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정부 잘못 쏙 뺀 노동부의 反'노란봉투법' 조사[노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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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 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 깔아봅니다.

손배·가압류 문제가 민주노총·일부 사업장 만의 문제라는 노동부
극단적인 노사 갈등 초래한 사측·정부 책임은 따지지도 않나
해외도 불법 파업은 손해배상 인정? "해외는 우리와 '불법 파업'의 범위 자체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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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에 반대 입장을 피력해온 고용노동부가 이를 사실상 뒷받침하는 통계 자료를 제시해 논란이 예상된다.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해 사측이 제기하는 거액의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 문제가 '일부' 사업장, 특히 민주노총만의 문제라고 선을 그으면서 "손배문제는 노사관계 전반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 사측, 정부의 책임은 아예 다루지 않는가 하면, 우리나라와 노동권 보장 수준이 다른 해외 사례를 단순 비교하기도 했다.


실태조사 전부터 '노란봉투법 반대' 외치던 노동부


고용노동부는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기업·국가·제3자가 노동조합 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송 및 가압류 사건에 대한 추가 실태조사 결과와, 관련 해외 사례에 대한 조사 결과를 21일 공개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 4일 1차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파업의 범위를 합리화해서 파업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를 예방하려는 노조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의 국회 논의를 정부가 지원하기 위해 추진된 조사다.

그런데 노동부는 실태조사를 공개하기도 전부터 노란봉투법에 대해 위헌 논란, 불법 파업 조장 우려 등 반대 입장부터 제시하고 있었다. 지난달 노동부 이정식 장관이 국회에서 "불법파업이나 갈등을 조장한다든지,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준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작 실태 조사에서 관련 소송을 파악한 수단에 대해 "법원은 관련 자료가 없고,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며 관련 시민단체인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가 운영하는 아카이브 사이트를 토대로 한국노총 법률원, 언론·지방 관서를 통해 파악했다고 밝혔다.

즉 정부도, 사법부도 관련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한 반대 입장부터 제시했던 것이다.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시작한 노동부의 실태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자료의 첫장을 장식하는 '총괄' 부분이다. 복잡한 통계 내용에 대한 노동부의 해석을 담고 있어, 정부의 '반대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손배·가압류가 민주노총·일부만의 문제? 노동부, '노란봉투법' 편가르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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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노동부는 "손해배상 소송은 민노 소속 사업장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1차 실태 조사에서도 피력했던 주장이다.

실제로 민주노총 소속 노조·노동자를 상대로 제기된 사건이 전체 소송건의 94%(151건 중 142건)이고, 전체 청구액의 99.6%, 인용액의 99.9%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오랜 역사 동안 정부·사측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실리적 조합주의에 기반한 한국노총과, 정부·사측이 노조에 대한 공세를 펼치면 강력한 정치적 대응을 선택했던 민주노총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노동부가 '노란봉투법'이 노동계의 절반인 민주노총 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문장이기도 하다. 정부가 '노란봉투법' 논의 지형에서 일종의 '편가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바로 뒤이어 노동부가 "손배문제는 노사관계 전반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한 것 역시 그러하다. 그 근거로 노동부는 전체 손배액이 일부 대규모 사업장(9개)의 분쟁이 대다수를 차지(전체 청구액의 80.9%, 인용액의 93.6%)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9개 사업장은 현대제철, 대우조선, 쌍용차, 현대차, 한국철도공사, 문화방송, 한진중공업, KEC, 갑을오토텍으로, 지난 2000년대 이후 대표적으로 대규모 노사 갈등을 겪었던 사업장들이다. 뒤집어 말하면 위 9개 사업장들의 손배 규모는 일반적인 노사 갈등의 수준을 뛰어넘은, 심지어 손배소를 제기한 다른 사업장보다도 큰 이례적인 사안들인 셈이다.

정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측이 노조·노동자에게 청구한 손해배상소송은 총 73개소 기업의 151건, 청구액은 무려 2752억 7천만 원이다. 이들 9개 기업의 극단적인 손배소 청구 금액을 제외하더라도 525억 원 이상의 청구 금액이 남는데도 정부는 '일부 사업장'만의 문제라고 주장한 것이다.

더구나 해당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액의 손배소가 누구의 '잘못'인지 의문이다.

현대제철, 현대차는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수백억 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이미 정부,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판단을 받아 잘못을 시정해야 하는 사측이 손배소를 제기한 것이다.

반도체 부품업체 KEC는 노조 탈퇴를 유도하고 친기업노조 설립을 공모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2주 동안 공장을 점거한 노조에게 30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6년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노조에게 3년 안에 3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차 납품업체인 갑을오토텍도 사측이 파업 유도→직장폐쇄→친기업 노조 구성의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법원에 인정됐다. 당시 사측은 10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를 노조를 상대로 제기했다.

한편 노동부는 "손배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노사 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제기된 손배소송 중 절반 이상(52.0%)이 소취하 또는 조정·화해로 해결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노동계가 주장하는대로, 손배소가 무분별하게 제기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정확한 피해 규모나 노사 갈등의 책임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사측이 노동자 압박용으로 손배소부터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손잡고 "사측, 노동부 책임은 쏙 빼놓은 조사 결과" 반발도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현역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등 현역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노란봉투법 정기국회 중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
정부의 실태조사에 담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실태조사에 빠져있는 사실이다. '손잡고'는 노동부의 2차 실태조사 발표 직후 '사측 책임'과 '고용노동부 책임'은 쏙 빼놓았다고 비판했다.

손잡고는 "손해배상 원인을 분석하면서, 쟁의행위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외면한 결과라며 "쟁의행위의 원인은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사항,  불법파견, 노조무력화시도, 근로기준법 위반 등 사용자의 불법이 배경에 있다는 것이 소송기록을 통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노동부가 우리나라 법원이 노동자들의 배상 책임을 낮춰주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한 '책임제한'에 대해서도 손잡고는 정반대로 해석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사측의 손해배상청구가 인용된 판결 39건 중 26건(66.7%)에서 노동조합 등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해 20%에서 90%까지 손해배상액을 감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애초 사용자 측이 쟁의행위의 원인을 제공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법원이 인정하면서도, 노동자에게 배상의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고 내린 판결이다.

노동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쟁의행위의 원인으로 언급된 사용자의 불법은 모두 고용노동부 관리감독 사안"이라며 "1차 실태조사결과에 나열된 유성기업, 현대자동차, 한진중공업, KEC는 2018년 고용노동부가 직접 조사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에 회사의 불법과 고용노동부의 책임 방기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사업장에 제기된 손해배상소송도 회사의 불법이 이뤄진 과정 또는 같은 시기 '노조 탄압'을 목적으로 제기된 것"이라며 "기업의 불법이 드러났다고 해당 과정에서 제기된 손배소송이 취하되거나 면책된 적이 없다"고 짚었다.


해외도 불법 파업 면책 없다? "'불법 파업' 범위 자체가 다른데 어떻게 비교하나"


프랑스 원전 노동자들의 파업. 연합뉴스프랑스 원전 노동자들의 파업. 연합뉴스
한편 노동부는 해외 사례를 제시하며 "대부분 국가에서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민사상 면책이 있으나,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을 법률로 명시한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일반조합원 등 개인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을 묻지 않도록 면책 규정을 두는 경우도 찾기 어렵고, 손해배상액 규모에 대한 제한 역시 입법례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외의 법 조항은 제시됐지만, 실제 적용 사례를 살펴보면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권영국 변호사는 "해외도 불법행위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애초 해외와 우리나라는 '불법 파업'의 범위가 다르다"며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파업, 회사의 인사·경영상 결정에 항의하는 파업도 우리나라는 불법으로 제한되지만 외국 주요 선진국은 다 적법한 파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파업 과정에서 폭력, 파괴 행위가 있더라도 행위한 특정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쟁의 행위 전체를 불법화하지 않는다"며 "교섭 창구 단일화로 소수노조는 파업권이 아예 봉쇄된 것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제기하는 사례 자체가 찾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노동부는 파업의 기준 자체를 극도로 협소하게 만들고 조그만 절차만 위반해도 불법 파업이라고 하는 현실을 감추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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