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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올림픽 피겨 은메달리스트의 '울화통'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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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금메달을 품은 안나 셰르바코바. 연합뉴스베이징 금메달을 품은 안나 셰르바코바. 연합뉴스베이징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는 "공허하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다른 금메달리스트들과 확연히 달랐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을 들고 환호하는 기쁨도 없었고, 코치나 다른 선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개를 낮추고 바닥을 응시할 뿐이었다.
 
은메달리스트의 행동은 더 괴기하다. 누군가 다가가 껴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울화통이 터졌다. "나는 다시는 안 할거야, 진짜 증오한다구, 누구나 금메달을 따는데 나만 아니야"라고 소리쳤다. 한 소녀의 실망이라고 보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피겨 여자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셰르바코바와 트루소바 얘기다. 트루소바는 특히 저급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다. 금메달의 세르바코바도 지금까지 지켜 본 가장 외로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닌가 생각됐다.
 
4년마다 열리는 스포츠제전, 올림픽에서 큰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산더미 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압박, 승리의 영광, 경쟁에서 좌절, 모든 선수는 올림픽 그날에 자신의 시계를 맞춰놓고 정신력과 생체리듬을 조정한다. 최고의 기량을 겨루기 위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년 간의 단련과 연단, 그리고 수도자와 같은 고행을 불사하는 것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어떤 운명의 신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연합뉴스연합뉴스'연아 퀸'으로 불리며 '2010 벤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는 더없이 아름다운 소감을 남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게 끝났다는 게 홀가분합니다. 대부분 힘든 기억이 많고, 기뻤던 순간은 잠시 그때 뿐인데, 그래도 항상 그런 힘든 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모든 역량과 기량을 경기장에 마음껏 쏟아 부은 선수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겸허하고 위대한 울림이다.
 
올림픽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 증진에 그 정신을 두고 있다. 상호이해와 우의증진 정신으로 젊은이를 교육하여 보다 발전되고 평화로운 세계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아쉽게도 베이징 올림픽은 편파 시비와 반도핑, 선을 넘어선 지나친 국가주의 논란 등을 남긴 채 폐막됐다. 
 
특히 러시아 피겨 선수단과 코치가 보여준 '성적 지상주의'는 이번 올림픽에서 최악의 순간을 만들고 말았다. 목도한 현실은 실망스럽고 공허한 것이었다. 더욱이 러시아 젊은 선수들의 '멘탈 붕괴'를 지켜보는 일은 착잡했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 열린 플라워세리머니에서 메달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은메달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금메달 안나 셰르바코바, 동메달 사카모토 가오리. 연합뉴스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 열린 플라워세리머니에서 메달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은메달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금메달 안나 셰르바코바, 동메달 사카모토 가오리. 연합뉴스트루소바는 테크닉에서 탁월했다. 동계올림픽 최고 인기종목인 여자피겨에서 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기술 점수에 반영되는 기량만은 확실히 남달랐다. 남자선수도 쉽지 않은 쿼드러플 점프(4바퀴 회전)를 프리스타일 경기에서 무려 5번이나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놀라운 그 기량은 주목을 받았다. 테크닉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그에게 '러시안 로켓'이라거나 심지어는 'T-1000(영화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액체금속 로봇맨)이란 별칭까지 따라붙었다. 자신은 분명 금메달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후 보인 태도는 수준 낮은 스포츠맨십 이었다. 투정과 짜증을 부리고 경기장에서 끌려나가는 장면에서 올림픽 참가 선수의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돌발적 행동은 4년 넘게 뼈를 깎는 인고의 노력을 기울이고도 메달을 얻지 못한 다른 동료 선수들에게 폭력으로 비춰질 만큼의 반항이었다. 비록 국적이 다르고 경쟁 상대라 하지만, 동료를 배려해야 할 올림픽 정신에는 반하는 행위였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카밀라 발리예바. 박종민 기자러시아올림픽위원회 카밀라 발리예바. 박종민 기자여자 피겨에서 금메달 0순위 후보로 주목받던 카밀라 발리예바 선수의 도핑 논란으로 러시아팀은 전 세계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올림픽이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해 국제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러시아 팀은 선수단 관리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수차례 엉덩방아를 찧고 돌아 온 15살의 '도핑스캔들' 주인공에게 "왜 끝까지 안 싸웠지. 그 이유를 대봐!"라고 다그치는 코치의 비인간적 가르침이 모든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올림픽은 국가주의와 선수의 자아실현이 동시에 투영되고 충돌하는 현장이다. 권위주의 국가가 개최하는 올림픽에서 지도자를 부각하고 애국주의를 과시하는 행위가 촌스럽게 보이지만(우리도 한 때 그랬다), 우리 일처럼 기뻐하는 '국뽕'과 같은 애국심을 타오르게 하는 것이 올림픽의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극한의 훈련을 극복하고 영광스런 자리에 오른 선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위로와 힘을 주곤 한다. 자아실현은 우리 선수든 누구든 선한 영향력을 준다. 
 
트루소바의 울화통이 터진 사건을 보고 나는 이전 올림픽 메달리스들의 수상 영상을 뒤적여 봤다. 김연아의 벤쿠버올림픽 우승 소감을 찾아 본 다음 위로를 얻었다. "기뻤던 순간은 그때 뿐이지만….항상 그런 힘든 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연아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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