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수 있는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국민 여론'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이나 법안이니까 추진해야한다고 하면 일단 명분에서 한수 얻고 간다.
하지만 실제 정치권에서 국민여론이 갖는 의미는 그렇게 크지는 않다. 국민여론보다 당리당략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국민여론과 정치권의 행보 간에 싱크로율이 높았다면 '정치 불신'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크게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선거철만 잠깐 '왕'(王)이고 나머지 긴 시간동안은 찬밥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국민들의 뜻에 부합하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비록 그 안에 정략적 계산이 깔렸다고 해도.
왜냐하면 정치는 어차피 최선이 아니니 차악을 선택할수 밖에 없다는 게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떠나 현실일수 밖에 없어서다.
예산안 정국에서 두 야당대표(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의 단식 투쟁까지 불러온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도 국민여론이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민 반대 여론이 높다는 이유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려면 일정 수준 의원수가 늘어나야 하는데 이걸 국민들이 반대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긴다며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렇다보니 의원수를 늘리겠다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감히 바랄수 없는 처지)일수도 있다.
국민들이 바라지 않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나 원내대표의 말은 일면 타당하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의 다음 주장에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가 선거제도 개혁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권력구조 개편(개헌) 때문이다.
여야 합의안에 담긴 '선(先) 선거제도 개혁, 후(後) 권력구조개현 논의' 규정을 놓고 나 원내대표가 다른 해석을 내놓은 것은 둘째 문제로 치고라도.
나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중앙선관위가 마련한 선거제도 개혁안(권역별 연동형비례제도)에 찬성하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내각제와 조응ㆍ조화되는 제도"라며 의원내각제를 수용할지 여부를 되물었다.
권력구조개편은 문 대통령이 올해 초 개헌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부터 논란이 됐지만, 결국 여야 합의가 불발된 사항이다.
그런데 이 문제 역시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논의하자면 의원내각제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나 원내대표의 말은 모순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의원내각제는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고, 현행 대통령제에 내각제 요소를 좀더 강화한 이원집정부제가 이보다 조금 높은 형편이다.
오히려 청와대의 개헌안에 포함된 '4년 중임 대통령제'에 대한 여론 지지가 훨씬 높다. 경우에 따라선 응답자 절반 이상이 찬성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국민들이 내각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와 똑같다. 짜증나는 국회에 더 많은 권한을 주기 싫다는 이유다.
내각제 요소가 강화되면 국무총리 추천이나 선출을 국회에서 할수 있게 된다. 그러면 경제 등 상당 부분의 내치를 사실상 국회에서 뽑는 총리가 담당하게 된다.
내각제에 대한 반대에는 '국가 지도자를 내손으로 직접 뽑고 싶다'는 국민들의 정치 참여 열망도 녹아 있다.
이렇기 때문에 나 원내대표가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려면, 반대로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국민 여론만 내세울게 아니라 좀더 유연한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선거제도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의 핵심 조건은 정치권이 정파적 이해득실을 떠나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점이 가장 어려운 숙제다.