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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한국인 은행원이 쓴 봉쇄 75일의 기록…'안나의 일기'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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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한국인 현지 은행원 봉쇄 일상 담은 블로그글 화제
우한봉쇄 당시 왕팡의 '우한 일기' 떠돌리게 해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부터 봉쇄 일상에서의 깨달음까지
중국인 집주인과 이웃에 대한 따스함
묻지마 반중의식에 대한 비판도 남겨 있어
'따마경제', '아파트 창조경제'…돈 흐름 꿰뚫는 금융인 경륜도

A씨는 4월 1일이 아닌 3월 18일에 격리됐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A씨의 거주단지. 울타리 위에 설치된 것은 고압선이다. A씨 제공 A씨는 4월 1일이 아닌 3월 18일에 격리됐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A씨의 거주단지. 울타리 위에 설치된 것은 고압선이다. A씨 제공 
상하이의 한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A씨는 거주 단지 내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면서 3월 18일부터 격리에 들어갔다. 상하이 봉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4월 1일보다 2주나 앞선다.
 
평소 블로그와 카페 활동을 하던 A씨는 봉쇄 시작 전 '어게인 2020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와 카페에 첫 글을 올렸다. 봉쇄 이튿날인 19일부터는 봉쇄와 관련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과 감상을 본격적으로 포스팅하기 시작해 지난달 31일까지 계속됐다.
 
A씨의 글은 회원 100만명이 넘는 국내 카페에서 '상해판 안네의 일기'라고 불리면서 평균 조회수 1만회를 넘겼다.
 
국제도시인 상하이 봉쇄소식은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그래서 중국 언론은 코로나19를 극복해 가는 모습에, 외신들은 유폐되다시피 한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쏟아냈다.
 
봉쇄로 휑한 거리와 격리단지 내부 모습. A씨 제공봉쇄로 휑한 거리와 격리단지 내부 모습. A씨 제공

하지만 상하이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특히 중국식 격리나 봉쇄를 경험하지 않은 외국인이 인구 2500만의 대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거나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게 바로 '안나의 상하이 봉쇄일기'다.
 
안나일기는 2020년 우한봉쇄 당시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세상에 알리고 관료들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여류작가 왕팡의 우한일기에 비길 만 하다.
 
외국인이기에 조금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도저히 입증이 안 되는 제로코로나 정책을 펴는 권력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한 점에서는 우한일기보다 한 단계 위다.
 
"지금까지 역사는 이긴 자의 노래였어요. 문자와 기록은 가진 자와 승자의 전유물이었으니까요. 이제 디지털 시대에 역사는 누구나 기록할 수 있는 모두의 노래가 되었어요. 이기지 않아도 가지지 않아도 기록할 수 있어요. 상해 봉쇄와 제로 코로나 정책은 언젠가 끝이 날 거예요. 여러 사람들이 현대사에 평가하고 기록할 거예요. 그리고 그 기록에는 상해 봉쇄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고통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배어 있을 거예요"(봉쇄 72일차 5월 28일)
 
"6월 1일부터 쇼핑몰을 정상 운영한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풀어준다는 소리는 없고 쇼핑몰만 여는 계획을 발표하네요. 대중 교통 재개나 쇼핑몰 재개장은 상해 시민을 위한 게 아니라 상해 아닌 곳을 보여주기 위한 계획이라는 소리가 있어요" (봉쇄 69일차 5월 25일)
 
압권은 퀴즈다. 봉쇄 이후 두 번 째로 4시간의 외출을 허락받고 3시간 만에 1만 5천보를 걸었던 A씨는 도중에 발견했던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선전 간판에 대해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중에 실제 중국에 존재하는 단어는요?
부강 민주 문명 협동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존중 성심 우정 선의

A씨는 답은 달지 않았다.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가운데 현재 중국에 있는 것은?. A씨 제공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가운데 현재 중국에 있는 것은?. A씨 제공
상하이 봉쇄일기에 비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봉쇄 단지 내에서 펼쳐지는 인간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관찰자적 시각이 담겨 있고, 가전 제품 , 요리 등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을 재미있게 풀어내는데 그 속엔 삶의 의미와 깨우침이 있다. 곁들어진 다양한 사진과 자료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이 사는 주민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도 있다. 혼자 사는 한국인이 혹시나 봉쇄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까봐 물건을 나눠주는 주인집 부부의 얘기나 집 밖에 내놓는 쓰레기를 통해서 중국인들이 어떤 요리를 해먹고 사는지 다 안다 등등….
 
봉쇄 기간 중에 벌어진 한 교민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기사에 달린 비뚤어진 댓글에 대한 짧은 코멘트에는 '묻지마 반중의식'에 대한 반발도 엿보인다.
 
"어린 유학생들이 봉쇄 초기에 고립돼 굶고 있을 때 누가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라고 했던 분들도 계십니다. 과연 미국으로 유학 갔어도 이렇게 댓글 다셨을까요"라고 반문하는 대목에서는 중국에 사는 교민들이라면 울컥할만하다.
 
그의 글에는 2020년 봄부터 시작해서 2022년까지 이어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교민들이 받은 고통도 오롯이 담겨있다. 2020년에는 베이징에, 2022년에는 상하이에 있으면서 두 도시에서 펼쳐진 극단을 체험했기에 가능했다.  
 
A씨는 중국 생활 11년차다. 상하이 봉쇄일기에는 다년간의 중국 생활을 통해 터득한 작지만 실용적인 지식들이 깨알같이 배겨있어서 중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도 있다.
 
봉쇄 기간에도 한 데 모여 춤추는 따마들과 상하이 봉쇄 기간 주민들 민생용품 해결에 혁혁한 기여를 한 딩동 배달 모습. A씨 제공봉쇄 기간에도 한 데 모여 춤추는 따마들과 상하이 봉쇄 기간 주민들 민생용품 해결에 혁혁한 기여를 한 딩동 배달 모습. A씨 제공

공원, 광장, 아파트 단지 안 가리고 음악 크게 틀어놓고 춤추는 중노년 아줌마들이 사실은 엄청난 구매력을 가진 큰손들이어서 이들 눈에 드는 상품은 웬만하면 완판이라는 얘기나, 봉쇄가 길어지면서 단지 내에 커피 파는 집이나 이발, 마사지 하는 사람까지 생기는 등 아파트 안에서 창조경제가 탄생하고 있다고 한 부분에서는 돈의 흐름을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금융인의 경륜도 읽을 수 있다.
 
A씨는 지난달 31일 마지막 봉쇄일기를 올렸다.
 
"봉쇄기간 동안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리버리한 한국인이 굶을까 힘들까 걱정해서 소중한 식량과 물자를 나눠주시고 구호품 못 받을까 애닳아서 챙켜주신 중국 이웃 분들이 계셨습니다. 사람은 국가와 국적을 초월해서 꽃처럼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저 내일부터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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