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스토리] 2천명 숨진 그 바다, 구명조끼없이 뛰어드는 그들

살기 위해 고무보트에 몸 실어
EU규제로 더 먼 곳 '스페인' 찾아
난민 인정 1.5%…스페인, 독일 경유지로

※ 이 기사는 스페인난민구호기관 프란시스코 칸시노 카라스코 책임자와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덴세 대학 에스테반 산체스 모레노 교수와의 인터뷰, 국제이주기구 자료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남부에 있는 자치 지방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맞닿아 있어 휴양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난민에게 있어 이 해안은 '피난 통로’다. (사진=CEAR 제공)

 

'2242명'
올해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들이다. 내전을 피해 탈출한 그들이지만, 결국 유럽 땅을 밟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난민들은 구명조끼 한 장 걸치지 않고 고무보트에 오른다. 어린 아이들도 엄마의 손을 꼭 쥔 채 보트에 몸을 싣는다. 이들은 배가 뒤집히지 않기를 바란다. 이유는 단 하나. 살기 위해서다.
난민 발생이 많은 리비아나 시리아에서 그리스를 거쳐 서유럽으로 들어가는 경로로 '발칸루트'가 있었다.
하지만 유럽연합(EU)과 터키의 협약 이후, 이 경로가 막히면서 난민들은 지중해로 발길을 돌렸다.
보트를 띄웠던 리비아 해변마저 감시가 강화되자, 난민들은 보다 '먼' 스페인으로 향하고 있다.
난민들은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로 향했다. 그리고 이 지역 해변에 고무보트를 띄웠다. 스페인으로 향하는 여정은 길면 1년이 걸리기도 했다. 난민들은 보트 위에서 영양실조와 탈수증을 겪는다.
서지중해를 통해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난민은 2016년 722명에서 2017년 4704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도 9월 기준 7120명에 달했다.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난민을 포함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사진=CEAR 제공)

 

나는 말라가 지역 스페인난민구호기관(CEAR)에서 근무하고 있다. 난민을 구조하고 이들이 스페인에 머물 수 있도록 심리치료도 지원하고 있다.
난민들을 구조하면서, 유독 리비아 난민 캠프에 있던 여성과 아이들만이 극심한 트라우마 증세를 보였다. 이들은 늘 불안해했고 두려워했다.
이들이 알려준 리비아 난민 캠프의 상황은 처참했다. 리비아 난민 캠프에서는 살인과 성폭력이 수시로 벌어졌고 노예로 팔려가는 난민들도 있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장소였다.
'죽느냐, 사느냐'
이들의 삶이었다.
구조된 난민들은 72시간 동안 경찰의 보호를 받은 뒤에 임시 보호소에서 지낸다.
스페인 현지에서의 난민들을 대하는 우호적인 모습도 이들의 발길에 영향을 미쳤다. 2015년 9월 국경을 넘다 헝가리 N1TV 카메라 기자의 발에 걸려 넘어진 시리아 출신의 모센은 스페인으로부터 축구코치 제안을 받아 마드리드로 향했다. 2016년에는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시위대들이 바르셀로나에서 행진을 하기도 했다. 올해 6월에는 스페인 신정부가 이탈리아와 몰타로부터 입항을 거부당한 ‘아쿠아리스호’를 전격 수용했다. (사진=CEAR 제공)

 

교육을 받거나 일 하기를 원하는 난민은 임시체류증인 '레드카드'를 받을 수 있다.
임시카드를 받은 난민은 6개월 동안 스페인에 체류할 수 있다. 연장을 원하는 난민들은 심사를 통해 1년까지 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지난해 스페인에서 난민을 인정받은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사실상 바늘구멍이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는 난민들은 불법 체류자로 있거나 추방된다.
EU 소속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하고 한 차례 거절당한 난민들은 다른 EU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더블린 협약 때문이다.
보트 탄 난민들의 도착지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극우 정당 복스가 등장했다. 스페인에서 극우 정당이 나온 것은 1975년 이후 처음이다. 이들은 난민 수용 반대를 외치며 난민 폐쇄 정책에 소리 높이고 있다. 사진은 이동하는 난민들. (사진=CEAR 제공)

 

이들은 결국, 난민 승인을 잘 받아주는 독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들에게 스페인은 독일로 가는 '경유지'일 뿐이다.
'난민이 되는 것은 손에 가방을 들었는지 아니면 관을 들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난민들 사이에서 오가는 내용이다. 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에둘러 설명한 말이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넘어온 난민들은 또 한 번 여정에 나선다.
이들은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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