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유튜브 채널인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제기한 이른바 '7시간 통화 녹음'에 대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이 대부분을 기각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김태업 수석부장판사)는 21일 김씨가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낸 방영금지·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만 인용하면서 대부분 내용의 방영을 허용했다.
재판부는 방송으로 김씨의 권리가 일부 침해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얻는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방영이 금지된 내용은 △공적 영역과 무관한 김씨 가족들의 사생활에만 관련된 발언 △서울의 소리 촬영기사 이명수 씨가 녹음했지만 이씨가 포함되지 않은 비공개 타인 간의 대화 등 두 가지 사안뿐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방송할 수 있게 되면서 재판부가 서울의소리 측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 윤창원 기자
재판부는 "김씨가 제20대 대통령선거의 예비후보자인 윤석열의 배우자로서 언론을 통해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공적 인물이고 대통령의 배우자가 갖게 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그의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관한 견해와 언론관·권력관 등은 유권자들의 광범위한 공적 관심사로서 공론의 필요성이 있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 20일 열린 심문기일에서 김씨 측 대리인은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녹음파일이기에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씨가 열린공감TV 측과 사전 모의해 김씨에게 접근한 뒤 답변을 유도해 냈고, 어느 매체를 통해 공개할지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녹음파일의 내용 자체는 채권자의 발언을 그대로 녹음한 것으로서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기술적으로 확인됐다"면서 "이씨가 김씨에게 기자 신분을 밝힌 상태에서 그 대화 내용에 관한 방송이나 공개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열린공감TV 관계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앞서 김씨 측은 서울의소리를 비롯해 녹음 파일 공개를 예고한 MBC,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녹취록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며 가처분을 신청했다. 문제가 된 녹음 파일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가 수개월 동안 김씨와 통화한 내용으로 7시간45분 분량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통화 내용 공개를 둘러싼 법원의 결정은 앞서 두 차례 있었다. 서울서부지법은 이달 14일 MBC를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김씨 관련 수사나 정치적 견해와 무관한 일상 대화, 언론에 대한 불만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 공개를 허용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일 열린공감TV를 상대로 한 가처분 사건에서 이보다 공개 범위를 넓혀 사생활 관련 부분만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공개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김건희 70분' 녹취, 결정적 한방 없었다지만…김씨 특유의 '무속 코드' 기록 남겨
연합뉴스한편 지난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통화 내용을 보도한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오는 23일로 예고했던 후속 보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결정을 놓고 앞선 보도가 '결정적 한방' 없이 무력한 보도에 그쳤다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방송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김씨에 대한 긍정적 의견이 주를 이루기도 했고, 그의 팬클럽인 '건사랑'의 회원수가 4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악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례로 '미투'를 폄훼하는 듯한 발언이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옹호하는 김씨의 육성이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일부 비판도 있었다.
향후 두고두고 논란의 씨앗이 될 사실들도 새롭게 드러났다. 김씨가 통화 도중 "나는 영적인 사람"이라며, 그간 소문으로 떠돌던 '무속 취향'이 육성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앞서 윤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손바닥 왕(王)자 논란, 역술인 '천공스승'과 인연 등으로 거센 검증 공세에 시달린 바 있다.
치명적인 '비선 실세' 의혹으로 이어질 불씨 또한 남아 있다. 한 무속인이 윤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무속코드' 의혹은 짙어졌다. 일명 '건진법사'로 알려진 무속인 전모(61)씨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선대위 하부 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건진법사' 전씨로 지목된 남성의 모습(왼쪽)과 그가 윤석열 대선후보를 네트워크본부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전씨가 네트워크본부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윤 후보의 일정과 메시지 인사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까지 번지자 국민의 힘은 윤 후보와 정치 입문 무렵부터 함께한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또한 CBS노컷뉴스 보도로 윤캠프에 소속된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이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에서 '건진법사'로 알려진 무속인 전씨가 소속된 불교 종파의 사회복지법인에 1억원을 출연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관여 의구심은 더욱 증폭됐다. 발언과 무속인 논란이 맞물리면서 윤 후보 지지율에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열린공감TV·서울의소리 '녹취록 공개' 예정…논란 이어질듯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 씨가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낸 통화녹취록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이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이날 지법에서 심문을 마친 김건희 씨 측 홍종기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법원의 판결로 김씨의 나머지 통화 녹음 파일이 여러 경로를 통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열린공감TV와 서울의소리 등은 오는 23일 유튜브를 통해 녹취록을 공개할 계획이다.
때문에 '김건희 7시간 녹취록'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이번 논란과는 별개로 녹취록 공방전이 향후 대선판 뿐만 아니라 언론의 취재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취재원과의 사적인 성격의 통화를 공개하는 방식에 대한 언론 윤리상의 난점, 언론과 취재원 간의 불신의 문제 등이 그렇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번 논란으로 열린공감TV와 서울의소리 매체의 주목도가 올라가는 등 경제적 이익도 얻었을테다.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의혹의 검증과 실재와 무관하게 자극적인 소재로 경쟁하는 풍토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