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적 186명, 찬성 183명, 반대 3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투표에 불참했다. 박종민 기자정부가 입법예고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령 개정안에 노동계가 '유성기업 노조 파괴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그간 노사(勞使)-노노(勞勞) 갈등을 부른다는 비판을 받던 '교섭창구 단일화'를 이번 개정안에도 원칙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제2의 유성기업 사태', 즉 극심한 '노노 갈등'의 서막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소송으로 인한 시간 낭비를 막고 실질적 교섭을 앞당기는 조치"라며 고수하고 있다.
'유성기업 트라우마'…창구 단일화는 어떻게 흉기가 되었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은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한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절충했다고 주장한다.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틀을 유지하고, 대신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해 '진짜 사장'인 원청 사용자에 대한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창구 단일화' 자체가 위험하고, 작고 약한 노조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우려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성기업 노조 파괴 사태'다. 2011년 자동차 부품사 유성기업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회사 주도로 어용노조인 제2노조를 설립했다. 복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조합원 수가 많은 '교섭대표노조'만 회사와 교섭할 수 있다는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회사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제2노조가 교섭권을 독점했고, 기존 노조는 교섭 테이블에서 배제된 채 10년 넘게 거리 투쟁을 벌여야 했다.
지난 2011년 5월 유성기업 아산공장 노조 파업 및 직장 폐쇄 당시 모습. 연합뉴스대법원은 지난 2021년 사측 주도로 설립된 제2노조에 대해 "사용자가 노조 설립과 운영에 지배·개입해 자주성을 상실했으므로 설립 자체가 무효"라고 확정 판결했다. 유성기업 류시영 회장은 노조 파괴 공작에 관여한 배임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번 시행령은 이처럼 악용될 소지가 있는 '창구 단일화' 제도를 원·하청 관계에 그대로 적용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돼 하청 노조가 교섭할 권리를 갖더라도, 원청 내 다른 정규직 노조나 다른 하청 노조 등과 단일화 절차를 거치는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노란봉투법 개정 운동을 펼쳐온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복수노조 도입 당시에도 소수 노조 권익 신장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회사가 만든 노조가 민주노조를 와해시키는 수단이 됐다"며 "이번 시행령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그 악몽을 다시 겪으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대놓고 불법 안 저질러도"…일감 몰아주기로 합법적 배제 가능?
2011년 5월 27일 유성기업 아산공장 앞에서 공장진입을 시도하는 노조원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이 뒤엉켜 있다. 연합뉴스물론 사측이 유성기업 사태처럼 노골적으로 노조 설립에 개입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처벌을 피하면서도 합법적으로 하청 노조를 무력화할 수 있는 '회색지대'가 열려있다고 경고한다. 굳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원청이 쥐고 있는 '일감 배분권'만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원청이 쓴소리를 하는 강성 하청 노조가 속한 업체에는 일감을 줄이고, 말을 잘 듣는 '친(親)원청 성향' 노조가 있는 하청 업체에 일감을 더 많이 배정한다. 자연스럽게 '친원청' 업체의 노조원 수가 늘어나 '과반수 노조'로서 교섭대표권을 쥘 수 있다. 영세한 하청 업체의 명줄을 원청이 쥐고 흔들 수 있는 수직계열화된 한국의 산업 구조에서, 하청 노조 간에 교섭창구를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원청을 상대로 충성 경쟁을 벌여야 하는 셈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신하나 변호사는 "원청이 '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청 친화적 노조가 있는 업체에 물량을 몰아주면 그곳이 대표 노조가 되고, 회사의 입맛대로 교섭이 짜여질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며 "부당노동행위로 입증하기도 어렵고, 하청 노조의 손발을 묶는 고도화된 수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청 정규직 노조도 하청 노조에게 넘기 힘든 벽이다. 원청 정규직 노조와 하청 노조가 하나의 창구로 묶일 경우, 통상 조합원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규직 노조가 교섭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신 변호사는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은 사실상 한정된 파이 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라며 "정규직 입장에서는 하청이 이익을 많이 가져갈수록 자신의 근로조건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전혀 다르다"고 짚었다.
정부의 반박 "노동위 판정이 더 빠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정부는 이번 시행령이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에 대해 "오해"라며 선을 그었다. 오히려 법의 취지를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패스트트랙'이라는 설명이다.
노동부는 "이번 개정안의 취지는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교섭체계 틀 안에서 교섭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실질적 교섭을 촉진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세운 핵심 논리는 '선(先) 사용자성 판단'이다. 노사가 교섭을 시작하기 전, 창구 단일화 및 교섭단위 분리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노동위가 미리 원청의 사용자성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위가 사용자성을 인정하면 즉시 교섭 의무가 부과되고, 원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할 경우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지도와 부당노동행위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반면 창구 단일화 없이 개별교섭할 경우, 원청이 교섭을 거부하고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날 때까지 수년간 교섭이 중단되어 현장 혼란만 가중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의 낙관론에 회의적이다. 노동위의 판단이 어떻게 내려져도 마찬가지로 사측이 소송으로 버티면 그만이라는 지적이다. 대개 규모가 영세한 하청 노조가 대기업 원청을 상대로 대법원 판결까지 십수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법정 공방을 버티기는 매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은 법에 따라 교섭하자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로 일관했지만, 지난 26일 서울고등법원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게다가 지난 7월에는 서울행정법원도 현대제철에 교섭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지만, 현대제철은 고법의 선고를 일주일 앞두고 '법원의 확정판결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윤 활동가는 "이미 판결을 받은 곳도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데, 정부가 행정력으로 이를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절차만 더 복잡하게 만든 시행령은 그 자체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교섭단위 분리…"교섭권 보장" vs "족쇄"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 황진환 기자창구단일화가 안되더라도 정부는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통해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동위가 이해관계의 공통성 등을 따져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를 분리해 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절차 자체가 교섭을 가로막는 또 다른 족쇄가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상규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은 지난 24일 긴급기자회견에서 "노동위원회의 허가를 받기 전까지 노동 3권은 유예되는 셈"이라며 "사용자가 이 절차를 악용해 시간을 끌고, 그사이 현장을 회유하거나 협박해 노조를 와해시킬 시간은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노동위에 과도한 권한이 몰리지만 일처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노동위는 하청 노조의 분리 신청이 들어오면 최대 20일 안에 원청의 '사용자성(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해야 하는데, 현재 인원 규모의 업무능력으로는 힘들다는 평가다. 정부도 문제를 인정하고 노동위의 인력 증원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시행령 브리핑을 한 뒤 질의응답 과정에서 "과거의 기준에는 판례도 있고 관행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불신도 있다"며 "세상에 어디에도 완벽한 제도는 없고 특히 노사 관계에서 법 제도를 뛰어넘는 자산은 신뢰라고 저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 신뢰가 쌓여있는지 노동계는 묻고 있다. 내년 3월 시행될 노란봉투법 시행령이 정부의 기대대로 '새로운 노사 신뢰'의 시작이 될지, 노동계의 우려대로 하청 노동자들끼리 교섭권을 놓고 다투는 '노노 갈등의 서막'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