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경기에서 최민정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편집자주] 2022 베이징 올림픽 취재 뒤에 담긴 B급 에피소드, 노컷뉴스 '베이징 레터'로 확인하세요. 여러분 최민정(성남시청)의 올림픽 2연패 장면을 보셨나요?
아마 보신 분들은 터져 나오는 함성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퍼컷 세리머니도 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나온 명장면이었죠.
쇼트트랙 여자 1500m. 평창에 이어 베이징까지, 2016년 세계 신기록에 이어 이번 대회 준결승 올림픽 신기록까지 최민정은 이 구역 최강자는 자신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생생하게 각인시켰습니다.
혹시 준준결승부터 보신 분 있으세요? 아마 보셨다면 좀 의아한 장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레터는 '그날 경기장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입니다.
16일 오후 8시 30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쇼트트랙 여자 1500m 준준결승이 시작됐습니다. 이날 열린 쇼트트랙 종목의 첫 경기였죠.
최민정은 1조 1번 레인에서 헝가리, 중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선수들과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1500m인 만큼 초반부터 스피드를 내지 않았죠. 6위에서 천천히, 최민정은 기회를 노렸습니다.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경기에서 최민정이 역주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경기장엔 두 개의 큰 전광판이 있습니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잔여 바퀴 수와 기록 등이 표시됩니다. 취재진과 관중은 그것을 보고 잔여 바퀴와 기록 등을 확인하죠.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준준결승 1조 경기가 진행되는 어느 순간부터 잔여 바퀴가 나오지 않고 있었죠. 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취재진이 살짝 당황했습니다.
최민정은 순간 스퍼트를 내며 치고 나왔고 단숨에 1위로 올라섰습니다. 잠시 2위, 3위로 내려왔지만 다시 1위로 올라선 뒤 쭉쭉 거리를 벌렸습니다. 그러나 전광판은 여전히 잔여 바퀴가 나오고 있지 않았죠.
마지막 바퀴를 앞두면 경기장에선 종을 칩니다. 진짜 종 말이죠. '학교 종이 땡땡땡' 할 때 치는 그 종. 그걸로 선수들에게 마지막 바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캐피털 실내경기장에 있는 종. 이 종으로 마지막 바퀴를 알려준다. 노컷뉴스저도 종이 울리고서야 마지막 바퀴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미 큰 격차로 앞섰기 때문에 최민정은 여유 있게 1위로 골인했습니다.
하지만 최민정도 뭔가 이상하다는 결승선 통과 후 두 손을 올려 보이며 무언가를 항의하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분명 뭔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기록이 나와야 할 전광판에는 비디오 판독 때 나오는 '성적 분석 중'이라는 문구만 깜빡였습니다.
최민정도 경기장을 나서지 못하고 전광판을 바라봤습니다. 1조를 뛴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나 전광판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최민정이 속한 조의 경기 결과가 나오지 않고 전광판에는 '경기 분석 중'이라는 표시만 나오고 있다. 노컷뉴스2조 김아랑(고양시청)과 선수들이 들어왔을 때도 전광판에는 1조 기록이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 관련 기록과 자료를 제공하는 '마이 인포' 웹사이트에도 기록이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왜냐고요? 중국에 유리한 편파 판정 논란이 있었잖아요. 혹시나 최민정이 실격할 사유가 있었나?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최민정은 접촉 한 번 없는 완벽한 레이스를 펼쳤으니까요.
기록이 입력되지 않았나? 그래서 재경기를 해야 하나? 운영 미숙으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정말 기삿감이었죠. 최민정이 피해를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1500m는 개인 경기 중 최장거리라 체력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2조 경기가 시작됐고 김아랑도 가뿐하게 1위로 골인했습니다. 2조 기록은 곧바로 전광판에 표시됐습니다. 마이 인포에도 기록이 올라왔죠.
재경기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1위로 통과했는데, 체력을 썼는데, 재경기는 치명적이었기에 그런 불상사가 발생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건 진짜 큰 경기 운영 실수죠.
5조 이유빈(연세대)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야 최민정을 포함한 1조 선수들의 기록이 마이 인포에 올라왔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올림픽 취재정보 사이트 '마이 인포'에 올라온 최민정의 준준결승 기록. 마이 인포 캡처기록으로 보면 한 바퀴를 덜 돈 정도의 기록은 아니었습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확인해본 결과 "경기장 전광판에 문제가 있었다"고 알려줬습니다. 취재진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이렇게 최민정은 1위로 준결승에 나섰고 준결승에서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이후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죠.
당시 상황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경기 후 최민정이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 장소로 걸어왔습니다. 취재진은 준준결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최민정이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경기 시작하고 나서 계속 랩타임을 도는데도 11바퀴에 멈춰있더라고요. 그래서 바퀴 수가 가늠이 안 되니까 기록판을 봤어요. 그런데 기록판도 안 나왔어요." 최민정은 전광판뿐만 아니라 경기 중 선수들이 보는 기록판에도 잔여 바퀴 수와 랩 타임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결승선 쪽에 표시가 되는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최민정이 누굽니까. 1500m 최강자죠. 최민정은 이 상황을 이렇게 돌파했습니다.
"코치 선생님께 남은 바퀴 수를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듣고 달렸어요. 바퀴 수가 안 보이면서 페이스 조절하는 측면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어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해프닝은 끝났습니다.
자신의 세계 기록과 올림픽 기록에 대해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겸손함을 보인 최민정.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1500m에서 자신이 세운 기록을 깨고 3연패를 달성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