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희곤 (건축사)
◇ 정관용> 오늘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 된다, 이런 보도가 나오고 있죠. 그래서 조선시대 서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마침 최근에 이 9곳 서원을 다룬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 이런 책을 쓰신 김희곤 건축가를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희곤>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정관용> 서원이 뭐죠? 도산서원, 병산서원, 그런 거죠?
◆ 김희곤> 네. 조선시대 관립학교가 서울의 성균관이 대학이라면 지방에는 관립학교, 중등학교, 향교가 있었고요.
◇ 정관용> 향교.
◆ 김희곤> 향교는 이제 쉽게 얘기하면 공공, 공립이고.
◇ 정관용> 공립학교.
◆ 김희곤> 공립인데 지방에까지 이렇게 좋은 선생을 모실 수가 없으니까 향교가 어떻게 보면 퇴락하고 다음에 과거시험 공부하는 하여튼 그런 준비, 입시학원 정도, 이런 식으로 되니까 새로운 개혁세력들이 과거시험 중심으로 이렇게 뭘 하는 학교가 아니라 정말 이렇게 참사람, 그러니까 인격을 도야하고 그다음에 이렇게 단순히 과거에 급제해서 입신양명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인간적으로 이렇게 성숙된 그래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좀 이렇게 공부하고 그다음에 이제 개혁세력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뭐라 그래야 되나, 솔선수범하고 몸으로 이렇게 실천하는 극기복례, 그런 거를 기본으로 해서... 중요한 거는 관학인 향교는 공자를 모셨고.
◇ 정관용> 공자.
◆ 김희곤> 네, 중국의 공자를 모셨고.
◇ 정관용> 유교사상이니까요.
◆ 김희곤> 네. 그다음에 서원은 우리나라의 아주 존경하는 인물. 퇴계이황이나 이런 사람들을, 그러니까 정신적으로 중국에서 어떻게 보면 조선사회가 15, 16세기 들어오면서 서원을 이렇게 만들면서 독립이 됐다고나 할까요? 그런 의의가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책 제목을 정신 위에 지은 공간, 이렇게 붙이셨군요. 한국의 서원.
◆ 김희곤> 네.
◇ 정관용> 그 정신이라고 하는 게 우리의 대학자들, 그분들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 기리고 익히고 연마하고.
◆ 김희곤> 그분들의 사상을 중심에 두고 그분의 사상을 따르는 후학들, 그거를 조선시대 이야기로 문인이라고 그래야 되죠. 그런 사람들이 제자들이겠죠. 퇴계이황의 제자가 퇴계선생을 따르는 각자 9개 서원은 다 이렇게 제자가 다르죠.
◇ 정관용> 그러니까요. 도산서원이 퇴계이황 선생을 기리는 곳이죠.
◆ 김희곤> 그렇죠.
◇ 정관용> 그리고 병산서원은 유성룡.
◆ 김희곤> 임진왜란에 아주 그냥.
◇ 정관용> 그러면 아까 성균관이 있고 지방에는 향교가 공립학교라고 그랬잖아요. 그런 거는 아무튼 나랏돈으로 짓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런 서원은 누가 누구 돈으로 어느 땅에 짓는 거예요?
◆ 김희곤> 아, 서원도 이게 뭐냐 하면 사립학교인데 쉽게 이야기를 하면 정부가 공인을 해 주기 시작합니다. 그게 소수서원이 초기에 공인이 돼서.
◇ 정관용> 제일 처음 만들어진 게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
◆ 김희곤> 영주의 소수서원입니다. 그래서 그게 중국의 백록동서원이라고 중국이 올림픽 할 때 여산폭포 이렇게 해서 그게 이제 결국은 중국의 어떤 백록동서원에서 우리가, 모든 게 역사가 시작됐다는 그런 자랑스럽게 한 것처럼 그걸 옮겨와서 백운동이라고 그게 우리 태백산 줄기에서 가장 영험한 곳, 그 장소에 소수서원이 처음 이렇게 썼죠.
◇ 정관용> 그러니까 그거를 공인했다는 말이 뭐예요?
◆ 김희곤> 공인은 뭐냐 하면 이걸 정식 사립학교로 국왕이 공인을 해 주는 겁니다.
◇ 정관용> 조선 왕이? 이거는 사립학교로 내가 인가하마, 이렇게 되는 거로군요.
◆ 김희곤> 그러면 인가를 해 주면서 뭐냐 하면...
◇ 정관용> 그러니까 그래도 사립학교니까 이거는 사유지에 지은 걸 거 아니에요?
◆ 김희곤> 그렇죠, 초기에는 사유지죠. 그거를 공식적으로.
◇ 정관용> 학교 부지로 인정하고.
◆ 김희곤> 학교 부지로 인정해 주고 저걸 노비와 그다음에 비용을 이렇게 댈 수 있도록, 그다음에 토지를 왕이 내려주는, 하사해 주고.
◇ 정관용> 재정 지원도 나중에는 하고? 지금 현재 우리 서울 이런 데 있는 사립학교도 다 재정 지원 받잖아요.
◆ 김희곤> 그렇죠.
◇ 정관용> 비슷한 맥락이군요?
◆ 김희곤>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원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개혁세력. 조선의 개혁세력이 이렇게 뭐라 할까, 사림이라고 해서 스스로 극기복례하고 우리는 뭐냐 하면 양반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도를 닦듯이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지위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는 그 정신이 살아 있어서 괜찮았는데 개혁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다 보니 이제 권력에 맛이 드니까 다시 또 부패해서 17, 18, 19세기 이렇게 해서 다시 이제 어떻게 보면 적폐.
◇ 정관용> 그랬어요, 또? 처음 서원이 만들어지고 확대될 때는 우리는 이른바 과거시험, 입시학원 아니다. 입신양명 안 한다. 그런데 거기서 이름을 떨친 분들이 채용됐군요. 그래서 권력을 잡군요.
◆ 김희곤> 그분들이 어떻게 보면 정치세력화 한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러면서 기존에 태조 이성계. 이성계의 무리와 지방의 호족들하고 결탁해서 권력된 훈책이라고 만약에 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을 비집고 대항세력으로 나타나서 결국은 이 사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지만 권력을 잡으면, 요즘도 똑같겠지만 권력을 잡으면 또 이렇게 섞게 돼 있지 않겠습니까?
◇ 정관용> 지연, 혈연, 학연이 작용하죠.
◆ 김희곤> 네, 권력의 속성상.
◇ 정관용> 우리 서원 출신들도 등용하고.
◆ 김희곤> 당연하죠. 그런 문화가 결국은 뭐냐 하면 어떻게 보면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그 진리가 우리 조선사회에도. 그렇지만 500년을 지속한 서구 세력은, 서구의 왕실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김희곤> 그래서 우리의 조선을 이렇게 평가할 때 그나마 초기에 그런 개혁정신이 있었고 그 개혁정신에 극기복례 하는 그런 스스로 몸으로 이렇게 착한 사람, 양심을 가지고 그다음에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라도 그나마 왔다라고 이렇게 저는 믿어집니다.
◇ 정관용> 우리가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 이런 분들은 하나같이 정말 솔선수범하고 비난하게 살고 다 그러셨다는 거 아닙니까?
한국의 서원 9곳, 세계유산 등재 확실시 (사진=연합뉴스 제공)
◆ 김희곤> 초기의 우리 개혁세력들은 정말 국가를 위해서 입신양명이 목표가 아니라 정말 참사람, 정말 인간다운 사람이 권력을 잡아서 그다음에 어떻게 보면 정도전이 민본정치에 바탕을 두고 그다음에 개혁정치를 제대로 실천하자. 그런 상태였는데 그 밑으로 내려가면서 권력이 맛이 드니까.
◇ 정관용> 그래서 막판에 대원군 때인가는 서원 다 없애자, 이랬었잖아요.
◆ 김희곤> 그때는 뭐냐 하면 서원이 막 남슬이 돼서 쉽게 얘기하면.
◇ 정관용> 너무 많아졌어요?
◆ 김희곤> 너무 많아져서 그게 뭐냐 하면 서원이 뭐라 그래야 되나. 이렇게 임금이, 그러니까 오늘날 같으면 정부에서 노비와 토지를 주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부족해요, 사실은. 그러니까 뭐냐 하면 지방관의 도움을 받아야 돼요. 그런데 지방관의 도움을 자르니까 결국은 뭐냐 하면 양반들이니까,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민 작폐가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나라가 꼴이 이렇게 말이 안 되는데다가 흥선대원군은 중앙집중체제를 유지해야 되고 권력을 다시 이렇게 반석 위에 올려야 되니까 경복궁을 새로 지으면서 이건 뭐냐 하면 지방 호족들을 정리를 해야 되겠다.
◇ 정관용> 알겠어요. 서원의 부침까지 다 짚어봤는데 그래도 제일 많을 때는 몇 개까지 있었던 겁니까?
◆ 김희곤> 제일 많을 때는 거의 뭐 이렇게 숫자를 지금 뭐냐 하면 그게 막 음성적으로 늘어나고 막 이렇게.
◇ 정관용> 제대로 셀 수 없을 만큼.
◆ 김희곤> 그러니까 몇 천개가 이렇게 넘어선 거죠. 뭐냐 하면.
◇ 정관용> 몇 천개 이상.
◆ 김희곤> 이름이 정확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우리가 족보 이렇게 따지는 것도 사실 내용상으로 들어보면 이렇게 별로 좋지 않은 우리 조선시대 역사거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서원은 몇 개쯤 됩니까?
◆ 김희곤> 지금 남아 있는 서원은 제가 자료를 이렇게 보니까 한 700...
◇ 정관용> 700개가 넘어요?
◆ 김희곤> 지금 아마 701개로 파악이 돼 있습니다. 이게 이제 2011년 8월 자료인데...
◇ 정관용> 아직 꽤 많이 남아 있네요.
◆ 김희곤> 그런데 뭐라 그래야 되나? 이렇게 퇴계 선생님, 퇴계 이황이 만드는 완벽한 구조는 다 갖춰져 있지 않은 그중에 사당 하나만 있어도 서원이고.
◇ 정관용> 약식 서원.
◆ 김희곤> 네, 그런 거를 다 합쳐서 북한에는 64개.
◇ 정관용> 64개.
◆ 김희곤> 남한에는 637개 정도 이렇게.
◇ 정관용> 그러니까 남북한 합해서 700개가...
◆ 김희곤> 그렇죠.
◇ 정관용> 그 가운데 이번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는 곳은 9곳이에요. 이거는 누가 이렇게 9곳을 정한 겁니까?
◆ 김희곤> 9곳은 문화재청에서 학자들 중심으로 해서 아무래도 지역 안배 차원도 분명히 있었겠죠. 왜냐하면 어차피 조선시대 서원이라는 것은 영남이 기반이었고 그 서원 제도를 아주 이렇게 공고히 규칙을 만든 사람이 퇴계 이황 선생이고. 퇴계 이황 선생이 관여한 게 경상도 쪽에 10곳이 이렇게 되고 그게 이렇게 퍼져나가면서 전라도도 퍼져나가고, 충청도도 퍼져나가고, 이북으로도 퍼져나가고 이렇게 했으니까 그거는 어쩔 수 없이 경상도에 편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정관용> 그 9곳이 아까 제일 처음 만들어진 영주의 소수서원 포함되고.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서원'을 등재 권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사진은 남계서원의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 김희곤> 네,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도동서원, 그다음에 옥산서원, 남계서원, 필암서원, 무성서원, 도남서원. 전라도에, 전라남북도에 각각 하나씩 2개 있고 충청도에 하나 있고 나머지 6곳은 경상도에. 그래서 아마 이게 편중이 돼 있고. 그리고 인물상으로 보면 경상도 쪽이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정말 훌륭한 사람 5인 이렇게 적을 때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경상도 쪽에 있고.
◇ 정관용> 누구누구죠, 그러니까?
◆ 김희곤> 퇴계 이황, 그다음에...
◇ 정관용> 이황 선생. 유성룡 선생, 아까 말씀하신.
◆ 김희곤>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선생, 이렇게.
◇ 정관용> 그러니까 서원은 한 곳 한 곳이 다 여기는 어느 학자를 모시는 곳이다, 이런 게 있는 거죠?
◆ 김희곤> 저희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것은 우리 서원이 단순히 공간이 아름답게만 지어진 게 아니고 사상자의 철학을 완벽하게 후손들이, 후학들이 해석을 해서 그걸 완전히 기하학적으로 이렇게 정리를 해서 완벽하게 하고 대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융통성을, 그거를 시중의 건축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 정관용> 건물 건축에서부터 그 사상가의 정신이 들어 있다?
◆ 김희곤> 네, 특히 도동서원의, 김굉필 선생을 모신 도동서원 같은 경우는 의리의 사원인데 완전히 일직선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살아온 삶 자체가 그냥 죽음 앞에서 머리 이렇게 하면서 그대로 사약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실 정도로 그렇게 배짱이 있는, 의리 있는 분. 그러니까 그런 사상이 그대로 다 이렇게 해서 9개가, 아홉 색깔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거를 정확히 조금 아시고 보시면 우리 문화가 훨씬 더 정말 깊고 풍부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정관용> 네, 그 대신 기본 구조의 특징은 퇴계 이황 선생이 만드셨다 그랬잖아요. 기본 구조는 어떤 구조를 갖고 있어요?
◆ 김희곤> 기본 구조는 앞에 유식이라고 긴장을 푸는 공간, 정자도 있고. 거기에 음악도 하고 시도 짓고 하여튼 그런 게 있고 그다음 단계가 강학이라고.
◇ 정관용> 공부하는 곳?
◆ 김희곤> 이제 스승과 토론을 하는 강당이 있고 그다음에 동서재, 이렇게 해서 좀 나이 든 유생, 좀 젊은 유생이 숙식을 하는.
◇ 정관용> 기숙사가 있고.
◆ 김희곤> 기숙사가 있고. 그 뒤에 제일 높은 자리에 뭐냐 하면 제향단
◇ 정관용> 사당.
◆ 김희곤> 네, 사당. 그러니까 이 학맥의 제일 중심적인 목표. 그분이... 그런데 이게 앞에는 낮고 위에는 높게 단계별로 돼서 사당을 제일 존중하는. 그런데 이제 전라도 쪽으로 가면 필암서원은 평지가 되다 보니까 이게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이제 강당이 사당을 보고 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부공간을 들어가면. 밖에서 보면 단계별로 이렇게 돼 있는 듯 보이나 들어가서 보면 완전히 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서원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그 공간을 보면 아홉 색이 다 다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기본 구조는 맨 처음 들어가는 곳은 이렇게.
◆ 김희곤> 유식부터 해서.
◇ 정관용> 즐길 수 있고 시도 읊고 그러다가 공부하는 곳, 양쪽에 기숙사, 맨 위에는 스승을 모이는 사당, 이 구조이되 9명 학자 정신을 받아서 한 곳 한 곳씩 다 다르다. 이 얘기인 거잖아요?
◆ 김희곤> 네, 그게 제 책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를 그냥 이렇게 내용을 좀 보지 않고 보면..
◇ 정관용> 알겠습니다. 유네스코는 어떤 점을 높이 사서 이거를 등재하기로 결정했을까요?
김희곤 건축사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유튜브 라이브 캡쳐)
◆ 김희곤> 유네스코에, 우리 한국에서 작년에 우리가 문 대통령이 아주 적극적으로 정책적으로 해서 우리가 7개 사찰이...
◇ 정관용> 등재됐죠?
◆ 김희곤> 등재가 됐죠. 그거 말고 순수하게 우리 학문의 공간을 지금 현재 한국의 서원이 남아 있는데 등재가 결정이 확실시됐고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6월 30일 날 결재 도장만 사실. 우리의 정신세계 중에서 이것보다도 더 명확하고 세계적으로 내놓을 수 있고 자랑이 될 수 있는, 그다음에 완벽하게 중세시대, 조선시대의 건축 골격구조와 매치를. 그다음에 사상과 대지와 그다음에 그 사람의 뭐라 그럴까, 불꽃같은 정신들이. 9개 서원이 다 다르게 남아 있는 것은 이거는 굉장히 기적 같은 일입니다.
◇ 정관용> 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평가 기준 가운데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라는 기준을 충족해서 이게 등재가 확정됐다고 하니까요.
◆ 김희곤> 네,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인류의 가치, 공유, 문화적 전통.
◇ 정관용> 자랑스러워함과 동시에 그 정신을 하나하나 새기면서 둘러보면 우리도 깊어질 것 같습니다. 김희곤 건축가 오늘 고맙습니다.
◆ 김희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