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범 초기 국무총리 인준과 코로나19 추경 등 민생 이슈를 둘러싼 여야의 치열한 수싸움에서 국민의힘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수 여당임에도 정부와 발을 맞춰 가면서, 거대 야당이 받아주면 좋고 거절하면 여론전을 펼치기 용이한 의제들이 연달아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민생·협력 앞세운 윤 대통령의 추경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은 신속한 추경 통과와 국회 협력 당부에 방점이 찍혔다. 윤 대통령은 경제, 위기, 민생 등의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며 당위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높은 물가와 금리는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며 "방역 위기를 버티는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만으로도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게는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에 대한 꼼꼼한 심사를 공언하고 있지만, 자영업자·소상공인 보호와 민생 안정을 내세운 이번 추경안의 처리가 지연될 경우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목잡기 프레임에 잡힐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민주당도 대선 과정에서 추경을 공약했기 때문에 깐깐하게 살펴보는 것은 좋지만 발목잡기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약속을 번복한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야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등 협력 의지를 드러낸 것도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정치적 명분을 쌓아 줄만한 소재다. 윤 대통령은 아예 민주당 의원들이 앉아있는 쪽으로 본회의장에 입장하며 야당 의원들과 먼저 인사했고, 15분간의 시정연설이 끝난 이후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의 좌석은 물론 재차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의 좌석을 찾아 일일이 눈빛을 교환하고 손을 잡았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장단 및 여야 지도부와의 사전 환담에서도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는 의회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며 "의회 지도자들과 사전에 양해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당 내에서는 이날 시정연설이 "한 마디로 민주당에 대한 구애"라는 평가가 나왔다.
만찬회동 제안에 5.18 단체 참배까지…협치·통합 메시지도 주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후 윤석열 대통령의 추경안 시정연설을 듣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민주당이 거절하기 힘든 협치와 통합 메시지를 주도하는 것도 정부·여당이다. 전날에는 윤 대통령이 여야 3당 지도부와 16일 김치찌개 만찬회동을 제안했지만 민주당 측의 일정 문제로 무산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만찬회동 제안의 전달 경로를 놓고 "전화를 여러 차례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거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는 진실 공방이 벌어졌지만, 국민의힘 내에서는 대통령의 협치 시도 자체가 무산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다선 의원은 "일반적으로는 야권이 대통령에게 만나자고 제안을 해도 대통령이 안 만나주니 문제가 아니었느냐"며 "어떤 불가피한 일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의 반응이 개인적으로는 궁색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및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는 오는 18일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기로 했다. 일부 추경 심사 등 상임위 일정이 잡혀있는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참여할 예정인데, 해당 일정도 조정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초선의원은 "당 지도부에서 전원 참석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국민 통합이라는 방문 취지에 대다수 의원들이 적극 호응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보수 정당 의원들이 단체로 5.18 민주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일은 유례가 없는데, 이같은 통합 행보는 중도층에게 호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덕수 인준안도 꽃놀이패…"우리는 야당도 찬성 가능한 제안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한덕수 국무총리 인준안을 둘러싼 여야의 기싸움도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만약, 본회의에서 인준안이 통과된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비로소 국정 운영이 궤도에 오를 수 있게 되므로 나쁠 것이 없다.
반대로 부결되면, 총리가 공석이라 국무회의도 추경호 경제부총리 대행체제로 열리고,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도 부재 중인 상황이 장기화되기 때문에 발목잡기 프레임을 야권에 덧씌울 수 있게 된다.
국민의힘 고위관계자는 "총리 인준을 거부한다는 것은 국정을 발목 잡는다는 수준을 넘어 거대 야당이 국정을 망치겠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며 "한덕수 후보자는 민주당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분인데 조만간 현명한 판단을 내려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총리 인준이 부결될 경우, 또다른 난맥상인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 정호영 복지장관 후보자의 임명 강행 명분이 생긴다는 점도 국민의힘에 손해가 아니다. 한 초선 의원은 "총리 인준이 부결된다면 다른 후보자를 찾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도 더 이상 국정 지연을 방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머지 장관들을 임명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적극 반발하기 애매한 의제들이 연이어 정국 중심에 서며, 국정 주도권은 정부·여당으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현재는 여소야대 국면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야당도 찬성할 수밖에 없는 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정치는 명분으로 하는 것인데 민주당이 반대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