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컨벤션웨딩홀에서 '65세 이상 싱글들의 친구 찾기,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가 열렸다. 김수정 기자"아직 건강하고, 성실히 잘 살고 있습니다. 서로 대화가 잘 되는 사람, 마음이 착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닉네임 '맥가이버' 명찰을 달고 무대로 나온 이용호(67)씨의 자기소개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미소를 짓는 이도 있었다. 짧고 담담한 한마디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박수가 이어졌다.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컨벤션웨딩홀 전통실. 교복을 차려입은 어르신 40명이 마주 앉았다. 옛날 교복 아래로 보이는 손등의 주름과 희끗한 머리칼에는 세월이 묻어 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만큼은 풋풋했다. 평균 나이 73.5세, '어르신판 소개팅'이 막을 올렸다.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컨벤션웨딩홀에서 '65세 이상 싱글들의 친구 찾기,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가 열렸다. 김수정 기자
이날 행사는 종로구에서 주최한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다. 종로구에 살거나 생활 기반을 둔 65세 이상 '싱글' 어르신을 대상으로 참가 신청을 받았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자리다. 총 109명이 신청해 40명이 선발될 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초본 등 '싱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도 거쳐 "신원이 확실히 보장돼 믿고 만날 수 있는 자리"라는 반응도 나왔다.
행사장은 '추억의 종로 다방' 콘셉트로 꾸며졌다. 유자차, 쌍화차, 수정과 등 차 이름이 붙은 테이블마다 남녀 4명씩 마주 앉았다. 명찰에는 본명 대신 닉네임이 적혔다. '히어로', '소나무', '밀키스', '맥콜', '쾌남'… 남성 참가자들의 이름표는 개성으로 가득했다. 선글라스를 낀 채 등장한 어르신도 있었고, 보라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멋스럽게 올린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컨벤션웨딩홀에서 열린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 참가자들의 가슴팍에는 본명 대신 닉네임 명찰이 달렸다. 김수정 기자여성 참가자들의 닉네임도 풋풋했다. '수선화', '백설탕', '무지개', 써니텐', '파르페' 등 상큼한 이름표들이 보였다.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분홍색 핀을 꼽는 등 각자만의 방식으로 한껏 꾸민 모습이었다. 행사 한 시간 전부터 정화예술대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어르신들의 단장을 도왔다. 25학번 오소예(21) 씨는 "어르신들이 만족해하시는 모습에 뿌듯했다"며 "혼자 지내는 분들도 많아 이런 자리가 더 의미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참가 계기도 다양했다. '백설탕' 명찰을 가슴에 단 이점순(73)씨는 "주민센터에서 소개를 해줘서 왔다.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막상 오니까 분위기도 좋고 재밌고 좋은 언니들도 만났다"며 "오늘 재밌게 놀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식이나 손녀 등 가족이 대신 신청해서 자리에 나오게 된 어르신도 있었다.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컨벤션웨딩홀에서 열린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에서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가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사회자로 개그맨 심형섭씨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전주를 듣고 노래를 맞히는 게임이 진행됐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한 여성 참가자가 손을 번쩍 들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라고 외쳤고 첫 소절까지 수줍게 불렀다. 마주 앉아 있던 남성 참가자는 "수정과 한 잔 따라드리겠다"며 잔을 건넸다.
1대1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근처 사세요?", "무슨 일 하셨어요?" 등 서로를 알아가는 평범한 질문들이 오갔다. 한 여성 참가자는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깔깔 웃기도 했고, 옆자리의 언니와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이성 친구뿐 아니라 동성 친구를 만드는 자리기도 했다.
남성 참가자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차례로 자신의 매력을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번 행사의 최고령 참가자는 85세. 체크무늬 베레모를 쓴 '히어로'(85)가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하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여자면 돼"라고 답하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눈에 띄는 커플도 탄생했다. 닉네임 '나보배' 김미영(65)씨와 닉네임 '맥가이버' 이용호(67)씨다. 돌싱 30년 차 미영씨는 앞에 앉은 맥가이버가 마음에 드냐는 기자의 질문에 "좋은 분 같다. 도서관에서 책 많이 읽고 공부도 하셨다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수줍게 웃었다. 용호씨도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설레고 좋았다"고 말했다. 둘은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 "단아했고 편안해 보이셨다", "눈빛이 선하고 좋았다"며 답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선택해 커플이 됐다.
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컨벤션웨딩홀에서 열린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에서 커플이 된 김미영(65)씨와 이용호(67)씨가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김수정 기자이날 탄생한 커플은 모두 7쌍. 닉네임이 호명될 때마다 박수와 웃음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번호를 교환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나 혼자 안 산다.'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처럼 행사장을 나서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