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막다른 길로 가지 말라"며 수출 규제 조치 철회를 촉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비상대응체제'를 선포했다.
한일 양국의 강대강 대치로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장기전 대비에 돌입했다.
◇ 文, 日에 경고 "막다른 길 가지 말라"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10일 30대 기업 총수 등 경제계 주요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난 8일 수석보좌관회의보다 한층 더 강경한 어조로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아무런 근거없이 대북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조치의 이유로 최초에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등으로 인한 양국 신뢰 손상을 꼽다가,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 가능성을 제기했고, 우리 기업이 에칭가스를 화학무기 제조에 전용할까봐 규제에 나섰다는 논리도 펼쳤다.
하지만 이들 주장 모두 의혹일 뿐 일본은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가 정치적 목적에 따른 부당한 조치라고 규정한 것이다.
앞서 지난 8일에도 문 대통령은 일본이 부당한 조치를 풀고 성의 있는 협의에 나서라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추가 규제 카드를 검토 중인 상태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지만 문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을 최우선 해결책으로 생각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화답해 주기를 바란다.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일본의 전향적 입장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미 강대강 대치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 속 일본은 쉽게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제한 조치의 철회와 대응책 마련에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민관, 장기전 대비 의기투합…방향성에는 공감대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8일에 이어 이날도 현 사태를 '전례없는 비상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단순 제안 수준이었던, 민관 비상대응체제도 한층 구체화됐다.
문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이 상시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관 비상 대응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며 주요 그룹 최고경영자와 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이 상시 소통체제를 구축하고, 장·차관급 범정부지원체제를 운영해 단기적·근본적 대책을 세우고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준비 중인 단기적, 장기적 대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단기적으로는 수입선 다변화, 국내 생산 확대 및 행정절차 간소화 지원, 추경 예산 반영 등을 약속했다. 또 근본적 대책으로 주력산업의 국산화 비율을 높이고, 특정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인들도 대체로 문 대통령의 제안에 공감대를 표했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기업인들은 부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부품 국산화에 대한 정부 의지에 대해 공감의 뜻을 나타냄과 동시에 장기적 안목과 긴 호흡의 정부 지원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기업인들은 신규화학물질 생산에 따른 환경규제나 리스크 분산을 위한 금융규제 완화 등을 요구했고, 러시아·독일과의 협력 등 수입선 다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기업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그간 구축해온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나, 연구개발(R&D) 등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예상되는 피해에 대응하기에는 이날 논의된 대책이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기업별 피해 규모나 사후 대응 계획, 추가로 예상되는 일본의 조치에 대한 맞대응 방안 등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