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연합뉴스'법적으로 근로자'라며 아이돌을 포함한 대중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내건 노동조합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는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했지만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둘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16일 방송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아이돌 노동조합 설립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는 지난 9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10월에는 '근로자성 입증'을 위한 보완 자료를 제출했다고 한다. 준비위원장인 그룹 틴탑 출신 방민수씨를 포함한 약 10명의 현직 아이돌이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는 아이돌이 소속사의 지휘·감독 아래에서 일정한 장소와 시간에 맞춰 일하며, 정산금 형태로 대가를 받는 만큼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방 준비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겸업 금지, 숙소 관리, 생활 보고 의무 등은 이미 사용-종속 관계를 의미한다"며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노조 설립 가능?
아이돌의 노조 설립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가능성은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방송연기자노조 관련 판결(2015두38092)에서, 방송연기자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단순한 계약 관계로만 봐서는 안되고, 실제 노무 제공 관계와 연기자들의 노동 3권 필요성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노동조합법은 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종속성과 지휘·감독 관계 등이 어느 정도 인정되면 비교적 넓은 범위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한다. 당시 대법원은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하면서 "반드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된다고 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령 전속성이 약하더라도 노동 3권 보장의 필요성이 크다면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속계약을 맺지 않거나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는 예술인에게도 법적 보호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판례로 평가된다.
이 판결은 아이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일정한 활동 장소와 스케줄, 정해진 복장과 태도, 지휘·감독 아래에서의 공연·촬영 활동 등은 노동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배달 플랫폼 노동자 노조가 설립된 것처럼 특수형태노동자의 노조를 인정하는 최근의 경향을 보면 가능성은 더해진다. 다만 아이돌의 법적 정의, 단체교섭 대상, 실질적 사용자의 범위 등 아직 구체적인 법적 쟁점은 남아 있다.
아이돌은 법적 근로자?
뉴진스. 연합뉴스아이돌 노조가 설립된다면 법적 근로자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 여부를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한다. 고용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용자의 지시를 따른 대가를 받느냐가 초점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종속관계'를 엄격히 따지는 편이다. 그래야 개별 근로자의 근로조건 특정하고, 보호할 수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아이돌처럼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 연예인의 경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행 문화체육관광부의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는 연예인을 '용역 제공자'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현실을 떠나 계약관계에서 만큼은 근로자라기보다는 대등한 관계라는 얘기다.
사용종속 관계가 맞는지 근로기준법상 애매한 부분도 있다. 실제로 뉴진스 멤버 하니는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불거졌을 때, 실제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와 별개로 법적인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된 바 있다.
아이돌 노조 준비위는 이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 아이돌은 소속사의 지휘·감독 아래 연습실이나 숙소 등 정해진 장소에서 일정표에 따른 노동을 제공하며, 정산금 형태로 지속적 보수를 지급받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될 소지가 크다"며 구체적인 해석지침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아이돌은 법률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상보험 미적용·4대 보험 미가입·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미적용 등의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이돌을 법적 근로자로 볼 수 있기까지는 여전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만약 노조할 권리가 인정된다면, 조금씩 논의의 물꼬는 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의 불공정 계약과 인권침해 문제는 이미 사회적으로도 알려져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대중문화산업법)은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시간 제한, 교육권 보장, 범죄경력자 배제 등 장치를 담고 있지만, 대부분 권고 수준에 그친다. K-POP 산업 규모에 비해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중원대학교 김헌식 특임교수는 "극소수의 아이돌 그룹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영세한 소속사 출신들"이라며 "이들을 대변해줄 어떤 조직도 없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수협회라도 연령대가 있거나 제작사 협회, 매니지먼트 협회 등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이 돼 있다"며 "젊은 세대들을 대변하는 예술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