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②놀이터엔 노인들만…"애 한 명도 안 태어난 마을도"[영상] ③"마을 하나씩 매년 사라지는 셈…20년 후가 두려워요" ④20여년 간 41개 학교 문닫은 신안…"공공인프라 길게 보고 심어야"[영상] ⑤지역 특색 살린 '살아보기'로 인구 유치…"가장 큰 걸림돌은 주거 문제" ⑥'과밀한' 경기도마저 인구위기 '빨간불'…"80대도 안아프면 일해야" ⑦가평 이사 간 목동엄마의 분투기 "주3일은 서울行" ⑧MZ세대 남녀 '동상이몽' 심화…멀어지는 결혼·출산 ⑨현실판 '82년생 김지영' 도처에…"이기적이란 말이 이기적" ⑩'비혼 1세대'가 바라본 저출생…"'삼중 노동' 여성들의 파업" ⑪"육아대디 되니 아내와 '동질감'…평일 회식도 눈치 안 봐" ⑫"젠더 갈등, 연애에도 영향…여성 고용문제 풀어야 저출생 개선" (계속) |
'이대남', '이대녀'… . 올 3월 치러진 20대 대선을 계기로 재차 붙여진 호칭은 성별에 따른 인식 차를 새삼 확인케 했다. 20대 여성의 58%, 30대 여성의 49.7%가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준 반면 남성은 20·30대 모두 과반(58.7%·52.8%)이 현 대통령인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는 지금도 양측을 갈라놓은 '뜨거운 감자'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지난 9월 벌어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 등을 보는 남녀의 온도는 사뭇 달랐다. 온라인에서는 '여혐'(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 초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2030 여성은 40.3%로 같은 연령층 남성(5.5%)의 7배 이상이었다는 경향신문의 설문조사(한국갤럽 수행)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젠더 갈등'이 MZ세대의 연애·결혼에도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출산에 보다 긍정적인 남성 청년과 달리 여성 청년들은 다소 부정적 또는 유보적 입장을 보인다.
CBS노컷뉴스는 각자의 연구 분야에서 관련 문제의식을 가져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갈등'이란 말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불평등'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젠더폭력, 결혼에 부정적 영향…사전에 위험 피하잔 생각"
지난달 1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서 개최한 제28회 인구포럼('결혼과 출산 행동의 주요 특징과 정책적 함의')에서 발표하고 있는 최선영 부연구위원. 유튜브 화면 캡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최선영 부연구위원은 사회적인 성별 갈등과 사적 영역인 연애·결혼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2015년 이후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젠더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며
"사적인 연애 관계에도 젠더 갈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촬영' 사건이나 스토킹 살인 사건 등은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줬다"며 "새로운 친밀한 관계의 형성, 해소가 빈번한 2030 여성들은 이러한 폭력 가능성과 그것이 사회적으로 해결되는 방식을 예의주시해왔다"고 부연했다. 남 일 같지 않은 사건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일상적 가능성의 불안'을 심어줬고, 이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법·제도·문화에 대한 불안'도 중층적으로 쌓였다는 것이다.
"이 '이중의 불안'이 이성애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불법 촬영을 비롯한 폭력의 가능성,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사건에 대해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위치와 입장을 갖는 경우가 많죠. 각자의 성별을 넘어 보편적 원칙과 가치가 수립된다면, 개인들이 일상에서 갈등하고 싸울 필요가 없을 텐데 현재의 '젠더 갈등'은 그런 입장 수렴이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에요.
적어도 여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새로 연애를 시작할 때나 연애관계를 지속하는 문제, 그리고 결혼을 생각할 때 이 파트너(배우자)를 위험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졌어요. 이러한 위험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최 부연구위원은 다만 이같은 흐름을 고착된 경향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최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연애나 결혼은 여전히 중요성을 갖고 있어요. 특정한 사건이나 현상을 토대로 제도나 문화로서 결혼의 전망을 도출하는 데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봐요. 오히려 연애관계나 결혼이 이러한 불안과 젠더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길 기대한다기보다 그것이 표출되는 현장이 될 수 있단 점을 수용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흔히 청년들이 결혼·출산을 주저하는 배경으로 이들의 '팍팍한 삶', 즉 금전적 이유가 0순위로 꼽힌다. 최 부연구위원은 이에 동의하면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하지 않은 채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후의 삶이 매우 힘들어질 거라고 (청년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고 봤다.
그는
①업무 경력이 쌓이면서 소득도 함께 상승할 거라는 기대가 약하고 ②혼자 버는 것보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해 소득을 늘려갈 수 있다는 기대 또한 약한 대신 ③결혼 이후 대처해야 할 위험은 싱글일 때보다 더 커질 것이란 부정적 기대는 강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스스로' 충분한 자산 조건을 마련하기 어렵다. 최 부연구위원은 "최근 출생세대로 올수록 결혼이 늦춰지거나 포기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이 위험과 불안이 청년들의 보편적 상황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성(性) 불평등'만이 저출생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정부와 사회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들의 고유한 위험에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이 리스크(high risk)'가 유지되는 이상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를 넘어 근본적인 사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에서 '이상적 노동자'를 그 어떤 가족돌봄의 부담도 없는 사람으로 정해놓는 한, 휴가제도나 근로시간 제도가 할 수 있는 일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죠. 남성(아빠)의 육아부담 공유도 절실하게 필요하고, 성별을 떠나 돌봄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갖는 노동자를 '표준적 노동자'로 인식하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해요." "女 고용불안정, 출산에 영향…일·가정 양립가능 환경 조성해야"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前 한국노동연구원장). 본인 제공지난 2007~2008년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도 청년, 그 중에서도 여성의 열악한 고용 지위에 주목한다.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불평등은 아직 당면한 현실이며, 이 지표가 인구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다.
최 교수는 CBS노컷뉴스에 "최근 국책 연구기관들에서도 여성과 청년의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결혼 및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왔다"며
"30대 초반의 미혼율이 고용 지위, 그러니까 비정규직 여부에 따라 차이가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통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하더라도 고용이 불안정하면 쉽게 결혼을 결정하기 어렵지 않겠나. 출산도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저출산 현상에 대한 이해와 정책대응'(2021) 보고서에서
"특히 비정규직, 중소기업 등에 근무하는 청년층의 경우,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수준 등이 혼인을 지연하거나 출산을 연기 혹은 포기하는 요인으로 작용된다"고 밝혔다. KDI는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등의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들이 선호하지 않은 일자리의 질을 높여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고용형태, 임금 격차, 고용 안정성 차이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국내 남성 고용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19위, 여성은 31위다. 성별 임금격차는 여전히 30% 이상이다. 최 교수는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사례들을 보면 고용률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통계들도 있다. 일·가정 양립이나 직장 내 성평등이 잘될수록 출산의 장애요인도 완화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소득 전문직 여성'일수록 되레 결혼·출산을 회피한다는 일각의 지적과 관련해선 "평균적으로 보면 그런 위치의 사람이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출산을 하더라도 직업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위험이 더 적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불안정 고용 계층에 있는 여성들은 그런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보육을 위한 각종 수당 등 '현금성 지원'보다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10만원, 20만원 등 아동수당·보육수당을 준다고 내가 애를 낳겠느냐' 하는 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고용을 안정시켜 주고, 직장 내 성평등,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직장 제도와 문화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해요." 아울러 "여성들이 출산 휴가나 보육을 위해 경력 이탈을 했다가 다시 복귀하면 지금 같은 연공 중심 인사관리 체계에선 굉장한 불이익을 보게 된다"며 "중장기적 과제이긴 하지만,
우리 노동시장의 연공 중심 인사, 임금 결정체계를 직무와 경력, 성과 중심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단' 공백, 개인이 메꾸기 무리…男 양육 역량 개선교육 필요"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의 김나영 부연구위원. 지방보육재정, 여성노동 지원정책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본인 제공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김나영 부연구위원은 "단순히 (청년층의) 금전적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직장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며
"안정적인 직장은 연속성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직원)의 성장과 발전을 함께해줄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더 나아가 자녀 양육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내지원, 일·가정 양립 문화 등이 정착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포괄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여건이 갖춰져 있는 직장을 다니게 된다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청년 인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평등과 저출생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결국 자녀 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남성의 육아 참여가 증가하였다곤 하지만,
각자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되더라도 많은 수의 부부가 여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여성 스스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자녀돌봄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낫다는 인식이 있는 거죠.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육아 참여만 독려할 것이 아니라 이들(아빠들)에 대한 실질적 교육이 수반될 필요가 있어요." 김 부연구위원은 시·도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각 지자체마다 대학들에 남성들을 상대로 한 관련 교양수업 개설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교육수준이 높고 소득이 많은 여성이라 해서 '경력 단절'의 예외가 되지 않는 현실도 짚었다. 그는 "이런 여성들은 직업 특성상 육아휴직 등을 이용하게 되면 직장, 더 나아가 업무 분야에서 도태되기 쉽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에 더 소극적인 것"이라며
"육아휴직 사용여건이 좋은 직장에 다녀도 경쟁이 심해 경력 공백을 개인의 노력으로 채우기 역부족인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관리자 패널조사'(2022)에 따르면, 여성의 자녀돌봄 시간이 길수록 직장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갈등이 많아진다는 통계적 관련성도 확인됐다.
배우자의 돌봄분담 정도가 낮을수록 이같은 갈등은 심화됐다. 비교적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여성들조차 육아·가사노동의 '이중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남성의 육아휴직은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일정기간 동안은 강제성을 다소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고, 해당 휴직 사용문화를 사회 전반에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의 활성화도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도울 수 있다고 봤다. 김 부연구위원은 "여성 본인이 원한다면 육아휴직 외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육아를 병행하게끔 하여 일의 연속성을 가져가고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새로운 걸 우후죽순 만들기보다는 기존 제도를 먼저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기존 정책의 활용도는 정책수요자의 특성과 상황을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분석해 '개별 맞춤형'에 근접한 정책을 제공할 때 높아질 거예요. '절대 근로시간'을 줄여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데 정책의 큰 목표를 두고 사회 전반의 문화 개선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어요. 종사업종, 취업 여부, 거주지역 등 삶의 방식이 매우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어서, 이에 맞는 지원이 이뤄져야 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