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1층 계단 밑 휴게실. 천장 높이가 낮아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 휴게실 출입문 천장에 스티로폼을 붙여뒀지만, 미화원들이 머리를 자주 부딪쳐 일부가 깎여 나갔다. (사진=박하얀 기자)
"사람들에게 청소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청소 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도 그들의 업무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방문객이 있거나 의료진이 진료실에서 업무를 볼 때 청소 노동자들은 '사라지기를' 요구받는다. 청소 노동의 결과는 오직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을 때만 눈에 띈다." 책 <보이지 않는="" 고통=""> p.75보이지>지난해 8월 9일 폭염 속 에어컨도 없는 '계단 밑' 휴게실에서 쉬던 서울대 청소 노동자 한 명이 숨졌다. 당시 노동자들은 "열악한 휴게실 환경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고용노동부가 현장 점검에 나섰고,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들은 그제야 청소노동자들의 '쉴 권리'에 관심을 두는 듯했다.
1년이 지났다. CBS노컷뉴스는 몇몇 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돌아봤다. 청소 노동자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쉬고 있었다. 어떤 휴게실은 천장이 낮아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했고, 케케묵은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환풍기 하나 없는 곳도 있었다. 한 청소 노동자는 "학교에서 우리는 부리기만 할 수 있는 하인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글 싣는 순서 |
①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그후 1년, 죽음으로 '쉴 권리' 얻었지만 ②대학 청소노동자들 "더럽지 않은 곳에서, 허리 펴고 쉬고 싶습니다" |
◇ "바뀐 게 없습니다"…대부분 지하·계단 밑에 있어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 대다수는 여전히 지하, 계단 밑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건국대, 서울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숭실대, 중앙대 등이 지하에 휴게실을 뒀다. 중앙대의 경우, 계약직 청소 노동자(직접고용) 3명이 이용하는 휴게실은 지상 1층에, 용역 청소 노동자(간접고용) 150명의 휴게실은 지상층에 19곳, 지하층에 3곳 있다.
중앙대 지하(주차장) 2층 휴게실에는 여성 미화원 15명이 함께 쉬고 있었다. 휴게실에 에어컨, 환풍기 등이 설치돼 있지만, 습기와 차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청소 노동자 A씨는 "지난해 서울대 사건이 나고 우리 학교도 고쳐줄 것처럼 하더니 안 해줬다"며 "한데 모여 쉬기에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해결되긴 하는 거냐"고 말했다.
중앙대 지하 주차장에 있는 미화원 휴게실. 대학 청소 노동자들은 대다수 대학의 미화원 휴게실이 지하에 있다고 말했다. (사진=박하얀 기자)
이 같은 문제는 다른 학교들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동국대 예술관 지하 2층에 있는 남성 미화원 휴게실. 습한 데다 퀴퀴한 냄새까지 났지만, 환풍기 하나 없었다. 이곳을 이용했던 다른 미화원 B씨는 "3년 전과 비교해, 옷장 빼고는 변한 게 없다"며 "방치되고 있는 유휴 공간이 학교 곳곳에 있지만, 학교는 미화원들에게 이 공간마저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휴게실 천장 높이가 낮아 청소 노동자들이 제대로 허리를 펴고 쉴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동국대 1층 계단 밑 휴게실. 입구부터 어두컴컴했고 습기로 가득 찼다. 휴게실에 들어설 때부터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화원들은 휴게실에서도 편한 자세로 쉴 수 없었다. 창문이 1개 있었지만, 바로 위가 흡연실인 탓에 담배 냄새가 그대로 내려왔다. 계단 밑에 있어 사람들이 오가는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렸다.
여성 미화원 4명이 이용하는 중앙대 건물 지하 2층 휴게실도 마찬가지였다. 천장 높이는 1m 50cm 남짓. 미화원들은 "수차례 머리를 찧었다"며 "앉은 자세로 휴게실을 돌아다니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성하지 않다"고 했다.
동국대 지하 2층에 있는 휴게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습도가 높지만, 환풍기는 설치돼 있지 않다. (사진=박하얀 기자)
◇ 건물마다 청소노동자 있는데…쉴 곳은 '태부족'일하는 건물에 휴게실이 없어 '철새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서울대 건물 총 166곳 가운데 청소 노동자 휴게실이 있는 건물은 90곳(54.22%)에 그쳤다. △명지대(자연캠퍼스)는 40곳 가운데 16곳(40%) △동덕여대 17곳 중 8곳(47.06%) △숙명여대 29곳 중 16곳(55.17%) △건국대 32곳 중 18곳(56.25%) △성신여대 15곳 중 9곳(60%) △세종대 25곳 중 17곳(68%) △숭실대 24곳 중 22곳(91.67%)에 휴게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 명지전문대 청소 노동자가 공학관 화장실 한 칸을 휴게실로 쓰고 있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인근의 다른 건물에 휴게실이 있지만, 오가는 데 시간이 드는 탓에 화장실에서 먹고 쉬었다.
지난해 명지전문대에서 일하는 한 청소 노동자가 휴게실로 썼던 화장실 한 칸. 현재는 냉장고 등 개인 물품이 치워진 상태다. 하지만 총 8개 층인 해당 건물에는 여전히 미화원 휴게실이 없다. (사진=박하얀 기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학교는 '화장실 휴게실'을 없앴다. 하지만 총 8개 층인 해당 건물에는 여전히 휴게실이 없다. 이곳에서 일하는 미화원들은 다른 건물에 있는 휴게실로 건너가 쉰다. 미화원들은 "휴게실이 없다 보니 중간중간 제대로 쉴 수가 없다"며 "다른 건물 미화원들의 휴게 공간을 빌려 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남성 경비 노동자와 여성 청소 노동자가 휴게실을 같이 쓰는 곳도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운영 가이드'에서 휴게실을 성별에 따라 분리할 것을 권고했다.
중앙대 공대 건물을 청소하는 여성 미화원들은 경비실에 딸려있는 휴게실을 이용한다. 교대 근무를 하는 청소노동자 4명, 경비노동자 2명이 공간을 함께 쓴다. 한 여성 미화원은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게 서로 불편하다 보니, 경비 아저씨는 휴게실에 들어오지 않고 경비실 의자에만 앉아있다"며 "휴게실이 추가로 생기면 좋겠다"고 전했다.
휴게실을 채운 냉장고, 선풍기, 물품 보관함 등은 모두 이들이 사 오거나 강의실, 연구실 등에서 버린 집기를 가져온 것이었다.
지난해 8월 9일 숨진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이용했던 서울대 공과대학 제2공학관 휴게실. 창문, 에어컨은 없고 벽에는 환풍구 하나가 달려 있다. 학교는 이 휴게실을 폐쇄하고 '지상층'에 새로운 휴게실을 마련했다. (사진=박하얀 기자)
◇ '쉴 권리' 보장하려면…"대학-노동자 간 '공감격차' 줄여야"노동자의 '쉴 권리'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도 보장돼 있다. 사업주 등은 산안법 제5조(사업주 등의 의무)에 따라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같은 법 제29조(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 조치)는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휴게시설, 세면·목욕시설 등 위생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위생시설을 수급인의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도 휴게실 매뉴얼을 발표했지만, '권고' 수준에 그쳐 위반 시 제재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결국 해법은 청소·경비 노동자 등 구성원들의 '쉴 권리'에 대한 학교와 노동자 간의 공감 격차를 줄이는 일이다. 캐나다 인간공학자 캐런 메싱은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고용주, 과학자, 정책 결정권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서울 지역 대학들에 전화해, '올해 안에 미화원 휴게실을 리모델링하거나 증축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지만, 명확한 계획을 세운 학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며 "유관부서들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겠다"고만 말했다.
조선대 직업환경의학과 송한수 교수는 "휴게 공간 자체가 업무의 연장선에 있거나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곳이라면, 업무에 대한 긴장과 부담이 가중된다"며 "이는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특히 고령의 청소노동자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받는 영향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가) 더 나은 의자, 환기 시설, 매트 등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청소 노동자들 대부분은 파견 노동자로 건물 이용자들의 눈을 피해 비좁은 공간, 환기나 냉난방이 취약한 곳에서 쉬고 있다"며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한 것처럼 미화원 등을 위한 휴게시설 설치도 의무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