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비위를 저지른 경찰관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경찰 징계위원회에 전직 경찰 다수가 '민간 위원'으로 위촉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부터 시행된 경찰공무원 징계령 개정안은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는 '비경찰' 공무원의 범위를 늘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현직 경찰이 위원회 과반을 차지했다. '제 식구 감싸기' 행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경찰 징계위 절반 이상이 '전·현직 경찰'29일 CBS노컷뉴스가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서울청)에 징계위원회(징계위) 민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직 경찰은 각각 3명, 5명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각종 비위를 저질러 징계위에 넘겨진 경찰의 징계양형을 결정하는 데 객관성·공정성 등을 높인다는 취지로 민간 위원을 두고 있다. 전직 경찰도 민간 위원으로 참여한다.
2018년부터 이달 18일까지 최근 3년 동안 경찰청과 서울청에서 열린 징계위 29건 가운데 23건(79.31%)에 전직 경찰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징계위원은 보통 5~7명 수준으로 현직 경찰 2~3명이 내부 위원으로 참여해왔다. 전직 경찰 1명이 참여해도 위원 과반이 전·현직 경찰인 구조다.
같은 기간 경찰청에서 열린 징계위 14건 중 11건에 전직 경찰이 민간 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전·현직 경찰이 징계위원의 과반을 차지한 경우는 10건이었다. 위원 5명 중 3명, 또는 7명 중 4명 이상이 전·현직 경찰로 드러났다.
서울청에서 열린 징계위 15건 가운데 전직 경찰이 위원으로 참여한 징계위는 12건으로, 해당 징계위들에서 전·현직 경찰의 비중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현재 경찰청 징계위 내부 위원은 19명으로 △치안감 10명 △경무관 8명 △고위 공무원 1명 등이다. 외부 위원 역시 19명으로 그중 전직 경찰은 3명(총경)이다. 이외 △변호사 12명 △대학교수 4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청 내부 위원은 21명으로 △총경 6명 △경정 14명 △사무관 1명 등이다. 외부 위원 30명 가운데 전직 경찰은 5명(경감 3명, 경정 2명)이다. 변호사 21명, 대학교수 4명도 위원으로 있다. 징계위원들은 징계위에 참여할 때마다 수당 25만원을 받는다.
◇ 경찰징계 개정안에서도 화두였던 警 징계위 '객관성' 경찰 징계위에 '비경찰' 공무원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경찰 조직도 인지하고 있다. 지난 6월 16일자로 시행된 '경찰 공무원 징계령' 개정안은 민간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무원의 범위를 보다 넓혔다.
보통징계위의 경우 개정 이전에는 '경찰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근속하고 퇴직한 사람을 민간 위원으로 위촉하도록 했지만, 개정 후에는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한 사람으로 범위를 넓혔다.
중앙징계위도 마찬가지다. 개정 전 '총경 이상의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퇴직한 사람'을 민간위원 요건으로 내걸었지만, 개정 뒤에는 '총경 또는 4급 이상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퇴직한 사람'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된 뒤 경찰청에서 열린 2차례의 징계위에는 전직 경찰 각 1명이 민간 위원으로 참여했다. 같은 기간 서울청에서는 3차례 징계위가 열렸고, 이 가운데 1건의 징계위에 전직 경찰이 참여했다.
문제는 경찰 징계위가 결정하는 징계 처분과 실제 사법 영역에서 비위 경찰에게 내려지는 형사처벌 간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일례로 9개월 동안 동료 여경 2명의 사진에 음란한 문구를 합성한 뒤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를 받는 서울 광진경찰서 소속 간부 A씨는 지난 7월 1심에서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경찰이 내린 징계는 '1계급 강등'에 그쳤다.
경찰공무원 징계령은 성폭력 범죄의 징계 수위를 파면이나 해임으로 정하고 있지만, 징계위는 기준보다 가벼운 강등 결정을 내렸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당시 징계위에 전직 경찰 1명이 민간 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 위원(경찰) 2명, 민간 위원 3명(전직 경찰 1명, 변호사 2명) 등이었다.
징계위에서는 '1계급 강등'과 '해임' 의견이 맞서다가, 무기명 투표를 거쳐 강등 결정이 났다. 성범죄 가해 간부는 징계위에서 육아 스트레스를 언급하며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경들은 피해 사실을 알린 뒤에도 가해 간부가 연락을 시도하자 징계위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 청문감사관은 "전직 경찰이 징계 절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징계위원으로 위촉한다"며 "변호사, 교수 등 다른 민간 위원들이 징계위 참여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도 작용한다"고 했다.
◇ "'조직 내 감싸기' 가능성 배제 못해…경찰 비중 고려해야"
전·현직 경찰이 징계위 과반을 이루는 현 징계위 구성이 비위 공무원 징계 처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익대 법과대학 오병두 교수는 "전직 경찰을 민간 위원으로 두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징계위에서 전체 경찰의 비중이 과반을 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징계위에 민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징계 양형을 결정할 때 2가지 징계 처분으로 선택지가 추려져 과반수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현직 경찰을 합하면 교묘하게 과반수가 되다 보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징계위에는) 징계 절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아닌, 시민적 관점에서 (경찰 비위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국민 입장에서는 경찰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 비위가 있어 중징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경찰은 내부 익숙한 관행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후배인 만큼 우호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다혜 연구위원은 "해당 징계사안과 관련해 보다 전문성 있고 인권의식이 있는 민간 위원들이 참여해야 한다"며 "경찰·비경찰 위원의 비율, 성별 비율 등도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징계 사안별 징계위 인력 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모든 부처가 민간 위원과 내부 위원을 위촉하고 있다"며 "징계령상 자격 요건을 만족하는 퇴직 경찰들 중에서 이력이나 재직시 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 위원으로 위촉된 전직 경찰이 징계 대상자와 친분이 있는지 등을 감시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징계 등 심의 대상자의 친족이나 직근 상급자(징계 사유가 발생한 기간 동안 직근 상급자였던 사람 포함) △징계 사유와 관계가 있는 경우 등 명시적으로 관련성이 드러난 경우 민간 위원 제척 사유로 두고 있지만, 실제 친분 등은 사실상 징계 당사자와 민간 위원의 양심에 맡기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간 친분이 있는지까지는 세세히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도입으로 경찰의 역할이 막중해지고 있는 만큼, '제 식구 감싸기'라는 구태 경찰행정의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며 "객관적 결정을 위해 민간 위원은 사실상 내부 위원인 전직 경찰이 아닌 사람으로 임명하도록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