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회의를 하는 각국 해병대원들. 김형준 기자8일(현지시간) 하와이 미 해병대 기지 안에 있는 피라미드록 상륙해안. 우리 해병대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7대가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해안 가까이 다가온다.
포탑을 육지 쪽으로 겨눈 채 거친 해상기동을 하며 해안에 내린 KAAV들의 뒤쪽 램프가 열리자 완전무장한 우리 해병대원들이 뛰어나왔다. 그런데 우리 해병대원들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과 멕시코, 인도네시아, 호주,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통가, 칠레 해병대원들도 뛰어나와 함께 해안을 점령한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해안으로 다가오는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김형준 기자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지난 6월 29일부터 미국 하와이 근해에서 열리는 환태평양훈련(RIMPAC) 현장을 찾아, 이번에는 적지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전략기동부대인 해병대원들의 KAAV 탑승 체험과 상륙돌격훈련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뿐만 아니라 이번 훈련 원정강습단(Expeditionary Strike Group)의 기함을 맡은 미 해군 강습상륙함 USS 에식스(Essex)함 또한 직접 방문했다.
9개국 해병대, 림팩서 합 맞춘다…우리 해병대, 미군 다음으로 큰 중대급
미 해군에는 "해군사관학교에 오면 배도 탈 수 있고, 보병도 할 수 있고, 전투기도 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현대 해군은 해상에서 적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구축함을 보유하고,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전투기들이 제공권을 장악하며, 적지를 점령하기 위해 해병대를 투입시키니까 과장을 좀 보태 육해공군 모두를 가지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바다에서의 전투가 중심이기에, 보다 내륙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면 육군과 공군이 투입돼야 한다. 하지만 지구의 2/3가 바다이기 때문에 그 바다를 건너 적을 공격하는 역할을 맡는 해군 또한 필요에 의해 함대, 항공대, 해병대를 모두 보유하게 됐다.
미 해군 강습상륙함 USS 에식스함 비행갑판. 김형준 기자원정강습단이란 개념은 정규 항공모함이 동원될 정도의 전면전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전력 투입이 필요한 저강도 분쟁 등의 상황에서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만큼의 힘을 신속하게 투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기함은 상륙작전을 위해 해병대를 싣고 다니지만 수직이착륙기(STOVL) 운용이 가능해, 웬만한 다른 나라 항공모함과 맞먹는 미 해군 강습상륙함이다.
강습상륙함은 원래부터 해병대를 싣고 다니는 배이므로 항공전력을 출동시키고 그 해병대원들을 신속하게 육지로 보내면, 필요한 만큼의 화력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 원정강습단의 중심이 되는 미 해군의 와스프급·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은 해병대원 약 1600여명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우리 해군 경항공모함 계획 또한 실제로는 이 강습상륙함과 비슷한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김형준 기자취재진은 6일(현지시간) 하와이 호놀룰루 미군 진주만-히캄 합동기지에 정박한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2번함 에식스함을 찾았다. 정규 항공모함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커다란 격납고와 비행갑판이 먼저 눈에 띄었다. 비행갑판엔 MH-60 시 호크 헬리콥터들만이 주기돼 있었지만, 사실 이 배는 F-35B 스텔스 전투기도 운용할 수 있다. 취재진이 찾았을 때 현장에 없었을 뿐이다. 원정강습단과 강습상륙함의 탑재 전력은 전략적·작전적 필요성에 따라 그때그때 바뀐다.
김형준 기자배는 미 해군 것이지만 원정강습단장은 우리 해군에서 맡는다. 다국적군 훈련인 림팩을 총괄하는 우리 군 전투지휘소가 에식스함에 차려졌다. 취재진이 이 곳을 찾았을 때 보안상 공개하지 못할 정보가 나오는 스크린 등은 모두 꺼져 있어 볼 수 없었지만, 곳곳을 살펴보니 시나리오에 따른 여러 훈련들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김형준 기자에식스함 격납고에서 취재진과 만난 미 해병대 소속 크리스토퍼 바토스 소령은 기동전대(CTG) 176.2 예하 7해병공중지상기동부대 부지휘관이다. 그는 "한미 해병대는 이미 수많은 훈련을 연합으로 진행해 왔고 이번에도 상륙작전을 시행한다"며 "한국 해병대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이 감명을 받았고, 이번에 함께 훈련하는 일에 대해서도 많이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해군의 독도급 대형수송함은 미 해군 강습상륙함보다는 작아서 700여명을 실어 나를 수 있다. 하지만 전투지휘 등 기본적인 역할은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운용하지 못한다는 점 외엔 비슷하며, 실제로 이번 림팩에서도 원정강습단 기함인 에식스함에 불의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마라도함에서 지휘하는 훈련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만약 한반도에서 불의의 사태가 일어나 데프콘 3이 발령되면 그때부터는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서 행사하며, 해병대사령부는 주한 미 해병대와 함께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를 구성해 연합작전에 나서게 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한미연합훈련 때 진행하던 연대급 연합상륙훈련이 쌍용훈련이다. 남북 대화 무드 당시 중단됐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를 부활시킬 방침이다.
김형준 기자우리 해병대는 그전 림팩 때까진 소대급만 보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중대급 병력을 파견했다. 중대장 김윤호 대위는 "한미 해병대는 한미동맹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우리 해병대는 KMEP, 림팩 등 다양한 연합훈련을 통해 연합작전수행능력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확고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앞으로도 한미동맹의 핵심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해병대원들은 이번 림팩에서 취재진에 공개된 상륙돌격훈련 외에도 도시지역전투훈련, 기동사격훈련 등을 다른 나라들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전차 다 없앤 미 해병대, 림팩서 새 작전개념 실험…우리 해병대는?
해안에 상륙해 램프를 열고 뛰어나갈 준비를 하는 우리 해병대. 김형준 기자해병대는 범선 시대 함내 군기를 잡고 적함에 올라 근접전투를 벌이는 역할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가, 기술의 발달로 도선전투가 사장되면서 상륙작전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다만 21세기 들어 바뀌는 전략환경은 해병대에게 또다른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상륙전 교리에선 대형 상륙함 등 해상전력들을 동원해 대규모 해병대 병력을 바다에서 육지로 보내고, 마찬가지로 함에서 보낸 항공전력 등이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문제는, 아무리 미 해군이 세계 최강이라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비대칭 전력으로 여기에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반(反)접근·지역거부(A2/AD)라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항공모함이나 강습상륙함을 적지 가까이 보냈다간 날로 발전하는 탄도미사일이나 대함미사일에 격침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용은 둘째치고 막대한 인명피해가 날 수 있다.
EABO 개념도. 미 해병대 홈페이지 캡처미 해병대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2020년에 개편 계획 'Force Design 2030'을 발표했다. 이를 살펴보면 전차부대는 아예 없애버리고 보병부대를 축소하는 대신 분대편성은 15명으로 늘리고, 다연장로켓과 무인기 전력 등은 대폭 늘리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 미 해병대는 유사시 대규모 상륙작전 대신, 조그만 섬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군도 등지에 공격적으로 침투한다. 이 과정에서 다연장 로켓과 무인기 등의 화력·정찰 자산으로 거점을 확보하고, 다시 다른 섬으로 옮겨다니며 아군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나간다는 원정전방기지작전(EABO)이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미군도 사실 실전은 물론 연합훈련 때 이런 작전 방식을 실증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 림팩 때 이를 실험할 계획인데, 따라서 이번이 사실상의 국제 데뷔 무대다.
마라도함 안에 전시된 비궁 실물 크기 모형. 김형준 기자국내 방산업체 LIG넥스원은 이런 계획에 필요한 다연장로켓, 즉 비궁을 마라도함 내에 전시하고 미군을 비롯한 여러 나라 해군들을 상대로 판촉에 나섰다. 비궁은 2.75인치(70mm) 구경으로 다수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으며, 우리 해병대 또한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운용하고 있다. 이미 2019년 10월 미 국방부 해외비교시험(FCT) 프로그램을 통한 시험도 거쳤는데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했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LIG넥스원 김무겸 해외3사업부장은 "빠르게 진격하는 적들에 맞서기 위해 '발사 후 망각(Fire & Forget, 일단 쏘고 나면 자동으로 유도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며 "기본은 차량 탑재이고 해상발사대의 경우 유인수상정에 탑재할 수 있는 발사대가 있으며, 미군은 무인수상정에 탑재 가능한 플랫폼을 요구해 개발도 끝냈다. 향후엔 헬리콥터용도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방산기업 수출을 위해 미국 방산업체이자 협력사인 레이시온은 물론, 주호놀룰루 총영사관을 포함한 (군사)외교 채널 역시 미군과 활발한 교류 등을 통해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해졌다. 단, 미군이 이미 M142 HIMARS를 운용하고 있어 수출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김형준 기자과거 범선 시대 적함에 직접 건너가 점령하는 '도선전투'는 시대가 변하면서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고, 이를 맡던 해병대의 임무도 '상륙작전'으로 바뀌었다. 물론 상륙작전의 효용성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바뀌어 가는 위협은 해병대라는 특수한 목적의 기동부대에게 또다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전시에 대규모 병력을 북한 지역 후방에 상륙시켜야 하는 우리 해병대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는 대규모 전면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군사개입이 필요한 여러 다양한 경우에 대비해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우리의 안보와 이익을 지킬 수 있다. 전략적 목표와 필요성이 무엇인지를 일찍부터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력을 건설해 억제력을 확보하고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될지, 아니면 전통적인 교리만을 고집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군대가 될지는 그야말로 우리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