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이 지난 6월 19일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내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코로나 뚫고 재개된 공공병원 응급실…"뺑뺑이 책임, 환자에 전가 말아야" ②[르포]진천→이천 가야 '심야 응급실'…"중환자 2명이면 마비" ③"비우래서 비웠더니"…공공병원은 왜 '벼랑 끝' 몰렸나 (계속) |
유행 초부터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최전선 선 경기의료원
경기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인구 1천만이 넘는 광역자치단체다. 지난해 기준 도(道)내 등록 인구는 약 1359만 명이다. 자연히
지난 3년여 간 코로나19에 걸린 확진자도 최다다.
'안 걸린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대다수 국민이 겪은 코로나는 지난달 31일 기준
누적 3320만 1796명이 확진됐는데, 이 가운데 약 27%(892만 5876명)가 경기도민이다.
최근 신규 확진자가 5만 명대로 오르자 이달 예정된 감염병 등급 하향(2급→4급) 관련 '신중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예정된 스케쥴이 밀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람들이 코로나를 위협적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기까지는, 초창기부터 격리 환자들을 전면으로 받아냈던 공공병원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5일 간의 '자율·권고'로 헐거워졌지만, 최초 환자가 유입된 2020년 초 확진자와 밀접접촉자의 격리기간은 2주(14일)였다. 외부로부터 차단된 격리병상 운영은 병원들이 '자발적으로' 코로나 확진자를 수용하겠다고 나서기에 부담스러운 조건이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코로나19 치료병상을 공급해줄 전담 의료기관이 필요했고,
최우선으로 '징집'된 대상이 각 지역 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들이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코로나19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됐던 지방 의료원들이 전체 입원환자의 68%를 돌본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 6월 19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경기도의료원 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코로나 유행) 초기에는 경기도의료원이 받은 (경기 지역) 확진자가 거의 100%였다.
중환자를 빼도 95%는 수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지금까지 나온 변이 중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되는 '델타'가 4차 유행을 주도한 2021년 하반기 민간병원을 끌어들이면서부터야 병상 가동률이 50%대로 떨어졌다. 치명률이 높은 변이 특성상 일일 확진자가 2천 명대였음에도 가용 여력이 10% 이하로 급락해 병상을 쥐어짜야 했던 시기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지역 응급의료센터'인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중단한 모습. 경기도의료원 제공"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병상 비웠다"…2년여 간 全역량 소진
경기도의료원은 하루 확진자가 20명대였던 2020년 2월 초 산하 6개 병원(수원·의정부·파주·이천·안성·포천병원)이 일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당국이 발생현황을 매일 브리핑하게 된 시점과 거의 맞물린다. 2월 말부터
모든 입원환자를 내보내고 병상을 소개(疏開)해야만 했다. 정 원장은
"정부가 '병상을 비우라'고 하면, 우리는 (이유나 절차를) 따지지 않는다"며 "공공의료기관의 의무사항이고, 국가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거기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게 우리의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그 (손실)비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줄 거라고 생각하고 다 비울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수원병원장이기도 한 정 원장은 수원병원의 경우, 코로나 직전인 2019년부터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노후화된 CT(컴퓨터단층촬영) 장비가 고장이 나면서 공백 상태로 두 달 간 진료를 보기도 했고, 연세대세브란스병원으로부터 받던 가정의학과 전공의 파견도 중단됐다.
응급실에서 '일평균 100명'의 환자를 진료해 업계에서 '일하기 힘들다'는 악명(?)이 자자했던 2018년과는 여건이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사정은 변수가 되지 못했다. 경기도의료원은 경증이 대부분인 '오미크론' 변이 우세화로 동네 병원(1차 의료기관) 중심의 재택치료가 일반화된
지난해 5월까지 2년여 간 코로나 대응에 모든 역량을 소진했다.
당초 중등증 환자(중증은 아니나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보는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가 중도 해제된 병원들도 있지만 의료원의 여섯 병원은 오롯이 그 기간을 버텼다.
"경기도의료원이 아마 감염병전담병원(기능)을 했던 다른 지방 의료원 이상으로 피해가 클 거예요. 우리처럼 완전히 (코로나 외 진료를) 중단하지 않은 병원들도 많고요.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전체 시설이) 완전히 문을 닫아야 하다 보니 (외래 등의) 일반 환자는 볼 수가 없는 거죠. 예를 들어, 일반 폐렴이나 급성 맹장염으로 왔다고 하면 그런 환자는 못 받는 거예요.
(지정해제 후) 무(無)에서 출발하려다 보니 실제로 회복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죠." 코로나19 유행기간 '응급실 폐쇄'를 알리는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내 안내 화면. 경기도의료원 제공'정든 병원' 떠난 환자들…의료수익 급락 등 후유증 심각
의료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해 운영하는 공공병원인 만큼 원래 꾸준히 내원하는 환자가 많았다는 게 정 원장의 설명이다.
별다른 이상이 없어도 6개월에 한 번씩 피검사·엑스레이(X-ray) 촬영 등이 필요한 만성질환자들은 이같은 검사조차 어려워지자 상당수 병원을 떠났다. "수원병원이 설립된 지 110년이나 된 병원이거든요(1910년 관립 의원으로 개원). 이쪽으로 이사 온 건 1993년도인데, 이전에는 사대문이 있는 행궁, 수원 시내 쪽에 있었어요. 그렇게 오래된 병원이니, 관리하던 환자들이 굉장히 많지 않았겠어요? 한 반 년 정도였으면 (환자들도) 참을 텐데, 갑자기 여기서 치료를 못 받는다고 하고, 그게 2년이 되니 떠날 수밖에 없죠." 한 번 떠난 환자는 정상진료 재개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진료환자 수가 극적으로 꺾인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도의료원에 따르면,
2019년 1~5월 월평균 1만 5063명이었던 수원병원 외래환자는 올해 같은 기간 8949명으로 40% 급감했다. 재원환자도 월평균 3499명에서 1842명으로 절반 가까이 하락(47%↓) 했다.
경기 의료원에서 2019년 대비 해당 기간 외래·재원환자 모두 증가한 곳은 이천병원뿐(각각 약 8%↑·13%↑)이다. 다른 병원들의 월평균 외래 지표는 △의정부병원 1만 4686명→7800명 △파주병원 1만 4996명→1만 168명 △안성병원 1만 7809명→1만 1605명 △포천병원 1만 3763명→8247명 등 수원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이천은 근방에 달리 '대안'으로 찾을 만한 종합병원이 없다는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
지난해 6개 병원의 의료 손실액은 약 883억 1300만 원으로 2019년(-245억 8200만 원)과 비교해 640억이 불어났다. 전체 의료사업 관련 수익률을 따진 의료수지비율은 2019년 84.9%에서 2020년 43.9%까지 급락했다가 2021년 67.0%를 기록했다.
연간 1천억 가량의 보조금으로 간신히 '코로나 보릿고개'를 면해온 모양새다.
경기도의료원의 코로나19 전·후 진료현황. 의료원 제공"토사구팽" 비판 왜 나오나…손실보상, '운영 정상화'엔 역부족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 5월 기준 전국 지방 의료원의 병상 이용률은 '평균 48.5%'에 그쳤다. 코로나 전인 2019년 말(평균 78.5%)보다 30%p 이상 적은 수치다.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돼 떠난 전문인력도 많다. 수원병원도 응급실 폐쇄 후 응급의학과 전문의 6명 중 4명이 사직했다.
감염병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하는 중에도 병원 인프라를 유지하고자 기존 '인센티브'를 포함한 평균 임금을 계속 지급해야 했던 것은 또 다른 애로사항이다.
"그렇게 약속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코로나가 2년 반 넘게 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기본급만 준다고 하면 그 금액은 얼마 안 되거든요. 우리(공공병원)의 공급체계가 좀 이상해서 성과급이 없으면 시장 평균 급여를 맞출 수가 없어요. '일을 해야 더 많이 주겠다'는 것도 있어서 성과급 전체 비중을 좀 높여놨는데….
보통 의사 월급이 최소 1500(만)이 넘어 2천(만)쯤 되는데 600만 받고 일하라 하면 누가 하겠어요. 그러니 저희 (경기도의료원) 병원장들이 모여서 결정을 한 거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지방 의료원은 '임금체불'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격벽 및 음압전실 설치를 위한 보조금 외에도
'최소한의 병원 운영이 가능하도록' 손실보상금을 지급해왔지만, 지원기간을 6개월, 길어야 최장 1년으로 제한한 게 문제다.
앞서
보건의료노조가 지난달 13일 총파업 당시 '코로나 전담병원에 대한 회복기 지원 확대'를 주장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현장에선 정부가 급한 고비를 넘기자 공공병원을 '토사구팽(兎死狗烹)'했다는 성토까지 나왔다.
정 원장도 이에 대해선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전담병원 해제 이후 들어온 정부 지원은 정확히 6개월째를 마지막으로 끊겼다.
"2021년도에는 (보조금 등으로) 흑자가 나서 현금 보유량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전담병원이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가면 당연히 적자 폭이 더 클 거 아니에요. 그때부터 6개월간 손실지원금을 받았어요. 수원병원은 올 2월까지 지원을 받았는데 3월부터는 한 10억 정도씩 적자가 나요. 7~8월 사이가 되면 쌓아놨던 현금이 바닥 날 거고…의정부·수원·포천·파주는 본부가 계속 지원을 해줘야 되는 상황인데 9월에는 의료원 보유분(分)으로 지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해지 과정도 다소 일방적이었다. 정 원장은 "(작년) '5월 초 감염병전담병원 해지'가 4월에 결정됐는데 (정부가) 이걸 공공병원에 먼저 적용시켰다"며 "민간은 수가로 참여를 유도했는데, 우리(공공병원)는 들어오라는 것도 명령으로 했지만 (전담병원에서) 나가라는 것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막상 당일이 되자
'이제 정말 확진자를 안 봐도 되는 건가' 싶은 어리둥절함과 동시에 운영 정상화를 위한 준비기간이 전무(全無)했다는 점도 막막하게 다가왔다.
"그 과정이 좀 강압적으로 느껴졌어요. 우린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는데…그 날부터 갑자기 2~3일 (확진자) 입원병실을 청소하고 닦아낸다고 바로 환자를 받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워낙 상황이 열악했던 수원·포천병원 등은 스프링클러 설치 등 여러 내부공사를 하느라 그럴 수도 없었어요." '제7기(2019~2022년) 경기도 지역보건의료계획' 중 발췌'K-방역' 성과에도 지역 기반 대응 실패…"공공의료 확충해야"
감염병 전문가들은 앞으로 빠르면 5년 이내 '제2의 코로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정 원장은
미래의 팬데믹(pandemic)을 온전히 대비하려면 원내 일반 병동과 분리된 감염병 전담병상을 확충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보건복지부는 '(원칙적으로) 외래를 못 받게 한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하지만, 입원환자를 못 보고 있는데 외래가 활성화될 순 없다. 또 외래에 감염환자가 들어오는 순간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감염병 재난 시 확진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급성기 병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이같은 종합적) 병원 기능을 가지려면 300병상은 돼야 하는데, 수원 등 (경기도의료원 병원들은 각각) 다 합해봐야 200병상도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K-방역'이 오미크론 유행 이전까지 선방한 것은 사실이나, 일본 같은 지역사회 기반 대응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도 내놨다.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는 그 관내에서 해결하는
'지역완결형 의료'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인프라 부족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중환자든 경증이든 그 지역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면 지역 내 중증도에 맞는 입·퇴원이 일본에서는 가능했다는 거예요. 비용이 실제로 훨씬 적게 들어가는 방식인데…우리나라는 중앙에서 모든 걸 통제하다 보니 포천에서 생긴 환자를 수원으로 보내고, 수원 환자를 파주로 보내는 이런 일이 허다했거든요. 안성병원에서 (일본과 비슷한) 그 모델을 한 번 시도하기도 했죠.
경기도는 31개 시·군이 있는데 12개 중진료권(필수의료 보장을 위해 정부가 구분한 의료생활권으로 지방 의료원 등이 책임의료기관을 맡음)으로 묶어놨어요.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등까지 합해도 (소재 공공병원이) 8개라 나머지 4곳은 비어요. 그 지역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되냐는 거죠." 정 원장은 "기초자치단체 단위 관리까지는 안 되더라도,
(중진료권 상) 경기도에는 최소한 4개의 공공병원이 더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이송체계가 아무리 정비되더라도 도서벽지 등 의료취약지 주민의 건강을 대도심의 건강수준만큼 유지할 수는 없다"며 "장기적으로 공공의료기관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지자체에서 지원 중인 '취약계층 진료 지원사업'을 들어 "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주변 주민만 그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 정책은 민간에 맡겨서만은 이뤄질 수 없다"며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