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한·미 정상 외교기밀 누설' 논란의 당사자인 강효상 의원이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한미 정상 간 대화 내용 유출이 '국익훼손'이라는 논란이 이는 가운데, 한국당은 의총에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논란을 일으킨 강 의원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기밀을 공개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면서 "내가 하면 폭로고 남이 하면 유출이냐"고 주장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또한 이자리에서 "민간위원들이 들어가서 적폐청산이라는 이유로 (비밀을)공개했다"라며 지적했다.
한국당의 주장대로 문재인 정부에서의 기밀공개와 강 의원의 기밀 유출 사태와 같은 것일까. 강 의원의 기밀유출 논란은 그렇다고 해서 반박 가능한 것일까.
현재 한국당은 문 정부에서도 '기밀 유출' 사태가 있었는지 사례를 모으는 중이라고 한다. 김재경 의원은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사례들을 수집하고 있다"며 "새 정부 들어서고 나서 국가기밀이 국가 기관에 의해 오픈되는 사례들을 취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사 인터뷰를 통해서는 "훨씬 심각한 기밀들이 다 지금 공개돼 버린 것"이라며 "(강 의원이 공개한 것은)이건 제가 보기에는 거기에 비춰보면 국가의 안위라든지 대통령의 신변에는 극히 영향이 적은 거죠"라며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문 정부가 들어선 직후 각 부처에 적폐청산 TF를 만들어 진상조사를 하고 그 내용을 공개한 사례들을 열거했다.
주요 사례로 ▲박근혜 정부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관련 기밀 공개건 ▲통일부 정책혁신위의 조사 발표건▲국정원의 적폐청산 TF에서의 민간위원 조사건▲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 과정에서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의 공개 증언건 등을 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사례와 강 의원이 제시한 사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각 부처 관계자들은 말한다.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전해들은 정보, 그것도 다른 나라의 정상이 관계된 내용을 외부에 발설한 행위와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공개된 사례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국방부는 2017년 12월 국방부 사이버댓글조사TF의 요청에 따라 서주석 차관 주재하에 보안심사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국군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의혹 관련 2급~3급에 해당하는 비밀문건들을 일부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보안심사위원회에서는 보안심사관과 작전 관계자가 다각적으로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는 것이 사이버사령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이버사령부 관계자는 "강 의원 건과 국방부의 기밀공개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강 의원 건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기밀 상황을 전해듣고 발설한 경우이고, 국방부의 경우 적법한 절차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에도 최소한의 비밀유지는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자료를 공개하더라도, 국방위원회 자체적인 논의를 거쳐 정보를 공개할지 말지 따로 논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회에 제출된 자료조차도 자의적으로 정보를 발설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통일부의 정책혁신위가 지난 2017년 12월 '개성공단 폐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두지시로 인한 것'이었다고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 혁신위는 기밀문서를 열람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혁신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 "당시 위원들은 기밀문서에 대한 열람을 하지 않았다"며 "개성공단 폐쇄 경위에 대한 통일부 보고가 있었고, 그 내용에 대한 권고를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폐쇄가 박 전 대통령의 구두지시였다는 내용은 통일부의 자체조사결과였던 셈이다.
한국당은 또 국정원의 적폐청산 TF를 두고 "기밀취급 자격도 없고 경험도 없는 민간인들이 들어가 국정원 자료를 같이 보는 등 공개가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에서도 2017년 적폐청산 TF 만들었지만 민간위원들이 TF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일부 파견된 검찰이 적폐청산 TF에 들어갔지만 이들은 국정원법에 따라 기밀을 볼 수 있도록 허용됐을 뿐이라고 한다.국정원법 10조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필요한 공무원의 파견근무를 요청할 수 있고, 이 같은 경우 겸직 직원의 신분은 국정원직원과 동일 신분으로 보장된다고 한다.
한국당이 지적한 민간위원들의 경우 당시 적폐청산이 아닌 조직쇄신TF에 들어갔다. 이들은 보안규정에 따라 제한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만 자료를 볼 수 있었고, 적폐청산 TF가 가졌던 자료 열람권은 부여되지 않았다고 국정원은 설명한다.
한국당이 든 또 다른 사례인 윤병세 전 장관의 법정 공개 증언은 결론적으로는 정부의 결정 사항은 아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둘러싼 '재판 거래' 의혹 관련 재판에서 윤 전 장관은 "민감한 외교 기밀이 노출될 경우 국익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며 비공개 신문을 요청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윤 전 장관의 비공개 요청에 대해 "(윤 전 장관의 진술 내용이)외교부 관계자들의 진술과 대동소이해 비공개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수용했다.
한국당이 문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을 들어 한 반박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거나, 차원이 달라 직접 비교가 힘든 내용들이었다.
물론 정권 교체 이후 기밀을 공개하는 행위와 이유에 대해 해석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미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도청 사실을 폭로한 '스노든 사건'에 대해 '알권리냐 국익훼손이냐'란 논쟁이 있는 것처럼 무리한 진상조사나 기밀의 공개가 결과적으로 국익의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당 강 의원의 기밀유출건의 경우, 공개한 정보의 내용이 과연 알권리 보장 차원이나 공익적 차원에서 가치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외국어대학 남궁영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밀 유출과 국민의 알권리가 상충되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강효상 의원의 경우 공개된 내용이 과연 몰랐을 때 공익의 해가 되는 내용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공개됐을 때 국가 간 외교적 신뢰 훼손의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당의 논리적 모순이 있는 주장이 단지 한국당의 '물타기'라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남궁 교수는 "정부의 비밀 공개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강 의원의 기밀유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