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취임식을 마친뒤 국회 본청밖으로 나와 영부인 김정숙 여사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을 돌이켜보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직후 첫 명령으로 선언되면서 현 정부의 노동정책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아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정규직화 정책은 꾸준히 이뤄졌다.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기간제 노동자만 다뤘던 이전 보수정부와 달리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됐다.
덕분에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의 고용안전망을 위한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실제 기간제 및 파견·용역 노동자를 합친 인원은 약 41만 6천명, 이 가운데 공공기관의 외주화 규모만 10만여명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지난해 연말 기준 20만 3천여명이 정규직 전환 대상에 올랐고, 약 19만 8천명은 전환 작업을 마쳐 목표치의 97.4%가 달성됐다. 이명박 정부(6만 4천여명)와 박근혜 정부(8만 1천여명) 시절의 전환 규모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수준이다.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박은정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정규직과 격차가 증가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규모와 근로조건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이 시장에만 맡겨두면 개선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자의 직접 고용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직무급·자회사行 논란에 '인국공' 사태까지…"차별 개선 조치 부족 아쉬워"
이처럼 전례 없는 대규모 정규직 전환 정책은 곧 논란에 휩싸였다. 우선 이들을 '어떻게' 전환할 것이냐의 문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정부는 기존 연공급(호봉제) 대신 업무의 성격 등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지급하는 직무급 체계를 도입하려 수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자칫 낮은 임금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고, 직무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노동계의 불신에 부딪혔다.
특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많았던 주요 공기업들이 직접 고용 대신 자회사 방식을 선택하면서 회사 간판만 바꾼 외주화를 반복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갈등을 조율해야 할 정부는 한 발 물러섰다. 국정과제였던 직무급제 도입은 노동계 반발을 이기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2018년 내놓은 직무급 기반의 표준임금제는 최저임금 수준에 임금을 고착화시킨다는 반발에 자회사 60여곳에 도입되는 데 그쳤다.
또 정규직화 논의를 각 기관의 사회적 대화에 맡긴 것도 발목을 잡았다. 정부가 강행하지 않고 노사는 물론 전문가까지 참여해 각 기업 형편에 맞는 정규직화를 추진하자는 의도는 좋았지만, 자회사 전환 여부를 단속할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을 사실상 부추겼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돈문 대표는 "자회사 방식도 결국 간접 고용인데 섣불리 정규직 전환의 한 유형으로 설정한 것부터 문제"라며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직접 고용한다는 원칙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도 결국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규직화 정책을 흔들었던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인국공' 논란이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불공정 담론을 정부가 제 때 설득해내지 못한 것은 정권 교체로 이어진 '나비효과'로 작용했다.
비정규직 정책에 대한 불만 여론이 커지자 애초 민간부문에도 정규직화를 이끌겠다던 목표도 실패로 돌아갔다. 현 정부 집권 첫 해인 2017년 전체 임금노동자 중 32.9%를 차지했던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은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면서 지난해 38.4%로 오히려 더 늘었다.
박 교수는 "정부 초기에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겠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단지 고용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규직 전환이나 직접고용의 방법, 공공부문 내에서의 공감대 형성, 여론 대응 방안, 기존 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배려, 민간부문으로의 확산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입안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이 선행돼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차별시정제도에 대한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 등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완화 내지 해소된 상태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추진됐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쉽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공약 없는 尹…직무급제 도입 밀어붙이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하지만 새 정부를 이끌 윤석열 당선인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과의 격차 해소에 반대하는 입장까지 보인 바 있다.
340페이지에 달하는 윤 당선인의 20대 대선 공약집에서 노동 공약은 단 4페이지 뿐,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는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공정사회' 부문에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공약 등이 있기는 하지만, 플랫폼 종사자·1인 자영업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윤 당선인의 입장은 대선 과정의 언행에서 더 잘 드러났다. 윤 당선인은 경북 안동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는 "임금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큰 의미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정책질의에서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득보다 실이 크고, 취업준비 청년들에게도 고용박탈감을 안겨 준 최악의 정책"이라며 "합리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차별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합리적 근로조건 개선'의 연장선에서 주목받는 지점이 윤 당선인의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 즉 직무급제 도입 공약이다. 윤 당선인은 각 사업장의 직무·직군·직급별로 쪼개어 직무급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그동안 직무급제를 도입할 때마다 반복됐던 노동계의 반대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로를 열어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임금 구조 논의에서 노조를 '패스'하고, 직무급 도입 여부를 놓고 노동자들 간에 의견을 모으기 어렵게 만드는 '노조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직무급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할 수 있고, 숙련도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라면서도 "문재인 정부에서 직무급제를 추진하려다 현재의 임금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지적에 폐기됐던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직무급을 '세대 상생'을 위해 도입한다면 최초 임금을 전체 평균 중위 임금 이상 수준으로 설정해야 하는데, 쉬운 선택이 아니다"라며 "연공급(호봉제)은 나중에 임금이 오를 것을 전제로 최초 임금을 매우 낮게 잡는데, 직무급에서도 낮게 잡으면 임금을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여러 사업장에 고용될 수 있는 간접 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장 단위를 넘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야 임금 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고용 형태별, 사업장별 임금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없이 직무급제 도입만 추진하면 격차를 고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직무·직군·직급으로 나누어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서도 "이미 직종 등에 따른 임극 격차가 큰데, 자칫 현재 뿌리 내린 차별 구조를 정당화하고 고착화할 수도 있다"며 "오히려 초기업별 교섭, 임금 결정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임금 차별 문제를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