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직장인 정지산(33) 씨는 아이 둘과 외출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아기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는 화장실을 찾기 어려워서다.
아내와 함께 외출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빠가 기저귀를 교환하려고 해도 남자화장실엔 교환대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아내가 '기저귀 미션'을 맡는다.
정씨는 "혼자 외출했을 때 남자화장실에 교환대가 따로 없어서 아이를 안고 기저귀를 가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많다. 말하면서도 진땀이 난다"고 했다.
직장인 김현석(33) 씨도 "화장실에 교환대가 없어서 건물에 한두 개뿐인 수유실을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며 찾다가 시간이 한참 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환대가 비교적 잘 돼 있는 쇼핑몰을 자주 찾게 된다고도 했다. 남녀 모두가 사용할 수 있고 교환대까지 갖춰진 '가족 화장실'이 있는 쇼핑몰을 특히 애용한다.
실제로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27일 정부 공공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집계된 서울시 개방 및 공중화장실 3천708곳 중 1천123곳(30%)에 교환대가 있었다. 3곳 중 1곳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남자·여자 모두 교환대가 설치된 화장실은 525곳이다. 또 여자만 설치된 곳은 575곳이었고, 남자만 설치된 화장실은 23곳으로 극소수였다.
이를 합산하면 여자화장실(1100곳)이 남자화장실(548곳)보다 교환대가 2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아빠 육아'가 일상화하고 있지만, 정책이나 예산 결정권자들의 인식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용남 한국보육진흥원 육아종합지원본부장은 "결국 인식의 문제"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 화장실 교환대 설치 사업에 일일이 돈을 지원해주긴 어렵다. 결국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 관심이나 자체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100만원이면 충분히 튼튼한 교환대를 설치할 수 있다"며 정책·예산 결정권자들은 정작 육아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는 연령대가 대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남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가족 화장실'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에 생긴 쇼핑몰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는 가족 화장실이 늘어나는 추세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유럽만 가도 가족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아빠나 엄마뿐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양육자가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