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 역을 맡은 배우 주상욱. HB엔터테인먼트 제공강력한 군주 태종이 아닌 인간 이방원. 배우 주상욱은 5년 만에 부활한 KBS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은 마치 누군가 그어둔 한계를 넘는 것 같았고, 때로는 벅찬 기쁨을 안기기도 했다. 그에게 '태종 이방원'이 '인생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태종 이방원' 전까지 정장이 잘 어울리는 주상욱은 유독 '실장님'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다. 확실히 존재감을 알린 SBS 드라마 '자이언트' 조민우 역은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그리고 끝내 주상욱은 '태종 이방원'을 통해 수없이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사실 고민도 깊었다. 보통 연기파 배우들로 대표되는 이방원을 주상욱이 새롭게 재해석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주상욱의 이방원'을 뚝심 있게 쌓아 올렸다. 완성된 군주가 아닌 부족함과 실수도 있으며 아들이자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던 그의 고뇌를 밀도 있게 녹여냈다.
말 학대 논란 등 작품이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주연 배우인 그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태종 이방원'의 고삐를 쥐었다. 자신의 캐릭터가 곧 작품의 정체성이 되는 무게 속에서도 주상욱은 담담하게 해야 할 몫을 해냈다. 다음 주상욱과 가진 인터뷰 일문일답.
Q 배우 유동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사극 속 수많은 이방원들이 있었다. 본인이 연기한 이방원은 어떻게 달랐을까A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감히 주상욱이 태종 이방원을?' 이런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던 것 같다. 저도 다른 사극들을 봤고 사실 뛰어넘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결의 이방원이 생긴 것 아닐까.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군주 이방원이 아니라 인간 이방원의 인생을 조명하고자 했다. 그가 겪은 역사적 사실은 당연한 거고, 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인간적인 내면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기존과 다른 이미지의 이방원이 탄생한 것 같다.
Q '태종 이방원' 속 이방원을 보면 왕이 되고 나서는 처가 등 가족과 얽힌 사적인 관계를 거의 끊고 공적인 인간이 된다. 실제로 본인이 이방원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런 결단을 할 수 있다고 보는지A 그게 쉬운 일은 아닌데 이방원은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굉장히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제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사적인 부분을 다 포기하고 이 한 몸 바치고 떠나는 게 드라마틱한 거고 앞과 뒤와 완전히 달라 더 인간적인 매력이 부각되는 거 같다. 앞에 나섰을 때는 강력한 왕이지만 홀로 있을 때는 나약하고 불쌍한 인간이다. 이게 드라마적으로도 굉장히 매력이 있는 것 같다.
KBS 1TV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 역을 맡은 배우 주상욱. HB엔터테인먼트 제공Q 어찌 보면 잠시 연기를 통해 이방원의 삶을 살았다. 본인이 생각한 태종 이방원의 리더십이란
A 태종의 사생활은 제쳐두더라도 오로지 후세대 왕권 강화를 위해,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겠다는 생각 하나만 갖고 있었던 사람 같다. 태종 입장에서 보면 필요에 의해서 한 거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본다. 최소한 폭군은 아니다. 군대로 치면 이등병 때 병장을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해도 막상 병장이 되면 제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방원은 그런 부분에서 본인을 버리면서 마음을 다잡고 어려운 길을 택한 것 같다. 어찌 보면 대단한 사람이다. 다른 병장이 되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의 인생 전체를 봤을 때는 자기를 버리고 조선의 미래를 선택했다.
Q 다른 대하 사극들보다 회차가 짧았다. 총 32부작이었는데 더 풀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까A 심씨 집안 이야기라든가 뒤에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는데 32부작으로 정해져 있고, 그 사이 심온도 숙청해야 하고, 여러 사건들을 다 풀려다 보니 설명이 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쉽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묘사보다 원경왕후 민씨와의 관계 같은 심리와 가족 간 갈등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결과를 향해서 빠르게 가다 보니 감정적으로도 조금 갑작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Q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긴장 관계를 이루며 활약하기도 했다. 특히 아내 원경왕후 민씨(박진희 분)와의 대립이 인상적이었다A 사실 왕좌에 오른 후 아내 원경왕후 민씨와 대립을 하는 회차는 아직도 대사가 기억이 날 정도다. '반은 내 지분이 있다'는 아내의 주장에 대립이 시작됐는데 과정들이 조금 더 설명이 됐으면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다. 아내가 조력자 역할을 해서 그 자리에 온 건 사실이지만 조선에 왕이 둘이 될 수는 없지 않나. 조선의 반을 나눌 수는 없다. 이방원에게는 '무리수'인 요구이지 않았나 싶다.
Q 5년 만에 부활한 KBS 대하 사극이라 시청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중년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2030에게서도 반응이 있더라
A 처음 이 작품을 하기로 했을 때 젊은 시청자들의 선호도는 내려놓고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분들이 KBS 대하 사극의 주 시청자 층이 아니고, 작품 자체가 인기와 이슈를 누리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1회 방송이 나오고 폭발적인 반응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확실히 젊은 층도 많이 좋아해주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방송이 나가고 조금 지난 후에는 이거 안하면 어떻게 할 뻔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KBS 1TV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 역을 맡은 배우 주상욱. HB엔터테인먼트 제공Q 필모그래피에서 이런 정통 사극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 역사 배경지식을 따로 공부했는지 궁금하고, 9개월에 걸친 촬영이 힘들지는 않았는지A 사극을 두 번 했는데 정통 사극은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저도 역사에 크게 관심을 두거나 많이 알지는 못하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 역사를 읽어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재미있더라. 9개월 동안 체력적으로 지친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남는 시간에는 대사를 외워야 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주 52시간을 지켜서 일한다. 드디어 끝났다는 아쉬움보다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단 생각이 든다.
Q 현장 분위기가 좋았나보다. 배우 박진희와는 '자이언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다A 그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은 끝이 좋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재밌게 호흡하고 좋았다. 저는 친한 사람하고 연기를 하는 게 편하다. 서로 말을 가리지 않고 할 수가 있으니까. 일단 저희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기도 했다. 연기할 때는 어려운데 끝나고 그랬다. 지방 촬영이라 다들 숙박을 하는데 감독님이 또 술을 좋아하셔서…. 또 캐릭터들 퇴장이 정해져 있으니까 '저 다음주에 죽을 것 같아요' 하면 오늘 마지막이니까 '쫑파티'처럼 술 한잔, 술 한잔 하는 거다. 갑자기 누가 대사가 많아지면 아니나 다를까 엔딩에 죽더라. (웃음)
Q '태종 이방원'이 주상욱에게 남긴 것은A 이방원을 통해 제 스스로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생각한다. 제가 성장할 수 있는 드라마였고,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다. 몇 년이 더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이 드라마를 기점으로 달라진 점이 생길 것 같다. 나중에 또 인터뷰를 한다면 이방원이 기점이 아니었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제 인생작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