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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부장검사님 아니었어도 교통사고는 무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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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A부장검사 안전지대 교통사고 놓고 검·경 엇갈려
경찰 '송치' vs 검찰 '불기소'
檢, 부장검사 아닌 일반인이었어도 '항변' 들어줬을까
일반인 피고인 '유죄' 판결 수두룩한데…"대법 판결 취지"

연합뉴스연합뉴스
선악을 판별해 벌을 주는 정의의 여신 디케의 두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다. 칼과 저울을 든 손으로 정의를 판가름하는 데 있어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한 교통사고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보면 과연 정의로운 법을 상징하는 디케의 눈이 정말 가려져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든다.

지난해 벌어진 한 교통사고를 두고 검찰과 경찰의 판단이 엇갈려 논란이다. 하루에도 수백 건씩 발생하는 '흔한' 교통사고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두 수사기관의 의견 차이에 새삼스레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가해자가 현직 '부장검사'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방검찰청 소속 A부장검사는 지난해 7월 8일 오후 6시 40분쯤 서울 여의도에서 잠실 방향 올림픽대로에서 차량 충돌사고를 냈다. 경찰 조사 결과 A부장검사의 차량은 4차로에서 5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차로 사이에 있는 백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렀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5차로를 주행 중이던 피해자의 차량과 부딪힌 것이다.

이 교통사고를 두고 검찰과 경찰의 판단이 엇갈렸다. 처음 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같은 해 8월 A부장검사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9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안전지대 침범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교특법) 12대 중과실 중 '지시 위반'에 해당한다. 이 경우 종합보험 처리를 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논란을 들여다보면 사건을 처리하는 사법절차 과정에 '부장검사'라는 가해자의 신분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초범의 경우 벌금 50만~100만원 수준에서 판결나는 이같은 교통사고는 사실 흔하디 흔한 사건이다. 수사기관은 특기할만한 점이 없다면 가해자가 '항변'을 해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의 주장을 모두 받아줬을 때 수사 인력이 낭비되는 점도 있어서, 경찰은 물론 검찰도 꼭 들어줘야만 하는 의무 또한 없다. 그래서 억울한 가해자는 답답함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A부장검사는 대부분의 일반인보다는 속이 좀 후련했을 것이다. '피해자 블랙박스 등 증거로 명백하다'며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서면조사 요청이,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자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직접 도로교통공단에 사고 분석을 의뢰해 결과를 받았다. 가해자가 '부장검사'가 아닌 '일반인'이었어도 검찰은 과연 이같은 요청을 받아들였을까.


가해자의 적극적인 항변을 받아들여 확보한 사고 분석 결과에 따른 검찰 판단도 미심쩍다. 안전지대 침범 사고에 대해 교특법상 중과실에 해당하려면 관건은 '안전지대를 침범한 행위가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인가'이다. A부장검사의 경우 사고 당시 차체 일부는 안전지대에 걸쳐있었고, 충돌 지점은 안전지대 바깥이었다. 이를 놓고 검찰은 '충돌 지점'이 바깥이므로 사고 원인을 안전지대 침범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충돌 지점이 안전지대 바깥이라서 사고 발생 원인과 무관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과거 판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5월 8일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려던 차량이 안전지대를 가로질러 차선을 바꾸다 기존 차로를 주행하던 차량과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2018년 4월 30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도로에서도 안전지대를 침범해 우회전하다가 기존 차선에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던 차량과 부딪힌 사고가 발생했다.

이같은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대부분 재판부는 안전지대 구간으로 진로변경을 하던 피고인의 잘못을 꼬집으며 교특법상 중과실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더구나 안전지대를 벗어난 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했어도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판단되면 중과실에 해당, 유죄로 판단한 경우(광주지법 2016고단5953)도 있었다. 재판부는 "비록 충격지점이 안전지대를 벗어난 지점이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안전지대를 침범한 행위가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라면 피고인은 해당 죄책을 진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2017년 대법원이 무죄를 낸 판례를 제시하면서 안전지대의 취지는 안전지대 내에 보행자나 차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바깥의 도로에서 운행 중인 피해자 차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취지에 따라서 충돌 지점이 안전지대 바깥인 A부장검사 역시 불기소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7년 대법원 판결 이후 안전지대 침범 교통사고를 낸 '일반인' 피고인들의 유죄 판결문은 수두룩하다. 그동안 검찰은 이들을 기소해왔고, 법원은 유죄라고 판단해왔다는 말이다. 검찰은 이들 일반인의 사건을 맡을 때도 '대법원의 취지'를 고민했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들은 A부장검사 사건에 대해 전형적인 안전지대 침범 교통사고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검찰이 제시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해당 사건과 이번 사건을 똑같이 볼 수 없다"며 "검찰이 제시한 판결문은 극소수 사례이고 일반적인 판례는 이와 다르다"고 말했다.

그동안 유사 사건에 관련된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기소해온 검찰이 '부장검사'에게는 몸소 대법원 판례까지 제시하면서 불기소 처분하는 모습을 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진짜 권력은 기소권이 아니라 불기소권에 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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