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텔레그램 'n번방'의 설계자로 통하는 '와치맨' 전모씨(38)가 세계적 성착취물 다크웹인 '웰컴투비디오'(W2V)의 운영자 손정우(24)와 국내 최대 음란 사이트에서 수년 전 함께 활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CBS 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와치맨 전씨는 2016년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에이브이스눕'(AVSNOOP)에서 회원으로 활동했다. 에이브이스눕은 2013년 개설된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다. 한때 회원수가 120만명까지 치솟으면서 제2의 소라넷으로 불렸다.
n번방 전신인 에이브이스눕 시절부터 주요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다가 '박사' 조주빈에 이른 만큼, 이번 n번방 사건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성착취범들이 또다시 범행에 발을 담그지 못하도록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씨는 에이브이스눕에서 각종 불법 촬영물을 게시하는 '헤비 업로더'였다. 타인의 집에 설치된 IP 카메라를 해킹해 사생활을 불법 녹화한 뒤 이를 유포하는 식이었다. 전씨가 9개월 남짓 기간 동안 올린 음란물만 170개에 달한다.
같은 시기 손정우는 에이브이스눕에서 성착취물을 내려받아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했다. 전씨가 에이브이스눕의 헤비 업로더였다면 손씨는 해당 사이트의 주요 고객이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017년 5월 에이브이스눕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핵심 피의자들을 검거했다. 와치맨 전씨도 그중 1명으로 확인됐다. 전씨는 회원이었지만 죄질이 나빠 당시 운영진이 대부분이었던 경찰의 주요 검거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전씨는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바로 풀려났다. 300차례 넘게 IP 카메라 해킹을 시도하고, 80차례 가까이 타인의 사생활을 도촬하고도 "영상의 노출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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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씨는 지난해 9월 에이브이스눕의 이름을 본 딴 블로그를 만들면서 또 한번 동종 범행에 뛰어들었다. 닉네임 '갓갓'의 n번방을 비롯해 온갖 텔레그램 비밀방이 전씨의 블로그에서 홍보됐다.
전씨는 사실상 텔레그램 n번방의 유통 체계를 만든 설계자이자 n번방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을 지킨 문지기였다. n번방의 원조인 갓갓과 뒤를 이은 조주빈까지 파렴치한 성착취범들 모두 전씨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활개를 쳤다.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 건 전씨뿐만 아니라 손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브이스눕에서 다운로드한 음란물을 이용해 '웰컴투비디오'를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로 키웠지만, 2018년 1심 법원은 손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검사의 항소로 2심에서 실형이 내려졌지만, 그마저도 징역 1년6개월로 형기가 줄었다. 웰컴투비디오에 업로드한 남성에게 22년형을 선고한 미국와 영국의 사례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처벌 수위다.
손정우는 오는 27일 출소한다. 미국 법무부는 그의 출소에 맞춰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른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자국에 웰컴투비디오의 피해자가 있어 미국 법에 따라 손씨를 처벌하겠다는 게 미국 법무부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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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법무부도 손정우의 강제 송환을 검토중이다. 국내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지만 미국으로 넘어갈 경우 최소 20년 이상의 중형이 예상된다. 손씨의 미국 송환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답변 요건인 20만 동의를 이미 넘었다.
전문가들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우리 법원도 성착취범에게 보다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와치맨과 손정우처럼 여기저기 엮여있다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온라인 성착취의 특성상 강력한 처벌만이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대표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처벌받아도 벌금이나 기소유예 정도에서 끝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 없이 '해도 안 걸리겠지', '걸려도 잘만 얘기하면 선처해주겠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제껏 법원은 성착취물 가해자 중심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공감하며 선처를 내렸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의 일상이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됐는지, 사회에 미친 해악이 어느 정도인지 고려해서 양형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