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보이' 이상호가 8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예선를 마친 뒤 기록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편집자주] 2022 베이징 올림픽 취재 뒤에 담긴 B급 에피소드, 노컷뉴스 '베이징 레터'로 확인하세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일종의 기회 비용도 컸습니다. 바로 '배추 보이' 이상호(28·하이원리조트)와 만남입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베이징에서 장자커우로 이상호를 만나러 가려고 했다가 무산된 에피소드입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중국 3개의 도시에서 종목이 나뉘어 열립니다. 해당 도시는 코로나19 여파로 폐쇄 루프 방식으로 통제됩니다. 올림픽과 관련된 경기장, 시설은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죠. 폐쇄 루프는 다시 버블로 통제됩니다. 마치 비눗방울을 감싼 것처럼 외부와 분리됩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컬링 등 빙상 종목은 베이징에서 열립니다. 우리 선수단의 주력 부대가 베이징 존에 있습니다. 루지, 스켈레톤 등 썰매 종목은 옌칭에서 열리고 스키 종목 등은 장자커우에서 펼쳐집니다. 이 세 도시가 폐쇄 루프죠.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대회 조직위원회는 취재진이 어느 폐쇄 루프에 머물지 조사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루프와 루프 간의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방침이었죠. 만약 루프 간 이동을 하려면 해당 루프에 숙소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너무 까다로웠을까요? 조직위는 해당 루프에 숙소가 없더라도 이동을 허락했습니다. 단 버블 방식의 이동은 유지했죠. 루프 간 이동은 비행기 또는 고속철도, 조직위가 제공하는 버스로 합니다. 태극 전사의 주력 부대가 빙상에 있는 만큼 저는 베이징존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배추보이' 이상호가 8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 겐팅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예선에서 질주하고 있다. 뒤는 독일의 슈테판 바우마이스터. 연합뉴스그런데 배추 보이 이상호, 인간적으로 너무 잘합니다. 스노보드 알파인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가 됐습니다. 평행 대회전과 평행 회전 경기 성적을 합산한 남자부 세계 종합 순위 1위입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스노보드는 물론 스키 사상 최초의 메달 역사를 썼던 이상호. 올 시즌 쾌조의 컨디션으로 베이징에서는 금메달을 노렸습니다.
경기는 8일 오전 11시 40분. 예선에서 16명을 추린 뒤 16강부터는 두 명씩 토너먼트 맞대결을 펼칩니다. 8강 토너먼트는 오후 4시 15분에 시작하는 일정이었죠.
문제는 이날 오전 10시 15분 한국 남자 피겨 싱글 간판 차준환(22·고려대)과 이시형(23·고려대)이 쇼트 프로그램에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오후 7시 30분 스피드스케이팅 김민석(22·성남시청)과 박성현(22·한체대)의 남자 1500m 예선전도 예정돼 있었죠. 메달이 걸린 결승까지 열리는 일정이었습니다.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장자커우와 베이징간 거리는 200km. 장자커우로 가면 현실적으로 베이징에서 열리는 경기는 볼 수 없습니다. 취재진이 많으면 나눌 수 있지만 혼자이기에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이상호로 결정했습니다. 루프를 넘어보는 취재도 필요했고 이상호의 활약도 궁금했습니다. 레터 제목도 떠올랐습니다.
'배추 보이 이상호, 지금 장자커우로 만나러 갑니다'너무나 손쉬웠던 고속열차 예약. 노컷뉴스첫 관문은 고속 열차 예매였습니다. 조직위에서 올림픽 관계자들에게 베이징에서 장자커우로 가는 고속 열차를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열차 예매는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조직위에서 나눠준 자료대로 입력하는 예약이 완료됐습니다.
열차는 8일 오전 9시 10분. 이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베이징 시간이 한국보다 1시간 느린 것도 있지만 버블 방식으로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컸습니다.
즉 숙소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메인프레스센터(MPC)로 간 뒤 다시 셔틀 버스를 타고 고속 열차 역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일찍 움직일 필요가 있었죠.
그러나 며칠 간에 걸쳐 신중하게 선택한 제 결정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습니다. 중국이 이럴 줄 몰랐거든요. 아니 이럴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 런쯔웨이가 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오성홍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7일 오후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은 패닉이었습니다. 상식을 뛰어넘은 편파 판정에 모두 다 망연자실했죠. 정도라는 게 있는데 여긴 아닌가 봅니다.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태극전사들이었습니다. 편파 판정의 피해 당사자인 황대헌(강원도청)과 이준서(한체대)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두 선수가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도 이해합니다.
결국 한국 선수단은 8일 오전 쇼트트랙 판정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MPC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사안이 워낙 중대한 까닭에 스노보드 경기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 회견을 취재해야 했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됐지만 이상호는 아쉽게 메달이 무산됐습니다. 스노보드 알파인 남자 평행 대회전 8강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빅토르 와일드에게 0.01초 차로 아깝게 졌습니다. 예선전 1-2차 시기 합계 1분20초54로 32명 선수 중 1위로 16강에 진출할 만큼 압도적인 실력이었는데 마지막 0.01초의 운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배추 보이의 도전 자체가 대한민국 스노보드의 역사라는 것 알죠? 이 편지를 고생한 이상호 선수에게 보냅니다. 다음에 꼭 만나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