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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에 수요시위 자리 뺏긴 정의연…소녀상 앞 집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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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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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대가 선순위 신고…타 단체 장소 선점은 처음
경찰, 소녀상 주위 '완충지대'…양측 간 거리 둘 듯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28년 동안 매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수요시위가 보수단체의 위치 선점으로 시위 지점을 처음 옮기게 됐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보수단체 자유연대는 이달 23일 자정부터 7월 중순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집회 신고를 해둔 상황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돌아오는 수요일인 24일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원래 장소 대신 남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 무대를 만들고 시위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연대의 반대 집회는 평화의 소녀상 근처에서 열린다.

최근 자유연대 등이 종로경찰서 인근에 상주하면서 매일 자정이 되면 집회 신고를 하는 터라 이런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수요시위 장소 선점은 처음 있는 일"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앞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여명이 1월 8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연 집회를 시초로 한다.

첫 시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8년간 같은 장소에서 매주 수요시위가 열렸다. 2011년 12월 1천번째 수요시위를 기념해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섰고, 2015년 7월에는 일본대사관이 건물 신축을 위해 뒤편 빌딩으로 이전하는 등 주변 모습은 조금 달라졌지만 시위는 수요일 정오마다 열렸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자발적으로 집회를 열지 않았던 경우 정도를 제외하면 수요시위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지 않은 일은 없었다.

그간 시위 취지에 반대하며 근처에서 야유하거나 '맞불집회'를 여는 사람은 있었어도 아예 집회 장소를 선점하는 형태로 방해를 하는 것 역시 전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 일대 집회·시위 신고를 담당하는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수요시위 장소를 다른 단체가 선점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같다"고 말했다.

◇ 자유연대 "윤미향 사퇴 때까지 선점"…소녀상 주변 '완충지대' 될 듯

집회를 신고한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정의연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집회를 중단해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시민들이 두 집회를 보고 과연 누가 상식이 있는 자들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언제까지 일본대사관 앞 집회 신고를 낼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정의연이 각성하고 윤미향 의원이 사퇴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여러 의혹 제기에다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는 정의연은 "속수무책"이라는 입장이다.

정의연 관계자는 "자유연대가 밤을 새워가며 집회 신고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람이 부족해 선순위 등록을 할 여력이 없다"며 "자유연대의 선량한 시민의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요시위 자리를 빼앗긴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사회가 30년 전으로 후퇴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경찰도 고민이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신고가 잘 중재되지 않고 있다"며 "두 집회 사이에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등 현재는 최대한 마찰을 방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연대 등이 공공조형물인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어서 종로구에서 시설 보호 요청을 해왔다"며 "일단 자유연대 측에 소녀상에서 1∼2m 떨어져 집회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경찰이 소녀상 주위를 일종의 완충지대로 비우는 방식으로 현장을 통제하고, 소녀상 양쪽 옆 공간에서 정의연과 자유연대 등이 각각 집회를 여는 형식이 될 전망이다.

◇ 경찰이 우선순위 판단할 수는 없어…1순위 확보하려 밤새 줄 서는 경우도

집회 장소 선점은 노조나 사회단체 등이 종종 겪어온 일이기도 하다. 사측이나 반대 단체가 미리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집회 개최를 저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집회를 계획하는 사람은 최장 30일(720시간) 전부터 경찰에 신고서를 낼 수 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체들이라면 장소가 겹쳐도 시간 등을 조정할 여지가 있지만, 입장이 다르거나 아예 한쪽을 방해할 목적이 있는 경우라면 집회 신고가 가능해지는 '30일 전 자정'까지 경찰서 앞에서 경쟁이 벌어진다.

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할 때는 집회 신고 시각인 자정에 맞춰 경찰서를 향해 여러 사람이 전력질주하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그 예다. 주최 측은 6월 1일 축제를 서울광장에서 열기 위해 4월 말 닷새에 걸쳐 서울지방경찰청·남대문경찰서·종로경찰서에서 밤새 대기했다. 축제를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계 단체 등보다 먼저 서울광장과 일대 거리의 집회 우선순위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축제를 기획한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우리 바로 뒤에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1순위를 빼앗길 테니 교대 전에는 화장실도 못 갔다"며 "상황을 듣고 100여명이 자원한 덕분에 집회 신고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집회 신고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해봤지만 지금의 방법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며 "일단 장소 경합이 붙으면 경찰이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경찰이 나서서 우선순위를 판단해줄 수도 없으니 소모적이지만 '선착순' 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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