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메인미디어센터 앞 올림픽타워가 조명을 밝히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지난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개막식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거인의 발걸음을 형상화한 현란하고 거대한 그래픽은 세계를 향한 '중국의 진격'을 상징하듯 매우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퍼포먼스였다.
마치 1936년 나치 치하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이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됐던 것처럼,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굴기'를 선언한 것 같았다. 지금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올림픽 역시 이런 취지의 개막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상과는 달리 다소 소박한(?) 규모와 내용으로 치러졌다.
각국의 이름이 새겨진 눈꽃들이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눈꽃을 만들어내고, 그 한 가운데 작은 성화를 밝히는 개회식의 마지막 퍼포먼스는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존과 평화의 올림픽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자 이런 기대는 사라졌다.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참가자가 중국 국기 게양식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겸손했던 마지막 성화와는 달리 개회식에 등장한 56명의 소수민족 가운데 한복을 입은 여성출연자가 있었다. 해석에 따라서는 한국이 중국에 종속된 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연출이었다. 국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뜨거운 논란이 일었고, 박병석 국회의장은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복 문제를 공식 거론하기도 했다.
쇼트트랙에서는 노골적인 중국 편들기가 자행됐다.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은 마치 중국 대표선수들에게 금메달을 몰아주기 위한 전진기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첫날 치러진 혼성계주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중국 팀이 금메달을 가져갈 때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대헌이 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 중국 런쯔웨이와 리원룽의 견제를 받으며 역주하고 있다.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남자 쇼트트랙 천 미터 경기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한국 대표 팀의 황대헌과 이준서는 납득할 수 없는 판정으로 결승진출이 좌절됐다. 누가 봐도 편파적인 판정이 분명했다. 결승에서도 헝가리 선수가 1위로 들어왔지만 반칙을 이유로 실격되면서, 결국 금메달과 은메달은 중국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쇼트트랙은 111미터의 좁은 활주 링크에서 순위를 다투는 만큼 선수들의 몸싸움이 치열하고, 반칙판정이 속출해 심판의 권한이 다른 종목에 비해 훨씬 강력한 종목이다. 심판의 재량에 따라 메달이 정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처럼 심한 사례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한국 선수단은 쇼트트랙 판정 문제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기로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체조의 양태영 선수 사건 이후 18년만이다.
8일 중국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메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쇼트트랙 편파판정에 대한 선수단장 긴급 기자회견에서 윤홍근 선수단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인탁 선수부단장, 윤 단장, 최용구 쇼트트랙 대표팀 지원단장, 이소희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겸 비디오 전력분석 담당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올림픽 개최국에서 메달을 많이 따내 국위를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은 어쩌면 당연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편법으로 메달을 따내 중국을 알리는 것이 '중국 굴기'의 진면목이라면 중국이 원하는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최근의 역사공정과 한복과 김치 원조논란, 한국 연예인들의 일방적인 출연 정지등 다방면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오만하고 무리한 중국의 태도에 대해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대응은 오히려 부작용을 더 키울 가능성만 높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댓글과 혐오만을 부추기는 유튜브 방송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분하고 주도면밀하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계속 이어질 쇼트트랙 경기에서도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체육행정가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기회이기도 하다.
더 이상 우리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도둑맞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