지역응급의료기관인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은 '24시간' 응급실 진료가 이뤄진다. 평일 근무는 2교대(오전 10시~오후 10시·오후 10시~익일 오전 10시), 주말 당직은 3교대로 돌아간다. 이은지 기자
기자가 지켜본 이날 밤 9시 반경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대기인원을 보여주는 화면은 한 번도 꽉 차지 않았다. 총 11개인 응급실 베드(병상) 여력도 충분했다.
기초 문진부터 코로나19 검사, 심전도 측정과 진료 등 응급의 1명과 간호사 3명은 일사불란하게 '한 조'로 움직였다. 새벽 1시가 넘어가자,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의사는 바로 옆 당직실에서 한 시간 못 되게 쪽잠을 잤다. 입원실까지 옮겨진 환자는 응급실 내 '코호트 격리구역'에 있었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유일했다. 간밤에 유입된 환자는 15~16명으로 근래 수원병원 평균치(평일 야간 기준 30명대)의 절반 정도였다. 재실 시간은 보통 1~2시간을 넘지 않았다.
주말은 어떨까.
아직 활동인구가 있는 시간대만 해도 '환자가 딱 2배'라는 수간호사의 말에
이달 8일(토) 다시 방문한 응급실은 과연 평일과 확연히 달랐다. 로비는 10명 이상 되는 대기자들로 붐볐고, 내원 간격도 훨씬 짧았다. 밤 8시부터 자정까지 관찰한 환자 수는 15명으로, 2배의 시간을 지켜본 평일과 거의 동일했다. 환자들의 중증도도 비슷해 보였다. 다만, 이날은
유독 만성질환이나 병력이 있는 환자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통풍이 심해져 슬리퍼 차림으로 온 30대 환자의 오른쪽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절뚝거리며 걷기도 힘겨워 보인 그는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 낙상으로 머리를 찧은 50대, 전립선비대증·탈장 이력이 있는 70대 요로결석 의심환자 등 자녀·손주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선 어르신들도 많았다.
당일 응급실 당직이었던 유복열 과장은 "저희 병원을 (특히) 좋아하시는 환자들이 있다.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많이) 오시고, 당연히 돌아가실 때가 임박해서 오시는 경우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관내의) 아주대병원이나 성빈센트병원보다 확률적으로 중증도 있는 환자비율은 적지만, 없지는 않다"며 "수원역 인근 노숙자 분들이나 (경제적으로) 힘드신 분들도 많이 오신다"고 전했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수원병원은 화서역 현대벽산·우방센트럴파크 등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다. 산책 중 들르는 주민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시청과의 거리는 5~6㎞ 남짓이다.
야간 '외래 수요'가 응급실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데엔 '도심형'이라는 위치적 특성도 있는 셈이다. 고난도 수술 등을 요하는 중증응급은 아주대병원(권역응급의료센터) 등으로 가지만,
지역 응급의료기관으로서 일정한 응급수요는 감당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응급실 진료는 외래 진료와 달리 접수순서가 아닌 환자의 '응급도' 순으로 진행된다는 안내사항이 응급실 출입구에 적혀 있다. 대기가 일상인 응급실에서는 환자와 보호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은지 기자이성 실장은 "저희는 환자를 빨리 치료하고 내보내 순환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래야 또 응급환자가 왔을 때 바로바로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대형병원 응급실의 역할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암이나 선천성 희귀질환 등이 갑자기 악화될 경우, 가용병상이 부족하면 응급실에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나흘 이상도 머물러야 하는데 이같은 상황은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면 대응이 어렵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여기는 보시는 것처럼 굉장히
'로컬 베이스'다. 이용하시는 분들이 (대개) 1~2㎞ 반경 내 사시는 분들일 것"이라며 "대학병원에 가면 '최소 1시간 대기'는 기본이라
확실히 경증환자 입장에서는 규모가 작은 곳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응급의료기관은 영상·진단검사 등 초진부터 퇴원까지 전문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니 대학병원보다 훨씬 빠르다"고 부연했다.
물론 '원스톱' 처치사례만 있진 않다.
부득이 타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전원(轉院) 조치도 종종 이뤄진다. 유 과장은
"응급실이란 게 (날마다) '복불복'이다 보니 전원 스트레스가 당연히 크다. 대학병원에서 전원해야 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여기서는 일단 보내야 하면 그쪽 병원에서 (환자) 보호자가 있는지부터 물어보니 거기서 막힐 때도 있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문제는 '보낼 곳'(배후진료 역량이 있는 적절한 병원)조차 사라져 간다는 점이다. 이 실장은 "이송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문제다. 환자를 보겠다는 의료기관이 많아지면 오히려 쉽게 풀릴 텐데
그런 최종치료를 제공해줄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소통을 빨리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된다'는 곳을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수원은 전원을 위한 협조체계가 비교적 원활한 편이다.
수원병원은 앞서 보건복지부가 지역 단위 필수의료 협력·연계의 구심점으로 삼은 중진료권의 '지역책임의료기관'이다. 이를 토대로 정부가 추진 중인 중증응급환자 이송전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업의 책임의사인 이 실장은 △아주대병원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윌스기념병원 △화홍병원 △동수원병원 등
종합병원 이상급인 주위 병원들과 정기적으로 미팅을 진행한다.
수원 지역에서 생긴 응급환자는 수원에서 '자체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함이다. 이 실장은 "관내 응급의학과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지역 거버넌스와 연계한 협진망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한 전원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원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NMC)에서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인근 병원 응급의들과 이송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일례로
복통과 발열로 수원병원에 내원했던 한 환자는 혈액검사에서 '담도폐쇄'가 의심돼 진행한 CT(컴퓨터 단층 촬영)에서 실제 담도폐쇄 및 담관염이 확인됐다. 증상조절을 위한
초기 처치도 함께 이뤄졌다.
이후 담관 등의 악성질환을 치료할 때 실시하는
'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조영술(ERCP)'을 위해 상급병원으로 전원됐다. 만약 처음부터 이송 병원으로 갔었더라면, 대기 장기화로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는 게 이 실장의 판단이다.
응급환자에 대한 1차 처치와 진단, 상급병원에 대한 의뢰까지 수원병원이 '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단계별로 환자에게 적정한 치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료전달체계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도 했다.
정부도 지난 3월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23~2027)에서 '지역 내 협업체계 구축'을 강조한 바 있다. '중증응급의료센터(중증)-응급의료센터(중등증)-지역 응급실(경증)' 등 중증도를 기준으로 응급의료기관의 진료기능을 명확히 구분하겠다고도 했다. 이 모델상으로도 수원병원은 중간 단계(응급의료센터)에 해당한다.
지난달 28일 야간 당직 중인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응급실의 이성 실장. 그는 "응급실이란 공간이 주는 스트레스가 크지만,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게 되는 현실의 고통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 도움을 줄 때 큰 만족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같은 맥락에서 이 실장은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상급병원의 관리료를 올리거나 경증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올리는 방식은 본질적 해법과 거리가 있다고 봤다.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 병상을 늘리는 등의 물리적 접근도 마찬가지다. 이 실장은 "지역병원들이 상급병원만큼의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고, 그 원인은 환자에게만 있지 않다"며
경증환자가 대학병원을 우선으로 찾는 것을 두고 "욕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민 입장에서도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지역 기반의 중소규모 응급실이 좀 더 있다면', 또 '그런 크기의 응급의료기관에 가더라도 치료가 삼천포로 빠지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다면' 지금과는 다를 거라고 했다.
"경증이면 '알아서 (대형병원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건 무책임한 주장이에요. 당장 내 가족이 아프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파서 말도 못하고 통증을 호소하는데…그런 환자가 사실 검사를 다 해놓고 보면 경증인 경우가 많아요. 증상만 보고 판단하는 거랑 의사 입장에서 진단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고요. 낮은 단계의 의료에서 시작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안전 차원으로 접근해 환자들에게 이 의료 전달체계를 이용해달라고 해야지, 그 시스템이 안 되면서 '이용하지 말라'고만 하면…그럼 계층에 따라 이용을 달리해야 하나요?"유 과장도 "(페널티 성격으로) 본인 부담을 상향해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실비 보험도 있고, 어차피 돈이 없는 분들은 그런 (큰)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구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등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의 문제"라는 게 이 실장의 생각이다. 상황에 따라 수원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응급의가 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던 그이지만,
"배후진료과가 무너진 공백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자 안전문제가 응급실 당직의에게 전가되는 (현) 상황"은 당황스럽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응급실이 아닌 곳으로 이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수원병원은 대부분의 공공병원이 그렇듯 응급실 운영을 제대로 재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상반기부터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확진자 대응에 '올인'해야 했던 탓이다. 수원병원에서 7년간 재직한 유 과장을 제외한 응급의 5명은 근무기간이 모두 1년 남짓인 이유와도 상통한다.
응급실 폐쇄가 풀리지 않았던 2021년까지만 해도 매년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실시하는 응급의료기관 평가가 불가능해 2020년 당시 평가결과(B등급)를 적용받기도 했다.
유 과장은 "2015년 메르스(MERS) 때는 유행기간이 길지 않아 내원환자의 변동이 크지 않았지만 코로나는 2~3년이었으니 (영향을)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저희가 환자를 보는 기준은 딱 하나다. 치료비를 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 병원에서 볼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전했다.
이 실장은 "지금부터라도 환자들이 (수원병원 같은) 지역병원을 걱정 없이 찾고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 3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23~2027)' 중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안). 복지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