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연합뉴스경기 성남시 대장동 특혜 의혹 수사와 관련 '협력'을 내세운 검찰과 경찰이 물밑에선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의 '스모킹건'이 될 수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옛 휴대전화 확보를 두고 검경의 기싸움은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양 기관은 동등한 협력 관계로 거듭났지만, 검찰의 '영장 청구권'에 경찰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번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월 이미 사건 첩보를 받은 경찰 입장에선 수사 골든 타임을 놓치고 주도권을 뺏긴 것도 모자라, 영장 신청마저 줄줄이 가로 막히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일각에선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신병 확보에 실패한 검찰의 수사 역량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부실 수사' 논란을 빚은 양 기관이 협력에도 엇박자를 내는 사이, 핵심 대상자들은 수사망을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남부경찰청 성남 대장동 전담수사팀은 지난 13일 유 전 본부장의 지인인 A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A씨는 유 전 본부장의 과거 휴대전화를 보유한 인물로 전해졌다.
영장은 하루 뒤인 14일 저녁 수원지검이 법원에 청구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인 15일 오전 A씨 자택 압수수색은 경찰이 아닌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전담수사팀이 착수했다. 경찰이 영장 발부를 기다리는 사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돼 먼저 집행에 나선 셈이다. 결국 유 전 본부장의 과거 휴대전화는 검찰 손으로 들어갔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에선 '검찰이 수사 아이템을 가로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거지 등 탐문을 통해 핵심 증거를 확보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지만, 영장 신청 과정에서 검찰이 선수를 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검찰은 "사전에 경기남부경찰청과 협의를 통해 협력 수사 방안을 조율했다"며 "검찰은 지난 11일 유 전 본부장 지인의 주소지를 탐문 확인, 다음날(12일) 오전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휴대폰 소재를 파악해 신속히 압수수색 절차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의 반박에도 유 전 본부장의 과거 휴대전화는 사건을 규명할 '스모킹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심 섞인 시각은 좀처럼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유 전 본부장이 압수수색 직전 오피스텔 창 밖으로 던진 휴대전화의 경우 검찰은 찾지 못했지만, 경찰은 확보에 성공했다. 여기에 더해 과거 휴대전화까지 경찰에 내줄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자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 4월 FIU 첩보를 입수하고도 수사 '골든 타임'을 놓치고 주도권을 빼앗긴 경찰 입장에선 반등의 계기로 삼은 휴대전화 확보에 절반의 성공만 거둔 셈이 됐다. 게다가 현재 확보한 휴대전화는 유 전 본부장이 최근에 교체한 것으로 증거가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이며, 파손 상태도 심각해 복구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검찰이 확보한 과거 휴대전화는 대장동 사업 초기인 2015년에 사용한 휴대전화로 전해졌다. 해당 휴대전화와 유 전 본부장이 최근에 바꾼 휴대전화 사이 '제3의 휴대전화'가 있을 가능성도 엿보여 향후 또 다른 기싸움이 펼쳐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연합뉴스검경수사권 조정에도 檢 '영장 청구권'에 警 '속수무책'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경이 동등한 협력 관계로 거듭나면서, 경찰의 경우 이번 사건에서 달라진 위상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검경은 수사 협력 '핫라인'을 구축하는 한편, 실무진 대표간 연락도 주고 받았다.
하지만 물밑에서 경찰은 '영장 청구권'을 가진 검찰에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은 지난 6일 무소속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 사건 수사를 위해 검찰에 곽 부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영장은 청구되지 않았고 오히려 '송치 요구'를 받았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과 동일한 사건이라는 취지다.
김만배씨 등 화천대유 관계자들에 대한 계좌 압수수색 영장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검찰에 영장을 신청했지만 보완 수사 요청을 받았다. 이후 보완을 통해 최근 영장을 집행했지만 수사가 지체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이 있느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정 회계사 녹취 확보로 초기부터 수사 주도권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영장 청구까지 키를 잡고 있는 검찰의 경우 지난 14일 김만배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 역량을 지적 받는 상황이다. 김씨에 대한 계좌 추적 등 자금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게 패착으로 지목된다. 결국 검경의 수사 역량과 협력 관계 모두 부실하다는 비판이 불가피한 양상이다.
이 사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연루된 핵심 관계자들의 수사망 회피는 속도를 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70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수익이 어디로 흘러 갔는지도 명확히 규명하는 것도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상당액이 정치권 뇌물로 흘렀다는 의혹과 함께 강남 빌딩, 타운하우스 구입 등과 같은 '돈 세탁'이 현재도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