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료원 윤혜경 소아청소년과장이 지난 3일 단양군 보건소에서 소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윤 과장은 매주 목요일마다 소아과가 없는 단양군을 찾아 오전·오후 4시간 동안 환자를 받고 있다. 이은지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코로나 뚫고 재개된 공공병원 응급실…"뺑뺑이 책임, 환자에 전가 말아야" ②[르포]진천→이천 가야 '심야 응급실'…"중환자 2명이면 마비" ③"비우래서 비웠더니"…공공병원은 왜 '벼랑 끝' 몰렸나 ④[르포]소아과 '씨마른' 소멸위험지역 진료 나선 지방 의료원 (계속) |
"어서 오세요. 우리 지훈이(가명), 오늘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저번 주 일요일에 수영장 다녀오고 나서 기침하고…""목 아픈지는 그럼 나흘 됐나요? (체온 측정 후) 열은 없고. 수족구에 걸린 적은 있었나요?""네, 올해는 괜찮았고요." "입 안 한 번 볼까요. '아~' 크게 해주세요. 아유, 잘하네…입을 이렇게 잘 벌려. (들여다본 뒤) 안쪽에 좀 빨갛게 부어는 있는데, 수포는 없어요." 지난 3일 충청북도 단양군 보건소. 오후 진료가 시작된 지 40분 만에 내원한 27개월 남아는 꽁지머리를 앙증맞게 묶은 채 의사와 간호사의 손길에 칭얼거렸다. 의료진은 아이를 안고 들어온 엄마의 도움을 받아 입 속과 등 부위 등을 자세히 살펴본 후 수족구(콕사키 바이러스 A16 등이 원인으로 입 안 물집·궤양, 손·발의 수포성 발진이 특징)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시적인 '입병'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이다.
"이쪽 입술이면 음식이 닿는 부위는 아니거든요. 또 수족구는 그렇게 그쪽(한쪽)에만 (뭐가) 있지는 않아요, 입안 전체에 있지…손발에도 (증상이) 없고요. 조금 두고 보시죠."
보호자가 확실히 수족구가 아니라는 '인증서'를 요청하자 의사는 "확인서는 따로 안 떼어드린다. 그런 걸 어린이집에서 요구하는 것도 이상하다"며 "그냥 '괜찮다'고 얘기하시라. 지금 (교사에게) 전화하지 않으셨느냐"고 토닥였다.
"수족구는 이제 (유행)시기는 좀 지나서 지금은 (환자가) 잘 없어요. 부모님들이 좀 예민하게 보시는 부분이긴 하죠. 독감과 같은 등급(법정 4등급)의 전염병이에요. 절대적 준수사항은 아닌데, 감염 시 5일 정도 (어린이집에) 나오지 말라고 권고하죠. (이 환자의 경우) '아프타성 궤양'으로 볼 수도 있는데…보통 수족구는 손발의 수포성 발진이 제일 큰 특징이죠."충청북도 단양군 보건소 전경. 이은지 기자'소아과 0곳' 단양군…매주 木 진료 나선 충주의료원
충주의료원의 유일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윤혜경 과장은 매주 목요일(주 1회) 의료원에서 1시간 거리인 단양군을 찾는다. 단양군은 3개의 시(市)와 8개의 군(郡)으로 구성된 충북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등록인구 2만 7천여 명)다. 정부가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자 지정한 대표적 '인구감소지역'으로
도(道)내에서 소멸위험지수도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단적으로
관내 소아과가 한 곳도 없는 의료취약지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들이
제천시의 종합병원인 제천서울병원 또는 명지병원까지 가야 하는 이유다. 가장 가까운 선택지라곤 하나,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1시간 이상이 소요되고 자차로도 40분은 잡아야 하는 거리다.
대기시간까지 고려하면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각오'해야 한다.
이에 단양군 보건소는 충주의료원 측에 '1주에 한 번이라도 순회진료를 와줄 수 없겠냐'고 요청해 왔다. 윤 과장이 응하면서,
지난달 초부터 군은 목요일마다 하루 4시간(오전 10시~정오·오후 1~3시)의 소아과 진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의료원 입장에서는 평일 하루 '소아과 휴진'을 감수하고 내린 결단이다. 달리 진료를 백업할 전문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개시한 지는 한 달 남짓밖에 안 됐지만 이용한 보호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맘카페' 등을 통해 사전 홍보를 펼쳤던 보건소 관계자는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첫 날 (내원) 8명에서 10명 이상으로 점점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어선 이날 역시 뙤약볕에도 14명의 아이들이 보건소를 방문했다.
사실 '의료 사각지대 해소'라는 선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태생적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1주일은 진료·처방 후 경과를 확인하기에 꽤 긴 간극이다. 부모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아이의 진료를 보지 못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왜냐하면, 소아들은 다 급성 질환이에요. 밤에 (갑자기) 열이 난다든지…그런 걸 며칠씩 두고 보는 부모는 아무도 없죠. 제가 엄마라도 의사가 오는 날까지 기다리진 않을 거고요. 특히 어린 연령일수록 부모들은 불안하잖아요. 어르신들이야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이 많으니까 (진료 간격이 좀 길어도) 상관이 없는데…아이들은 빨리 나빠지고, 빨리 좋아져요. 만약 제가 (순회진료) 두 번을 보게 된다면 의료원을 (주당) 두 번 휴진해야 하니 일수를 더 늘리긴 어려운 상황이죠."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대신하는 만큼 감기·구내염 등 대부분은 경증이고, 아직은 호흡기바이러스가 전통적으로 유행하는 '성수기'도 아니다. 그럼에도 윤 과장은
"당장 오늘 열나는 아이는 필요할 거"라는 생각으로 단양에 온다.
지난 1997년 전문의 자격을 딴 윤 과장이 처음 충주의료원에 몸담게 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그때까지는 최근 농·어촌 지역에서 두드러진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공중보건의만 있었단다.
27년차 소아과 의사로서 느끼는 소아청소년과의 위상 하락은 '격세지감'이다.
"저희 때만 해도 필수의료 과를 많이 (선택)했거든요. 내과도 성적이 좋아야 했고, 소아과도 경쟁이 좀 있었어요. 한창 진료 볼 때는 (의원급) 소아과에서 하루 200명대 환자를 보는 일도 흔했죠. 저는 서울 변두리 쪽에 있었지만 그래도 (매일) 한 100명은 찾아왔던 거 같아요." 수도권 산부인과 전문병원 등에서 환자를 보던 그가 지역에 오게 된 데엔 배우자가 한발 앞서 충주의료원에서 근무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윤 과장의 남편은 현재 건국대충주병원의 하나뿐인 '분만 담당' 의사다. 여건이 안 되다 보니 '제왕절개' 위주로 아이를 받고, 언제든 '콜(call)'이 걸려오면 즉시 뛰어나가야 한다.
"거긴 대학병원인데도 (의사를) 못 구해요. 다 마찬가지일걸요. 지금 충주도 개업가에서 (산부인과의로) 근무하는 데가 거의 없을 거예요."충주의료원의 자체 사업인 '찾아가는 산부인과'는 지난 2011년부터 분만취약지 주민을 대상으로 진료를 펼쳐 왔다. 이동형 버스 내부에는 임산부 검진 등이 가능한 최신 의료장비가 갖춰져 있다. 현재 의료원의 산부인과 전문의 2명 중 1명은 '찾·산' 진료만 담당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큰 틀에서 '한 세트'인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의 고전은 초저출산 등 여러 요인의 산물이다. 다만 윤 과장은 많은 동료 의사들처럼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이 결정적이었다고 봤다. 집중치료실에 있던 신생아 4명이 균 감염으로 사망하자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다. 이후 전원 '무죄'가 확정됐지만 현장에 남겨진 상흔은 컸다.
윤 과장은 "미숙아나 신생아 보는 게 (의료진에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일반 영아나 소아와는 또 다르다"고 했다. 이를 기점으로 출산부터 소아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관련 과가 연쇄적으로 충격파에 휩싸여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락(2019년 80%→2023년 16.6%)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채혈 하나도 성인환자 배로 힘들어"…수시 민원은 '덤'
환자가 성인이 아니다 보니 간단한 의료행위도 드는 품이 배라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여전히 버겁다. "예를 들면, 아기들 피 검사는 주로 제가 (피를) 뽑지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시범을 보이며) 한쪽은 부모님이 붙들고, 다른 쪽은 간호사 선생님이 붙잡고 최소 두 사람은 아이를 잡아야 해요. 어른들이 (채혈 때) 손을 내밀면 바로 뽑는 거랑은 다르죠.
영유아 검진은 보호자들에게 30분 넘게 설명을 할 때도 있어요. 큰 애들은 그냥 넘길 수도 있는 걸 그 시기에 발견 못하면 (부모들이) 찜찜할 수 있으니 더 공들여 보는데 수가는 제일 싸요. 생후 4주 등 신생아는 황달부터 시작해서 변 색깔·횟수, 하루에 먹는 약 등 (질문사항이 더 많죠)…예전에 검진 결과를 갖고 '왜 (문제점을) 발견 못했냐'고 소송을 건 일도 있었어요. 오죽하면 '영유아 검진은 질환을 발견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십니까'란 항목이 들어갔겠어요." 순회진료에서도 우는 아이에게 주사를 놓은 뒤 주삿바늘이 가볍게 보호자의 옷을 스쳤단 이유로 '보상'을 요구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진료일 직전 받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두고도 민원이 들어왔다.
"(진료가 있는) 그 주 월요일은 음성이었고, 목이 약간 이상해서 수요일 다시 검사했더니 양성이 나온 거예요. 그런데 그 전주 목요일에 봤던 아이 엄마한테서 항의 전화가 왔던 거죠, '코로나 잠복기가 2주라던데 걸리면 책임질 거냐'고…." 계명산 중턱에 위치한 충주의료원 전경. 윤창규 원장은 "충주를 비롯한 충북 북부 의료수요를 해결하기엔 (인력 및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다"며 "충북대병원엔 약 340명의 의사가 있고 원주세브란스병원은 370~380명 정도 되는 데 반해 우리는 33명"이라고 말했다. 의료원 제공팬데믹 기간의 기억은 더 혹독하다.
공공병원인 충주의료원은 2020년 코로나19가 유입되자마자 다른 의료원과 마찬가지로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몇 달 간은 말 그대로 코로나만 전담했지만, 확진자와 일반 환자를 함께 보게 되면서부터는 근무 의사들이 '코로나 병동'을 돌아가며 맡아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린 소아환자'는 고스란히 윤 과장의 몫이었다.
윤 과장은 코로나의 거듭된 변이로 소아 확진자가 넘쳤던 지난해 봄을 '악몽'으로 떠올린다. 제주대병원에서 13개월 영아가 치료제 과다투여로 숨진 것도 딱 그맘때쯤이다.
"네뷸라이저(nebulizer·연무식 흡입기) 사건, 그게 코로나 후두염이거든요. 3차 병원에서는 '풀 베드(full bed)'라고 환자를 안 받으니 (병상이) 포화 상태인 거예요." 회진을 할라치면 '레벨D' 방호복 차림을 갖추는 데만 30분이 꼬박 걸렸다.
'구인난'·적자 심화시킨 코로나…"전문의 되면 일정기간 근무 의무화"
호스피스 병동을 직접 보는 윤창규 충주의료원장은 노인 및 장애인 복지시설 무료검진,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의 의료비 지원 등 여러 공익적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의료기관은 경제성과 수지타산을 따지면 답이 없다. 적자를 각오하고 하는 것"이라며 "응급실은 운영 자체가 적자"라고 했다. 이은지 기자
'사투'의 후유증은 전담병원에서 해제되고도 현재진행형이다. 작년 여름 부임한
윤창규 충주의료원장은
"코로나 전에는 입원환자가 270~280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120명"이라며 "소아과 외래환자도 하루 10명대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후로는 한 달에 거의 10억씩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며
"소아과 의사가 두 분이라면 순회진료도 1주일에 두 번 보내고 싶은데, 저희도 환자가 (하루) 수십 명도 안 오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구인난'은 만성화된 지 오래다.
의료원에 근무 중인 전문의 30여 명 중 절반 이상(18명)은 '60대 이상'이다. 그마저도 3명(치과 2명·영상의학과 1명)은 공보의로, 윤 원장을 포함해 70대도 4명에 이른다. 지난달 새로 영입한 이진경 과장(유방외과)도 "주로 외상을 보는 (기존) 외과의가 혼자 입원환자를 40명씩 보다 보니" 유방·갑상선 쪽 전문의가 필요해 '간신히' 구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보건복지부가 국립중앙의료원 등과 추진 중인 '시니어 의사-지역 공공의료기관 매칭사업'에 대해서는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도 밝혔다. 윤 원장은 "충북대병원에 '은퇴하는 교수라도 보내 달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학교에서 계약직으로 다 잡고 안 보내주더라"고 전했다.
충주의료원은 의료사각지대 및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3년 공공의료팀 사업계획(안) 중 '미충족 의료서비스 지원'의 사업기간. 의료원 제공결국 공공의료가 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보다 과감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윤 원장의 생각이다. 경제적 논리로 분원 설립에 열을 올리는 대형병원들과 이를 묵인하는 정부를 겨냥하기도 했다.
수 천 억을 들여 충북대병원 분원을 하나 더 짓는 것보다는 "그 예산의 반의 반만 들여도 의료원을 (훨씬) 더 확장하고 보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청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붕괴 위기에 대해서는 정부에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필수의료 진료과의 수가를 최소 50% 이상 인상할 것(공공정책수가 적용 등) △전문의 자격 취득 후 일정 기간(2~3년) 공공병원 근무를 의무화할 것 △지역 의료원 등에서 10년 이상 일한 의사는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줄 것 등이다.
윤 원장은 "한 지역 대학의 산부인과 교수가 '제자 30명 중 지금도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사람은 3명밖에 없다' 하더라. 다 미용·성형 쪽으로 빠졌다는 것"이라며
"그건 기술자(technician)지, 의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환자의 몸과 정신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을 돕는 의사들'이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물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년 5월 개원을 앞두고 보건소 내 공사 중인 단양군 보건의료원. 임은주 단양보건소장은 "(군내 응급의료기관이 없어서) 응급실 기능을 갖추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다"며 7병상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보건의료원이 생기면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을 '70% 이상'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