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후지와라. Photo by Jorg von Bruchhausen. Courtesy of the artist"'후'(Who)는 만화 캐릭터를 넘어 세계관이자 테마파크 같은 존재죠."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일본계 영국 미술가 사이먼 후지와라(41) 개인전 '후지엄 오브 후'(Whoseum of Who?)에서는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 '후'가 사는 '후니버스'(Whoniverse)를 만날 수 있다. '후 더 베어'(Who the Baer) 연작 40여 점(회화·영상·설치)을 공개한다.
'후니버스'의 주인인 '후'는 새하얀 털과 황금빛 심장, 긴 혀를 가진 곰으로,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정체성에서 자유롭다.
후지와라는 "2020년 팬데믹 시기에 만든 캐릭터다. 비인간적이고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모순 덩어리인 '후'를 창조했다"며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것이 '후'의 정체성이다.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시선이 자유로워진 시대인 만큼 '후'에게 특정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후'는 만화 캐릭터를 넘어 세계관이자 테마파크 같은 존재다. 후지와라는 "만화 캐릭터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깝다. 세계를 사유하는 일종의 그릇 또는 틀이다. 이 세계의 어두운 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후'는 다양한 이미지의 세계를 종횡무진한다. 이미지에 맞춰 정체성도 시시각각 변한다. "'후'에게는 이미지의 세계가 진짜 세계죠. '후' 자체가 또 다른 이미지이기 때문이에요. '후'의 꿈은 궁극적 이미지가 되는 거죠."
이번 전시는 '후 더 베어' 렌즈를 통해 피카소, 마티스, 바스키아, 앤디 워홀, 데마안 허스트 등 20세기 걸작을 재구성한다.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프랑스 살롱처럼 꾸며진 전시장 지하층은 대부분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경유한다. "그 당시 이미지의 전형을 깨고 20세기의 이미지를 새로 만들려고 했던 두 작가의 노력이 오늘날 '후'가 살아가는 이미지의 세계의 디딤돌이 됐기 때문"이다.
'후'는 유명한 작가 또는 작품을 좋아하며, 스스로 유명세를 얻고 싶어 하지만 두 작가의 그림을 보고 뭔가 잘못 됐음을 자각한다. "왜 그 시대 여성들은 그림 속에서 항상 나체로 의자에 앉아 있을까." 그래서 출품작 속 남성, 여성, 동물, 사물은 마음껏 변형되고 변신한다.
후지와라는 "여성을 대상화한 두 작가의 작품을 오늘날 관람객이 모순점을 갖고 즐길 수 있길 바랐다. 이들의 작업을 기리는 동시에 새로운 대화를 나누면서 관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바스키아와 앤드 워홀 작품에서 '후'는 각각 정체성 정치와 과도한 소비주의를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 '정체성'을 나타낸 전시장 디자인도 눈에 띈다. 후지와라는 "전시장 벽과 카펫은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을 반복적으로 썼다. 그런데 노란색은 파란색이, 파란색은 분홍색이, 분홍색은 파란색이 살짝 섞였다. 경계에 있는 색은 '후'의 정체성을 표현해준다"고 말했다.
후지와라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고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2010년 아트바젤 발루아즈상과 2010년 프리즈 까르띠에상을 수상했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